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65

2008.12.16

9·11 이후 美 이민정책 신랄한 풍자

  • 이명재 자유기고가

    입력2008-12-10 11: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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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1 이후 美 이민정책 신랄한 풍자

    영화 ‘비지터’의 한 장면.

    1000만 관객 영화를 이미 여러 편 배출한 한국영화. 그러나 197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영화가 꿈의 목표로 삼았던 것은 서울 관객 기준으로 10만명을 넘는 것이었다. 그러니 77년에 영화 ‘겨울여자’가 서울 관객 58만명을 동원한 것은 대단한 기록이었다. 그 9년 뒤인 86년 이 기록은 깨지는데 흥미롭게도 주연배우가 ‘겨울여자’와 같은 장미희였다. 바로 ‘깊고 푸른 밤’이라는 작품이다. 당시 영화 홍보물을 보면 ‘우리 한국영화의 해외시장 진출을 목표로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동시녹음으로 올 로케이션했다’고 강조한다. 영화는 홍보 문구처럼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미국 영주권을 얻으려는 한 남자, 그와 계약결혼을 하면서 그를 사랑하게 된 한 여자, 그들의 사랑과 욕망, 파멸. 이 모든 사건의 씨앗이 된 것은 영주권, 즉 ‘그린카드’였다.

    ‘아메리칸드림’ 찾아온 낯선 이 … 무기력한 삶의 선물

    많은 사람들이 미국 이민을 꿈꾸던 시절, ‘그린카드’는 아메리칸드림으로 진입하는 입장권이었다. 제라르 드 파르디유 주연의 영화 ‘그린카드’는 그린카드를 얻으려는 프랑스 남자의 눈물겨운 노력을 그린다. 사랑하던 애인을 잃고 음악 인생을 포기한 채 방황하던 조지는 미국에서 새롭게 시작해볼 결심을 하고 위장 결혼을 해서 미국으로 들어온다. 그러나 그린카드를 얻기까지는 이민국의 까다로운 조사를 통과해야 한다. 이민국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그와 그의 가짜 아내는 온갖 준비를 한다. 두 사람은 그 과정에서 티격태격하다 마침내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깊고 푸른 밤’의 우울한 색조든, ‘그린카드’의 코믹한 톤이든 영화에서 미국은 매우 진입하기 힘든 나라로 그려진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미국의 역사를 생각하면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건국과 성장사는 바로 이민의 역사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미국은 건국 이후 1882년 이전까지 열린 이민 정책을 유지해왔다. 초기 이민자들에 대한 개방 정책은 조지 워싱턴 대통령 등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품었던 이상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19세기 말부터 미국은 이민자들에게 장벽을 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1882년 제정된 ‘중국인 배제법’이었다. 미국 전역에 수많은 차이나타운을 형성케 할 정도로 물밀듯이 들어온 중국인을 막기 위한 이 법은 중국인의 시민권 취득을 금지했다.



    20세기 중반까지 계속되던 배타적 이민정책을 철폐한 사람은 케네디 대통령이었다. 다른 사람이 아닌 케네디였다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그 자신 이민자의 후손이었기 때문이다. 19세기 중반 아일랜드에 감자 기근 사태가 벌어지자 이들이 대거 미국으로 건너왔고, 그중에 케네디가(家)가 있었다. 케네디는 “이민자들을 관용으로 대하자”면서 이민 장벽을 낮췄다. ‘아메리칸드림’을 실현할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그러나 개방적인 이민정책을 시혜나 관용이라고 봐야 할까. 영화 ‘비지터’에 한 가지 대답이 담겨 있다. ‘비지터’는 9·11 이후 미국 내의 이민정책에 대한 풍자를 담고 있는 영화다. 한 노교수가 자신의 아파트에 불청객으로 들어온 불법체류자 커플을 만나면서 새로운 삶에 대한 열정을 갖게 된다. 일상에 지쳐 있던 주인공의 삶에 낯선 이들은 침입자가 아니라 선물을 가져다준 은인이었던 셈이다. 여기에 21세기 신이민 시대에 필요한 교훈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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