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71

2009.01.27

‘잘나가는’ 그녀들의 특별한 수다

30대 워킹우먼 4인의 “내 일과 사랑하는 남자들”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09-01-29 11: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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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나가는’ 그녀들의 특별한 수다
    일잘하기로 소문난 30대 여성 네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광고, 금융, 언론, 홍보 등 각자의 영역에서 입지를 굳건히 하고 있는 이들은 지난해 말 자기계발서 ‘연애하듯 일하고 카리스마 있게 사랑하라’(21세기북스)를 펴낸 공저자들. 저마다의 성공 노하우를 꼼꼼히 공개한 이 책은 발간 2주 만에 초판이 매진되며 화제를 모았다. 지금도 베스트셀러 순위 상위권을 유지하며 순항 중이다.

    짧은 커트에서부터 우아한 웨이브 롱 헤어까지, 서로 다른 헤어스타일만큼이나 각양각색의 개성을 가진 이들이 함께 책을 쓰게 된 이유는 일에 대한 열정과 성공을 향한 열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 ‘잘나가는 여자들의 성공백서’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스스로 ‘잘나가고 있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당당함도 이들을 하나로 묶는 공통분모다. 책 출간 뒤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한 네 명의 여성은 ‘우리 사회에서 잘나가는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눴다.

    권은아“저는 대학 졸업하고 14년째 광고 일을 하고 있어요. 언제부턴가 외부에서 ‘골드 미스’ ‘일에 미친 여자’ 같은 이미지로 저를 보고 있다는 걸 느끼죠. 어떻게 이 자리까지 왔을까 생각해보면 매일매일 조금씩 발전했던 것 같아요. 저는 일을 하면서 늘 ‘one of them’이 아니라 ‘the only one’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저 자신을 명품 브랜드로 만들어 세상이 열망하게 만들고 싶었죠.

    그래서 직장생활한 지 4년 만에 번 돈을 몽땅 들고 유학을 떠나 석사학위를 받고 돌아왔고, 다시 8년간 열심히 일한 뒤엔 대학원 박사과정에 들어가 지금은 회사 일과 공부를 병행하고 있어요. 일할 때는 미칠 듯이 일하고, 놀 때는 테이블 위에서 춤추며 분위기를 주도하고, 자기 개발 노력을 멈추지 않고…. 아주 작은 순간에도 열정적으로 살다 보니 어느새 ‘성공했다’는 말을 듣게 됐어요.”

    “성공은 저절로 찾아오지 않는다”



    김혜련“저는 스스로 ‘잘나가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에요. 제가 성공한 여성으로 인정받게 된 건 2007년 한 케이블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부터예요. 30대 커리어우먼과 20대 꽃미남이 커플을 맺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었는데, 결승까지 올라갔어요. 아깝게 탈락했지만 그 뒤 ‘당당한 모습이 멋있다’는 말을 많이 들었고, 한 출판사에서 책을 내고 싶다는 연락도 받았죠.

    그해 ‘잘나가는 그녀는 어떤 영어를 쓸까’라는 영어책을 쓴 게 계기가 돼 이번에 또 한 번 ‘잘나가는’ 여자에 대한 책을 내게 됐어요. 처음 TV에 출연할 때 저라는 사람을 널리 알리면 커리어 개발이나 마케팅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는데, 그 목표는 이미 초과달성한 것 같아요.”

    ‘잘나가는’ 그녀들의 특별한 수다
    오주연“저도 이 책이 저에게 기회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용기를 냈어요. 처음에는 신입 딱지를 막 뗀 나이에 ‘잘나간다’는 평가를 받는 게 조심스러웠죠. 하지만 외부에서 나를 성공했다고 본다면 어떻게 이 자리까지 오게 됐는지에 대해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을 잘 쓰면 내가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책이 나오고 나니 ‘네가 그렇게 잘나가?’라며 빈정대는 사람보다 부러운 시선으로 보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아요.”

    곽정은“‘잘나간다’ ‘뛰어나다’는 평은 저절로 얻어지는 게 아닌 듯해요. 자신에게 맞는 전략을 세우고 실천하는 게 중요하죠. 저는 일상생활에서 몇 가지 규칙을 꼭 지키는 편이에요. 그중 하나는 매일 아침 출근하면 그날 할 일을 손으로 직접 써서 정리하는 거예요. 이렇게 하면 업무 사이의 연관성을 그림으로 그릴 수 있어 편리하고, 눈에 잘 띄는 곳에 붙여놓을 수 있어서 좋죠.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출근하면 가장 먼저 e메일부터 확인하잖아요. 그런데 스팸메일을 분류해 지우고, 이런저런 안부메일에 답장하다 보면 귀한 아침시간이 한 시간 이상 흘러가버리거든요. 인터넷 서핑을 하거나 메신저 접속까지 하다 보면 점심시간이 될 수도 있고요. 저는 매일 아침 10분씩 계획을 세우는 습관을 들인 덕에 다른 사람보다 훨씬 짜임새 있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됐어요.”

    김혜련“저에게는 업무일기가 큰 도움이 됐어요. 저는 초등학교 영어 교사, 선박 세일즈 등을 하다 스와프 브로커가 됐는데, 이쪽이 워낙 전문 지식을 필요로 하는 분야라 초반에는 많이 힘들었어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생각해낸 방법이 매일매일 회사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 쓰는 거였죠. 업무적으로 실수했을 때는 선배들의 충고와 해법을 함께 기록하고, 잘 모르는 용어나 미팅 분위기도 일일이 적었어요.

    회사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주고받는 시시콜콜한 수다까지 기억나는 대로 정리했는데, 그중에는 ‘A선배는 다이어트를 위해 블랙커피만 마심’ ‘B선배는 성격이 급해 거두절미하고 본론만 말하는 걸 좋아함’ 같은 성향 분석도 있었죠. 그게 쌓이면서 점점 선배들에게 ‘센스 있다’는 칭찬을 듣게 됐고 금세 업무와 회사 생활에 적응할 수 있었어요.”

    권은아“성공하려면 주위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정말 중요해요. 저는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인맥의 여왕’으로 통해요. 명절, 연휴, 크리스마스, 제 생일 등 이벤트를 할 수 있는 시기가 되면 언제나 제가 아는 여러 분야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아 파티를 열거든요.

    서로에 대해 전혀 모르던 사람들이 저를 통해 새로운 관계를 맺어가는 걸 보면 재미있어요. 제가 인맥의 연결고리가 됨으로써 점점 다양한 방면으로 관계를 뻗어갈 수 있으니 저에게도 도움이 되고요. 몇 번 그런 파티를 열고 나면 ‘저 사람 주위에는 사람이 많다’는 인식이 생겨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모이게 되고 저절로 인맥이 넓어져요.”

    ‘잘나가는’ 그녀들의 특별한 수다
    김혜련“좋은 평판은 업무에도 여러모로 도움이 돼요. 저는 시간이 날 때면 분위기 좋은 카페나 레스토랑을 답사하는 취미가 있어요. 그중 좋았던 곳을 목록으로 만들어뒀다가 모임이 있을 때마다 적절한 곳을 추천하죠. 그런 일이 반복되니까 언제부턴가 모임이 열릴 때면 으레 제가 약속장소를 정하고 다른 사람을 안내하는 역할을 맡게 되더라고요.

    자연스럽게 ‘세련된 레스토랑을 많이 아는 사람’, 나아가 ‘최신 트렌드에 밝고 스타일리시한 사람’이라는 평판을 얻게 되었고요. 그런 인상이 남아서 일을 할 때도 사람들이 저를 ‘앞서가는 사람’으로 평가하는 것 같아요.

    사실 인간적인 매력은 일하는 사람에게 큰 부가가치예요. 제가 인상이 좋지 않다면 아무리 일을 열심히 한다고 해도 ‘잘나가는 여자’의 롤모델로 평가받지 못했을 것 같거든요. 여자든 남자든 사회생활을 하려면 자신을 좀더 매력 있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해요.”

    권은아“저는 그래서 ‘아이디어 뱅크’ 이미지를 얻으려고 노력했어요. 어떤 회사든 남들 다 하는 일을 묵묵히 하는 사람을 인정해주지는 않잖아요. 회사를 이끌어가는 건 사업성 높은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사람이니까요.

    저는 적어도 한 주에 한 가지씩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겠다는 규칙을 정했어요. 그 아이디어를 일일이 상사에게 보고하는 건 아니고, 한 달에 한 번쯤 회식하는 자리가 있을 때 그동안 생각한 아이디어를 모아 수다 떨듯 풀어내요. 그렇게 세 달 정도만 하면 사내에서 공인된 ‘아이디어 뱅크’로 인정받게 되죠.”

    “여자의 성공을 쿨하게 받아들이는 남자라면 열정적으로 사랑할 것”

    오주연“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우리가 성공하기 위해 모든 걸 전략적으로 계산하고 행동하는 무서운 여자들이라는 이미지로 비춰질지도 모르겠어요. 가끔 보면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승승장구하는 여자에 대해 ‘성격이 드세다’ ‘남자를 사사건건 이기려 든다’ 같은 뒷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저는 누구를 이기기 위해 열심히 사는 게 아니라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 내 인생이 소중하니까 최선을 다하는 것뿐인데 그런 말을 들으면 억울해요.”

    권은아“잘나가는 여자는 어른 공경을 안 한다, 조건을 따져 남자를 고른다, 사생활이 문란하다 같은 편견도 있어요. 대한민국은 남 말하기 좋아하는 사회잖아요. 그런 말에 일일이 흔들리고 상처받으면 자신의 목표를 이룰 수 없어요. 저는 능력과 성격은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능력 없는 여자들이 착한가요? 주위에서 끊임없이 ‘너는 도대체 왜 시집을 안 가냐’ ‘눈이 너무 높은 것 아니냐’는 말을 듣는 사람으로서 한마디 하면, 제가 아직 결혼을 안 한 이유는 저보다 조건 좋은 남자를 못 찾아서가 아니라 정말 저에게 맞는 사람, 인생의 파트너가 될 수 있는 사람을 여전히 찾고 있기 때문이에요.

    ‘잘나가는’ 그녀들의 특별한 수다
    저는 이미 성공적인 커리어를 갖고 있기 때문에 조건 좋은 사람을 통해 결핍된 부분을 채우고 싶은 욕망은 전혀 없어요. 주위의 성공한 여자들을 봐도 마찬가지고요. 여자의 성공을 쿨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남자, 편견이나 경쟁심 없이 동등하게 상대를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 제 모든 것을 바쳐 열정적으로 사랑할 준비가 돼 있어요.”

    곽정은“책 제목을 ‘연애하듯 일하고 카리스마 있게 사랑하라’로 정한 건 우리 모두 사랑을 일 못지않게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우리나라 남자들은 연애할 때는 직장에서 인정받고 최선을 다해 일하는 여자를 멋있다고 여기다가도, 막상 결혼하면 ‘나보다 잘나가는 게 부담스럽다’ ‘일보다는 가정에 충실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자들은 점점 더 진정한 사랑을 만나기가 어려워지고요.”

    오주연“저는 지금 연애를 하고 있는데, 남자친구가 이 책을 굉장히 자랑스러워해요. 직접 사서 주위 사람들에게 ‘이 사람이 내 여자친구’라고 자랑하며 돌리기도 했고요. 제 커리어를 존중하는 모습에 감동받았어요. 남자들이 좀더 열린 마음으로 여자의 성공을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축하해줄 수 있다면, 일과 사랑 둘 다에서 성공하는 여자들이 더 많아질 거예요.”

    권은아(37)/ 광고대행사 금강오길비 국장

    김혜련(35)/ 서울외국환중개 스와프 브로커 과장

    곽정은(31)/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코스모폴리탄’ 피처 에디터

    오주연(30)/ PR 회사 KPR&Associates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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