주간동아 671

2009.01.27

헤즈볼라 끼어들진 않고 이-하마스 전쟁 끝낼 듯

휴전 중재안 ‘2%’ 부족해 난항 … 중동 불안 새 불씨 만들어

  • 이스라엘=남성준 통신원 darom21@hanmail.net

    입력2009-01-29 12: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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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촉발된 가자 사태가 3주째를 지나면서 팔레스타인 측 사망자가 1000명을 넘어서고 부상자가 4500여 명에 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처럼 팔레스타인 측 피해가 커지자 휴전을 촉구하는 국제사회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한편 예상대로 1만5000명 규모의 지상군을 투입한 이스라엘은 이런 국제사회의 요구에 아랑곳 않고 지상군 작전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레바논 쪽에서 이스라엘 북부를 향해 로켓이 날아들자, 레바논의 헤즈볼라가 팔레스타인의 하마스와 연대투쟁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전망도 나온다.

    먼저 휴전협정을 중재하는 국제사회의 노력을 살펴보자. 연말연시를 맞아 세계 각국의 정치시계가 느리게 돌아간 탓도 있지만, 그간 이번 사태를 해결하려는 국제사회의 행보는 느슨했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사태 발발 2주째인 1월8일에야 휴전을 촉구하는 결의안 1860호를 내놓았다. 그런데 내용이 상당히 모호했다. 결의안은 ‘즉각적이고 지속적이며, 충분히 존중되는 휴전’을 촉구했지만 결과적으로 이의 실행을 강제하는 조항을 누락시켰다. 또한 즉각적(immediate)과 지속적(durable)이란 문구를 대등하게 놓아, 두 조건이 동일한 중요성을 가지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는 과오(?)를 범했다. 즉 ‘지속적인’ 휴전을 위해 ‘즉각적’인 휴전을 미뤄도 된다는 명분을 제공한 셈이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미국이 결의안 채택을 위한 표결에서 기권함으로써 힘이 빠져버렸다. 기권 이유에 대해 미국은 “이집트의 중재로 휴전협상이 진전 중이므로 이의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의도”라고 밝혔다.



    이-하마스, ‘휴전’ 원칙에는 합의

    이집트의 중재안은 프랑스와 공동으로 검토한 것인데, 유엔의 것과 다르게 체계적이다. 그 내용은 크게 3단계로 나뉜다. 첫 단계는 즉각적 휴전이고, 둘째는 장기적 휴전을 위한 협상과 이를 통한 가자지구 봉쇄 해제, 마지막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하마스 간 협상 재개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가자 복귀다.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휴전’이라는 원론에는 합의했음에도 이를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이유는 중재안에 대한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시각 차이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휴전협정의 전제조건으로 내건 것은 두 가지다. 첫째는 하마스와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의 로켓공격 중단이고, 둘째는 이집트 국경으로부터의 무기밀수 중지다. 이는 이스라엘이 이번 전쟁을 일으킨 목적이기도 하다. 반면 하마스는 즉각적인 이스라엘군의 전면 철수와 가자지구의 봉쇄 해제가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역시 그간 하마스가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공격을 감행했던 이유다.

    제3자 처지에서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의미 없는 논쟁처럼 보인다. 그러나 내부를 보면 양측이 고집을 꺾을 수 없는 절실한 이유가 있다. 먼저 이스라엘 처지에서 위의 두 조건을 담보 받지 못하면 이번 전쟁을 일으킨 의미가 사라진다. 이번 사태로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의 맹렬한 지탄을 받고 있다. 자국 외교관을 본국으로 송환하며 외교 단절을 선언하는 나라가 나올 만큼 외교적으로 고립된 상태다. 이런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작전을 감행한 이유가 ‘이스라엘 남부지역의 정상화’다.

    하마스의 입장은 좀더 절실하다. 하마스가 주목하는 이집트 중재안의 문제점은 이스라엘의 철군과 가자지구 봉쇄 해제의 시일을 명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자칫 휴전에 동의해줬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장기적 휴전협정을 위한 협상이 길어져 이스라엘군의 주둔과 봉쇄가 계속된다면 이미 만신창이가 된 민중의 민심이반을 막을 길이 없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가자 복귀 조항도 조직의 기반을 흔드는 요소다. 하마스는 2007년 내전을 통해 연정을 구성하던 가자지구 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세력을 몰아내고 가자지구의 통치권을 거머쥐었다. 현 상황에서 팔레스타인 자치세력의 복귀는 곧 하마스의 통치권 상실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후 벌어질 장기적 휴전협상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마흐무드 압바스 수반이 주도적으로 이끌게 된다면 더욱 그렇다.

    이스라엘 지도부의 휴전에 대한 의견 차이도 휴전 중재안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로 보인다. 현재 이번 전쟁의 주요 결정권자는 ‘트로이카’로도 불리는 에후드 올메르트 총리, 치피 리브니 외무장관, 에후드 바락 국방장관이다. 이 중 올메르트 총리는 휴전에 반대하며 하마스에 큰 타격을 주기 위해 지상군 작전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리브니 장관과 바락 장관은 휴전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리브니 장관은 하마스와 합의 없는 일방적인 휴전을 주장하는 반면, 바락 장관은 합의를 통한 휴전을 주장한다.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테러단체로 규정할 뿐 정치적 실체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 하마스와 합의를 하는 순간 하마스의 실체를 인정하는 셈이 된다는 게 리브니 장관의 주장이다. 그러나 바락 장관은 합의 없이 휴전할 경우 하마스 측의 로켓공격과 무기밀수의 중단을 담보할 수 없기에 합의가 필요하다는 견해다.

    이스라엘 처지에서 이번 전쟁은 시작할 때부터 언제 끝내야 하는지가 과제인 전쟁이었다. 2006년 헤즈볼라와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작전을 중단해야 할 시점을 놓치고 무리하게 확대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다. 이를 교훈 삼아 이스라엘은 이번 전쟁을 철저히 준비했고, 이미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전쟁 초기, 하루 80여 기씩 행해지던 하마스의 로켓공격이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들고 있는 것이 하나의 증거다.

    시리아 대통령 “테러 활동 증가할 것”

    올메르트 총리는 전쟁을 더욱 확대하겠다고 목청을 높이지만 이는 전술일 가능성이 높다. 그 이유는 첫째 이스라엘의 모든 정보기관이 지상군 작전을 확대해 얻을 것이 별로 없으며, 오히려 이스라엘군의 피해만 늘어날 것으로 분석한다는 점이다. 둘째 올메르트 총리가 군사작전의 최종 결정권자임은 분명하지만, 실제 결정에는 군 참모총장 출신인 바락 장관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한다. 군 경험이 일천한 올메르트 총리의 의견을 따라 군사작전이 결정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이미 전쟁을 끝낼 준비를 하고, 다만 휴전협정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하마스 측을 옥죄고 있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보면 레바논에서 날아온 로켓에 의해 전쟁이 확대될 가능성도 높지 않다. 헤즈볼라는 이번 로켓공격에 대해 부인했는데, 지금까지 한 번도 헤즈볼라가 자신들의 공격을 부인한 적은 없다. 분석가들은 이번 로켓공격은 레바논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소행으로 본다. 그러나 헤즈볼라는 로켓공격을 사전에 인지했으며, 이를 묵인했을 가능성이 높다. 로켓이 레바논 남부에서 발사됐고, 이 지역은 헤즈볼라의 주요 거점이기에 헤즈볼라의 허락(?) 없이 공격했을 리 없기 때문이다.

    이 사건이 당장 이번 전쟁의 확대로 이어지지는 않겠지만 중요한 의미는 함축하고 있다. 헤즈볼라가 어떤 식으로든 이번 전쟁에 개입하려 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헤즈볼라라는 조직의 결성 명분 자체가 이스라엘에 빼앗긴 레바논 영토의 회복과 팔레스타인의 해방이다. 이번 이스라엘의 가자 공격은 이후 있을 수 있는 헤즈볼라의 이스라엘 공격에 명분을 제공해준 셈이다.

    헤즈볼라의 강력한 후원국인 시리아의 바샤르 아사드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가자 공격이 급진주의자들과 테러 활동의 증대를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한 “전쟁은 그 자체보다 여파가 더 위험한 법”이라고 덧붙였다. 테러지원국이자, 악의 축이라는 국가의 수장이 한 발언이라 아이러니하게도 들리지만, 이번 사태가 단지 휴전협정으로 평화를 되찾을 수 있을지에 회의가 들게 하기엔 충분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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