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65

2008.12.16

똑똑한 아이, 배속에서부터 만들어야죠

다양해진 태교 두뇌개발·웰빙 모드로 영어, 클래식, 국악, DIY 등 특히 인기

  •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입력2008-12-08 1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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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똑똑한 아이, 배속에서부터 만들어야죠
    임신 8개월째인 주부 고모(29) 씨는 영어 삼매경에 빠졌다. 매일 영어 동화책 한두 권을 배 속의 아이에게 들려준다는 심정으로 나지막하게 낭독하고, 영어동요 CD도 듣는다.

    이름 하여 영어태교를 하는 것. 고씨는 “(영어태교의 효과에) 확신은 없지만, 아이가 태교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영어 동화책을 소리내 읽으면 평소 억양과 달라선지 (태아의) 움직임이 느껴져요. 그런데 이게 정말 도움이 될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웃음) 주변 엄마들은 영어태교 한다고 회화학원도 다니고 수학태교 한다면서 정석도 푸는데, 이거라도 해줘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하는 거예요.”

    온갖 방법 임신부들 사이에 유행

    얼마 전 아이를 낳은 서유리 씨는 출산 전 4개월간 발레태교를 했다. 임신 초에 요가를 했다는 서씨는 ‘지루하지 않은 태교법’을 찾다가 발레를 하게 된 경우. “태교에 좋은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스트레칭 및 복식호흡 훈련, 명상 등을 한 번에 할 수 있다는 것”이 발레태교의 이점이라고 서씨는 설명한다.



    “저와 같이 수업을 들었던 엄마(임신부)들 중에는 평소 걷는 것조차 싫어했는데 임신한 뒤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운동하게 됐다는 분도 많아요. 아기 옷이나 장난감 만들기, 십자수 놓기 같은 DIY 태교도 열심히 하고요. 제 경우 태교발레 덕에 출산 시간까지 단축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유행하는 교육법이 있듯 태교에도 트렌드가 있다. 모차르트 음악과 뜨개질로 대표되던 태교는 최근 종류가 다양해졌으며 이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한양대병원 산부인과 박문일 교수는 “근래 들어 태교 방법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졌다”고 말한다. 그는 “다양한 태교 방법이 임신부들 사이에서 유행한다”며 “주변에서 좋다는 여러 가지 태교를 하면서도 정작 태교가 왜 필요한지 그 과학적인 배경은 모른 채 막무가내로 따라하는 임신부들이 많다”고 전했다.

    클래식 태교, 국악태교, 영어태교, 수학태교, 요리태교, 미술태교, 웃음태교, 꽃꽂이 태교, DIY 태교, 발레태교, 명상태교까지 종류는 다양하지만 요즘 ‘뜨는’ 태교는 크게 ‘두뇌개발(또는 학습능력 개발)’과 ‘웰빙’이라는 키워드로 설명할 수 있다. 임신부를 대상으로 예비엄마교실을 열어온 매일유업의 탁철 팀장은 이런 변화를 현장에서 실감한다. 그는 “2000년대 들어서부터 임신부를 위한 음악회, 예비엄마교실 같은 이벤트를 여는 유아 관련 업체들이 부쩍 늘어났다”면서 “예전에는 (예비엄마교실이) 바른 정보를 제공하면서 임신부 계도가 목적이었다면, 요즘은 더 건강하고 똑똑한 아이를 키우기 위한 방법론에 초점을 맞춘다”고 말했다.

    “임신부 대상 음악회만 보더라도 예전에는 엘가의 ‘사랑의 인사’류의 평이한 서양음악이었다면 요즘은 국악이나 재즈 등 장르도 다양해졌습니다. 특히 뇌 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태교 강좌가 인기가 있습니다.”

    ‘똑똑한 아이’를 키우고 싶어하는 엄마들의 교육열은 태교에서부터 드러난다. 영어태교의 유행은 그 대표적인 사례. 서점에서 영어태교 관련 교재와 음반을 접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최근에는 일부 대형 출판사들까지 영어태교 관련 교재를 내놓을 정도. 2006년부터 영어태교 교재를 출판해온 한 출판사의 기획자는 “2006년 처음 영어태교 교재를 발간한 이후 꾸준히 반응이 좋다”면서 “영어태교에 관심을 갖는 예비엄마들이 늘고 있다. 영어의 중요성이 커지는 만큼 영어태교 교재의 수요도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아이에겐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영어 환경을 만들어줘 영어에 친숙하게 하고, 엄마도 미리 영어교육법을 연습해보는 거죠. 영어태교를 받은 아이는 태어난 뒤에도 엄마 배 속에서 들었던 영어노래나 오디오 소리를 들려주면 울음을 그치거나 소리에 강한 흥미를 보인다고 하는데, 실제 독자들 중에도 이런 경험을 이야기하는 분이 많습니다.”

    똑똑한 아이, 배속에서부터 만들어야죠

    요즘 유행하는 태교는 종류도 다양하다. 한 출산용품 전문업체가 주최한 교육프로그램에서 요리태교를 하는 임신부들(왼쪽)과 태교발레 학원 수강생들.

    지나치게 얽매이는 것 삼가야

    이렇듯 뇌 발달이나 학습능력 발달을 강조한 것은 비단 영어태교만이 아니다. 클래식이나 국악 태교, 십자수와 DIY처럼 학습과 무관해 보이는 영역에서도 ‘똑똑한 아이’를 태교의 주된 효과로 내세운다. 그러나 그 실질적 효과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모차르트 이펙트’로 불리며 1990년대 이후 유행했던 모차르트 음악 태교에 대해 최근 독일 교육통계부는 “신경과학자, 심리학자, 교육학자, 철학자 등에게 의뢰해 조사한 결과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가 없다”고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임신 8개월의 최하나 씨는 “클래식보다 두뇌개발에 좋다는 말을 듣고 국악태교를 몇 개월간 하다가 취향에 맞지 않아 그만뒀다”면서 “태아의 반응을 ‘엄마의 감’으로밖에 알 수 없는 터라 아이가 태교를 통해 좋은 느낌을 받았는지, 이후 태어나서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모호할 때가 많다”고 태교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태교가 태아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인정하지만, ‘유행하는’ 태교에 지나치게 얽매이는 것은 삼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창규 연이산부인과 원장은 “태아와 엄마의 뇌신경이 연결돼 있는 만큼 엄마가 뇌를 많이 쓸수록 태아의 뇌 발달에 도움이 되지만, 잘못되고 과장된 정보가 많은 것은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아이큐 30인 태아가 영어나 수학과 친숙해지고, 태어난 뒤에도 기억한다는 것은 좀 과장된 얘기죠. 또 아로마 태교 같은 것도 유행하던데, 임신 초에 향수냄새를 너무 많이 맡으면 태아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도 있고요. 태교가 똑똑한 아이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맞지만 반드시 전문가의 검증을 거친 태교를 해야 합니다.”

    박문일 교수 역시 “엄마가 좋은 생각을 하고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때, 이 모든 것이 태교의 구실을 한다”면서 “태교 방법에 치중하다 되레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것”을 강조했다.

    “지금의 과학적 잣대로는 이런 태교를 하면 이렇게 똑똑한 아이가 나온다는 사실을 증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유행하는 태교 방법에 치중하면서 그걸 못 지켰다고 스트레스 받는 엄마들이 있습니다. 주객이 전도된 거죠. 태아는 엄마가 느끼는 감각을 모두 느낍니다. 엄마가 태교로 받는 스트레스는 직접적으로 태아의 성장에 영향을 미칩니다. 똑똑한 아이에 대한 엄마의 지나친 욕심이 오히려 해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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