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68

2009.01.06

일본인에겐 너무나 친숙한 무덤

  • 윤종구 동아일보 도쿄 특파원 jkmas@donga.com

    입력2008-12-31 16: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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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무덤을 어디에 쓸지 생각하고 있습니까?”

    일본 도쿄 시내를 순환하는 전철 도에이 오에도(都營大江戶)선 전차 안에 붙어 있는 광고 문구다. 약간 섬뜩하기도 한 이 말을 일본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하다. 광고는 살아 있을 때 자신의 납골당을 예약해놓으라는 내용인데, ‘지하철역에서 가까워 편리하다’(?)는 등의 설명이 딸려 있다. 한 명은 75만 엔(약 1100만원), 부부 동반이면 95만 엔이라는 가격도 적혀 있다. 부동산 중개업소의 주택매매 안내판을 보는 듯했다.

    도쿄 중심부에 들어선 공동묘지도 적지 않다. 야나카(谷中), 아오야마(靑山), 소메이(染井), 소시가야(雜司ケ谷) 묘원 등이 그것이다. 덴쇼인 아쓰히메(天璋院篤姬), 도쿠가와 쓰나요시(德川綱吉), 하세가와 가즈오(長谷川一夫), 요코야마 다이칸(橫山大寬) 등 역사적 인물들이 도쿄 한복판에 잠들어 있다. 공동묘지는커녕 쓰레기 매립장 하나가 동네 근처에 온다는 소문만 있어도 집단 시위를 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한술 더 떠 최근 일본에서는 유명인의 묘지를 찾아다니는 취미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주말에는 가족이나 연인끼리 다니는 ‘묘지 탐방족’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이와 함께 그곳에 묻힌 유명인사들을 소개하는 책이나 사진집, DVD까지 인기리에 팔릴 정도다.

    유명인의 묘 찾아다니는 탐방족도 있어



    260여 년간 에도(江戶·지금의 도쿄) 시대를 지배한 도쿠가와 가문의 묘소가 있는 도쿄 우에노(上野)의 간에이지(寬永寺)는 얼마 전 아쓰히메의 무덤을 제한적으로 공개했는데, 관람객 320명 모집에 7000명이 응모할 정도로 성황이었다. 묘원 측은 묘지 탐방족에게 무덤의 주인공에 대한 설명을 담은 안내도를 만들어 배포하는 등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야나카 묘원 관리소는 일정액의 도시녹화기금을 내는 사람들에게 안내도를 나눠주는데, 연간 5000장 정도가 나간다고 한다. 소시가야, 소메이 묘원에서도 기금을 내면 안내도를 얻을 수 있다. 아오야마 묘원은 2006년부터 ‘역사산책 지도’라는 묘원 안내도를 배치했다. 여기엔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 오자키 고요(尾崎紅葉), 사이토 모키치(齊藤茂吉) 등 58명의 묘소가 소개돼 있다.

    자치단체 등을 중심으로 묘원을 공원으로 만들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이미 아오야마 묘원에는 광장이 생기고 벤치가 놓였다. 구청 측은 묘원의 분위기를 즐길 수 있도록 길에 돌층계를 까는 등 아담하게 가꿨다.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어울리는 셈이다. 유명인의 무덤에는 안내판도 붙일 계획이라고 한다. 야나카 묘원은 2007년부터 묘원 단장 작업을 시작했다.

    일본인은 죽음에 대한 생각이 우리와 좀 다르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자신의 명예가 더럽혀졌다고 생각하면 주저 없이 할복을 택하는 사람들이 비일비재했던 게 일본이다. 일본 영화나 소설, 드라마 등을 보더라도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가 우리보다는 차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본엔 종교 인구가 매우 적다. 하지만 종교와 관계없이 교회에서 결혼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죽기 전에는 상당수의 사람들이 불교식 이름(방명·芳名)을 따로 짓기도 한다. 편의에 따라 종교를 채용하는 일본인 특유의 실용주의인 셈이다. 종교에 대한 생각이 우리보다는 덜 관념적이고 덜 무거운 듯하다.

    ☞윤종구 동아일보 기자가 도쿄 특파원으로 부임했습니다. 앞으로 월 1회 ‘윤종구 특파원의 Tokyo Freeview’가 연재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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