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68

2009.01.06

“영산강엔 배 띄워야 하는디…”

민주당 호남지역 의원들, ‘4대강 살리기’ 적극 반대 어려워 곤혹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입력2008-12-31 11: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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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산강엔 배 띄워야 하는디…”

    전남지역을 관통하는 영산강. 주민들은 수질오염과 매년 반복되는 수해를 방지하기 위한 치수사업 및 각종 개발사업에 사활을 걸고 있다.

    허~참, 당이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겄네. 우리보고 총대를 메라면 도대체 영산강은 어쩌라는 거여?”

    크리스마스이브인 지난 12월24일, 전남지역 민주당 한 의원실 관계자는 긴 한숨을 내쉬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오전 민주당 확대간부회의에서 ‘한반도 대운하저지투쟁 특별위원회’를 발족하기로 하고 국토해양위원회와 환경노동위원회, 그리고 대운하 예정 지역 출신 의원들을 특위위원으로 선임하기로 결정한 데 따른 불만이 가득했다.

    당 대변인에 따르면, 이날 확대간부회의는 이명박 대통령이 대운하 포기선언을 하지 않으면 현 정부의 ‘4대강 정비사업’을 ‘대운하 추진사업’으로 규정하고 반대 투쟁을 불사하겠다는 분위기였다.

    4대 강 가운데 특히 영산강 정비사업 추진에 적극적이던 호남지역 의원들 처지에서는 이만저만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당의 방침을 무조건 따르다가는 자칫 지역 민심이 등을 돌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전남도와 나주시 목포시 영암군 등 해당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와 지역 의원들은 영산강을 되살리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했다. 영산강 뱃길 복원 사업을 중심으로 전남도가 계획한 ‘상생과 번영의 영산강 르네상스 프로젝트’(이하 영산강 프로젝트)가 그 대표적인 사업이다.



    영산강 프로젝트의 주요 내용을 보면, 영산강 유역 종합개발사업으로 인한 영산강과 영산호의 수질오염 원인을 분석하는 것이 첫 단계다. 그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영산강 하구둑 제거와 리모델링 등 하구 생태계 복원 및 보전을 위한 다양한 방법 모색이 두 번째 단계다. 여기에 마지막 단계가 영산강 유역에 산재한 고대 마한문화권을 지정, 개발해 역사문화단지를 조성하고 자연생태와 어우러지게 만드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이 바로 강에 쌓인 모래와 오염원인 퇴적물을 제거하는 등 치수사업을 통한 뱃길 복원이다.

    영산강 정비 뱃길 복원 숙원 사업

    사실 영산강 프로젝트에는 영산강 지역 주민들의 사활이 걸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계 당국이 2003~2007년 5년간 4대강 수질오염도를 측정한 결과를 보면, 4대강 가운데 영산강 수질이 최악인 것으로 나타났다. 영산강 중류에 해당하는 나주지역의 생화학적 산소요구량(BOD)은 5.2mg/ℓ로 비슷한 지역인 낙동강(구미) 1.68mg/ℓ, 금강(부여) 2.9mg/ℓ에 비해 2배 이상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강 하구언 부근의 오염도는 더욱 심각하다. 총질소량(T-N)이 4.5mg/ℓ에 육박해 농업용수 기준인 1mg/ℓ의 4.5배에 달하고, 총인량(T-P)도 0.16mg/ℓ로 농업용수 기준 0.1mg/ℓ보다 높았다.

    매년 태풍이나 호우 등으로 인한 침수 피해도 문제다. 2004년 8월 태풍 ‘매기’가 이 지역을 강타하면서 나주시에서만 230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고 농경지 8600ha가 침수되는 등 670억여 원의 피해를 본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최근 10년간 영산강 주변의 지자체가 당한 피해규모는 4700억여 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지역 주민들로서는 영산강 정비사업이 절실할 수밖에 없다.

    이 지역 민주당 의원들을 더욱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이명박 정부가 12월15일 발표한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의 내용이 영산강 프로젝트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정부의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 추진 배경은 홍수, 가뭄 등 이상기후에 대비해 하천을 정비하고 수상레저 및 문화 활동 공간을 개발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주요 사업으로는 노후 제방 보강, 치수를 통한 하천 생태계 복원, 홍수 조절지와 하천변 저류지 및 저수지 재개발, 하천변 자전거길 설치 등이다. 전남도와 이 지역 민주당 의원들이 그동안 강력히 추진해온 사업 내용과 거의 일치한다.

    “영산강엔 배 띄워야 하는디…”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운데)가 지난 12월24일 국회에서 열린 당 확대간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날 회의에서 ‘한반도 대운하저지투쟁 특별위원회’를 발족하기로 결정했다.

    2009년 예산안 심의를 위해 정부가 제출한 4대강 살리기 관련 사업 중 영산강에 해당하는 사업 내용도 마찬가지다. 환경부 2125억원, 국토해양부 1815억원, 문화체육관광부 500억원, 농림수산식품부 60억원 등 총 4500억원을 영산강 개발에 투자하겠다며 제출한 사업 내용을 보면 뱃길 복원, 오폐수 정화, 수질개선 및 치수대책 등으로 사실상 영산강 프로젝트와 같다.

    그래서 이 지역 민주당 의원들은 2009년 예산안을 둘러싸고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과 사투를 벌이면서까지 영산강 프로젝트 관련 예산만큼은 적극적으로 옹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야 합의 실패로 한나라당이 일방적으로 통과시킨 2009년 예산안에 영산강 관련 예산이 2200억원이나 반영된 것도 지역 민주당 의원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 덕이라는 후문이다.

    이 지역 민주당 의원들이 최근 한나라당의 일방적인 예산안 표결처리 강행을 빌미로 모든 상임위원회 회의를 원천 봉쇄하면서도 뒤로는 예산 확보의 공(功)을 차지하기 위해 지역 홍보에 열을 올리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 지도부가 한반도 대운하 저지투쟁에 앞장서라고 하니 지역 의원들로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영산강 프로젝트의 ‘뱃길’과 한반도 ‘대운하’의 차이도 모호하다.

    치수사업엔 동의, 6m 파면 반대?

    물론 차이는 있다. 뱃길은 기존 유로를 이용할 수 있지만 운하는 큰 배가 다닐 수 있도록 강바닥을 일정 깊이 이상 파내야 하고 뱃길에는 필요 없는 수위조절용 댐과 갑문도 있어야 한다. 뱃길에 필요한 시설이 나루터라면, 운하에는 규모가 큰 부두와 야적장 같은 항만시설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는 규모의 차이일 뿐이다. 이 차이가 환경적으로도 얼마나 큰 차이를 보일지는 아직 미지수다.

    전남지역 한 의원실 관계자는 “강바닥의 모래와 퇴적물을 제거하는 등 치수사업이 필요하다는 데는 누구나 동의한다. 하지만 수로를 6m 이상 파면 결국 운하를 하겠다는 뜻이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지금으로선 정부가 운하를 하겠다는 것인지, 안 하겠다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사업을 진행하면서 지속적으로 감시해야 한다. 처음부터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원내기획실의 한 관계자는 “지금처럼 별다른 대안 없이 ‘이 대통령이 대운하를 안 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으면 반대하겠다고 주장했다가는 자칫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2008년 10월29일 재보궐선거 전패에 이어 김민석 최고위원에 대한 다소 무리한 검찰 영장집행 저지, 그리고 2009년 예산안 합의 실패 등 잇단 실책으로 당 안팎의 반발을 산 민주당 지도부가 또 다른 당내 비판에 직면했다. 그렇다고 한반도 대운하 사업일지도 모를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를 현 정부가 추진하도록 마냥 놔둘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민주당 지도부는 이래저래 딜레마에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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