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65

2008.12.16

삶의 문화코드 패브릭, 현지인 체취 물씬

  • 채지형 여행작가 http://www.traveldesigner.co.kr

    입력2008-12-10 11: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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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문화코드 패브릭, 현지인 체취 물씬

    1 과테말라에서 사온 패브릭. 2 멕시코 산크리스토발의 패브릭. 3 아프리카 분위기가 풍기는 패브릭. 4 캉가 입은 여인.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로 꼽히는 아프리카 빅토리아 폭포에 가면 꼭 들러야 할 곳이 있다. 폭포 가는 길에 있는 자그마한 시장이 그곳이다. 왜 가야 하냐고? 싸고 예쁜 패브릭을 손에 바로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빅토리아 폭포가 있는 짐바브웨는 독재자 무가베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나라로도 유명하다. 조각에 천부적 재능을 가진 쇼나족이 만든 ‘쇼나 조각’은 예술가들 사이에서 정평이 나 있다. 쇼나 조각도 훌륭했지만 짐바브웨에서 정작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그들의 패브릭이었다.

    앙증맞은 동물들의 상징으로 꾸며진 패브릭들. 그다지 사실적이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심하게 추상적이지도 않은 동물 문양은 심심한 집 안을 아프리카 초원 분위기로 바꿔주기에 충분했다. 특히 빅토리아 폭포 옆에 있는 시장에서는 입다가 싫증난 티셔츠와 현지 아주머니들이 만들어 온 패브릭을 물물교환할 수 있는 재미도 맛볼 수 있어 일석이조다.

    빅토리아 폭포에서 그 시장을 발견하자마자 숙소로 돌아가 허리띠와 바지, 티셔츠를 들고 다시 그곳을 찾았다. 기린과 도마뱀이 멋지게 염색된 패브릭을 손에 넣은 그날 밤, 늠름한 기린과 도마뱀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꿈을 꿨다.

    아, 그러고 보니 이번 컬렉션에 대한 소개가 늦었다. 눈치채신 분도 계시겠지만 이번 ‘별★걸 다 모으는 여행’의 주제는 각종의 천, 즉 ‘패브릭’이다. 무슨 보따리장수도 아닌데 여행 가서 천 쪼가리를 사오느냐는 곱지 않은 시선이 벌써부터 끄트머리 살갗에 와닿는다.



    10여 년 전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어떻게 집 안을 재미있게 꾸밀 수 있을까 궁리하다 보니, 집 안을 독특하게 만들어줄 패브릭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다. 이제는 슬슬 ‘별★걸 다 모으는 여행’의 컬렉션이 여행을 추억하고 기억하는 것을 넘어 생활용품으로 가고 있다.

    허전한 거실 벽에 뭔가를 장식하고 싶은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오던 즈음, 휴가를 인도네시아의 아름다운 섬 발리에서 보내기로 계획을 세웠다. 인도네시아는 전통 문양이 담긴 ‘바틱’이 먼저 떠오르는 나라가 아닌가! ‘바로 이거야’라고 무릎을 탁 치며 인도네시아로 떠났으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기대만큼 좋은 바틱을 구하진 못했다.

    울긋불긋 알록달록 … 집 안 분위기 바꾸는 데도 제격

    그때의 아쉬움이 남아서였을까. 인도네시아 여행 이후 패브릭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면서 어디를 가든 패브릭을 유심히 보게 됐다. 이제는 앙증맞은 컬렉션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세계의 패브릭들이 집 구석구석에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패브릭을 모으다 보니 그 안에 들어 있는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 코드도 하나씩 이해되는 듯했다.

    동물 문양의 패브릭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케냐에서 사면 좋을 만한 기념품 중 하나가 용맹한 마사이족이 두르고 있는 빨간색 체크무늬 패브릭이다. 둘러 입으면 옷처럼 보이지만 펼쳐놓고 보면 커다란 천이다. 특별해 보이지 않는 체크무늬 옷감이지만 일단 마사이족이 입으면 황금망토로 변한다. 초원의 동물들도 이 체크무늬 천을 알아보고 겁을 낸다는 말이 전해진다.

    탄자니아 같은 동아프리카에 가면 재미있는 천, 캉가를 발견하게 된다. 캉가는 뭐랄까, 단순히 패브릭이라기보다는 그들의 삶이 담긴 문화라고 해야 할 듯싶다. 대부분의 여자들이 머리에 쓰고 있는 것, 허리에 두르고 있는 것, 아이들을 싸고 있는 것, 이 모든 것이 캉가다. 서점에 가보면 ‘캉가로 연출할 수 있는 스타일 100가지’ 같은 책도 볼 수 있다. 어디에서 살 수 있냐고? 어디든 동네 시장에 가면 캉가는 쌓여 있다. 워낙 일반적으로 입기 때문에 특별한 곳을 따로 찾을 필요도 없다.

    이렇게 현지 사람들의 삶을 감싸고 있는 패브릭은 과테말라나 멕시코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다. 마야족 후손인 과테말라 여인들은 원색의 천을 동아프리카 여인들처럼 옷으로 둘러 입고, 아이들을 업고 책가방이나 시장가방 대신 들고 다닌다. 그뿐인가. 테이블보로도 독특한 멋을 발한다. 게다가 그 원색은 얼마나 찬란한지 눈이 다 부실 정도다.

    멕시코의 산크리스토발 섬도 패브릭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천국이다. 저렴하게 각양각색 정열적인 문양을 담은 패브릭을 손에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산크리스토발에 가면 직접 패브릭을 만드는 가정에 방문할 수도 있는데, 아이들이 콩만한 손을 요리조리 놀리면서 패브릭 만드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도 하고 참 대견스럽기도 하다. 아이들의 노력을 생각해서라도 패브릭 값을 깎는 일은 없다.

    지난달 다녀온 터키도 패브릭을 이야기할 때 빠뜨릴 수 없는 나라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터키 양탄자나 러그. 수천 년에 이르는 직조기술도 유명하지만 독특한 패턴과 문양은 그야말로 남다르다. 이런 독특함은 기하학적 상상력을 연속적인 패턴으로 표현하는 이슬람 문화권에서 기원을 찾을 수가 있다. 터키뿐만 아니라 이란이나 모로코 등 이슬람 문화권에 가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특이한 패브릭에 눈길이 가게 마련이다.

    터키의 쉬린제라는 작은 마을에 가면 기하학 문양과 달리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닌 패브릭도 볼 수 있다. 한땀 한땀 손으로 수를 놓아 만든 패브릭인데 주로 테이블보가 많다. 금실, 은실로 수를 놓은 그 패브릭을 보면 나도 모르게 지갑을 연다. 가격도 저렴해서 신혼집이나 집들이 선물로도 안성맞춤이다.

    반짝거리는 화사함이 떠오르는 인도의 패브릭, 손뜨개의 절정을 자랑하는 쿠바 아주머니들의 테이블보, 스코틀랜드의 패치워크, 아기자기한 벨기에의 컵받침, 문 앞에 커다랗게 달아놓고 싶은 티베트의 하얀 패브릭까지 지금까지 입양해온 것과 앞으로 데려올 것들의 리스트를 작성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과연 다음 여행지에서는 어떤 패브릭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그런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다음 여행이 기다려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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