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63

..

“오늘 우리 마을은 시네마 천국”

섬·요양기관·아동센터 등 찾아 영화 상영 봉사 … 관객 적어도 감동은 물밀듯

  • 김은지 자유기고가 eunji8104@naver.com

    입력2008-11-26 11:1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오늘 우리 마을은 시네마 천국”

    ‘찾아가는 영화관’ 서비스는 영화관 가기가 쉽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사회 구석구석을 찾아간다.

    15평(약 50m2) 남짓한 인천 또래모아 지역아동센터는 오늘 하루 근사한 극장으로 변신했다. 책상을 뒤로 밀고 한쪽 벽에 스크린을 내리고서였다. 마지막으로 영화를 상영하는 기계인 프로젝터를 책상에 설치했다. 이것으로 ‘찾아가는 영화관’ 준비는 완료!

    또래모아 지역아동센터에서 준비해야 하는 한 가지는 바로 관객이었다. 화요일 오후 3시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어린이 관객들의 얼굴엔 설렘이 가득했다.

    맨 처음 관람한 영화는 ‘눈 나쁜 꼬마 방울뱀 이야기’로 유럽 북부 에스토니아에서 제작된 애니메이션이었다. 시력이 나쁜 꼬마뱀 ‘가브리엘’이 독서를 통해 모두가 겁내는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와 친구가 되는 내용이다. 방울뱀 이야기가 재미있었는지 두 번째 영화가 이어질 때 어린이 관객들의 눈빛은 점점 더 초롱초롱해졌다.

    러시아의 애니메이션 ‘말괄량이 지하르카’를 보면서는 웃음소리가 자주 터져나왔다. 러시아 우화를 기초로 한 이 작품은 한 여우가 어린 소녀를 잡아먹으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지만 결국 지하르카에게 당하고 만다는 이야기였다.

    두 편의 애니메이션이 끝나자 막간을 이용해 영화의 이해를 돕고자 ‘영화 해설자’ 김민정 씨의 설명이 이어진다.



    “지하르카가 누구와 살죠?” 김씨의 질문에 아이들은 먼저 대답하려고 앞다퉈 “고양이!” “참새!”라고 말했다. 러시아어로 된 작품이지만 아이들은 쉽게 이해한 듯했다. 다음 영화 ‘화성여행’이 시작되자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졌다.

    “다음은 화성에 가는 얘긴데요, 화성엔 어떻게 갈까요?”

    한국독립영화협회가 위탁받아 시행하는 사업

    해설자 선생님이 던진 질문에 아이들은 “우주선을 타고?”라고 중얼거리며 다음 작품에 몰입했다. ‘화성여행’의 소년은 할아버지와 화성에 갔다. 우주선이나 마술의 힘을 빌린 게 아닌 할아버지의 낡은 트럭을 타고서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소년이 화성에 다녀왔다는 것을 믿지 않았고, 소년도 슬픔과 함께 추억을 묻어버린다. 시간이 흐르고 아저씨가 된 소년. 빗속에서 덜덜 소리나는 차를 타고 그가 찾아간 곳은 화성. 영화를 보던 어린이 관객들은 묘한 감동을 느끼며 친구들에게 말했다. “이 아저씨… 화성에 갔다?”

    ‘찾아가는 영화관’은 (사)한국독립영화협회가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위탁받아 시행하고 있는 사업이다. 2008년 공모를 통해 5개 지역이 선정됐으며, 인천지역은 주안영상미디어센터가 운영하고 있다.

    주안영상미디어센터의 찾아가는 영화관 공식이름은 ‘찾아가는 영화관-인천 구석×2’. 지역의 곳곳을 찾아가 일반 극장에서 보기 힘든 독립영화, 예술영화, 고전영화 같은 비주류 영화를 주로 상영한다. 찾아가는 영화관의 관객들은 다양한 영화를 접하면서 ‘색다른 영화’를 보는 시선과 태도를 자연스럽게 익혀나갈 수 있다.

    “아이들과 같이 영화를 보러 가고는 싶었는데, 아직 한 번도 못 갔거든요. 아이들이 참 좋아하네요.”(또래모아 지역아동센터 김정란 선생님)

    지역에 영화관이 없거나 경제적인 이유로 영화관 가기가 쉽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직접 영사기를 들고 영화 배달부 활동을 하는 ‘인천 구석×2’는 시민사회단체, 아동센터, 야학, 복지시설, 학교 등 인천의 구석구석을 찾아가고 있다.

    “오늘 우리 마을은 시네마 천국”

    ‘인천 구석×2’가 준비한 애니메이션을 보며 즐거워하는 또래모아 공부방 학생들과 선생님.

    10월31일 그들은 인천 대이작도에 있는 이작분교를 찾아가고자 장비를 이고 배에 올랐다. 쾌속선을 탔더라면 1시간 반이면 갈 것을, 완행을 타고 2시간 하고도 5분을 의자도 없이 마룻바닥에 누워 갔다. 풍랑은 거세지고, 그들은 장비를 껴안고 영화를 보며 좋아할 아이들을 떠올리면서 뱃멀미를 참았다.

    “상영할 공간의 형태에 따라 기존 시설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비해 장비를 가지고 배에 올랐죠. 사실 안 갖고 가도 됐던 거예요.(웃음)”(‘인천 구석×2’스태프 노현진 씨)

    노인들이 있는 요양기관에서는 아무래도 고전영화가 인기다. 때론 몸이 불편해 두 시간이나 되는 영화를 끝까지 못 보는 노인들도 있지만, 옛날에 좋아했던 배우가 나오는 한국 영화의 수작들을 보면서 모처럼 향수에 젖는 것이다. 실상 노인들이 극장을 간다 해도 그들이 보고 싶어하는 영화는 찾기 힘들다.

    “이봉래 감독의 ‘삼등과장’ 같은 영화는 좋은 작품이기도 하지만 어른들이 많이 웃고 재미있어 하세요. 오래 앉아 있어서 불편하면 잠깐 나갔다가 끝까지 보려고 돌아오시는 작품이에요.”(노현진 씨)

    영화 선정에는 최대한 관객의 의견을 반영한다. 만약 ‘음악에 관한 영화’를 보고 싶다고 하면 ‘인천 구석×2’스태프들이 관객의 연령, 특성 등을 참고해 적당한 영화를 추천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영화 판권자와 협의 과정을 거쳐 상영될 영화가 최종 결정된다.

    “오늘 우리 마을은 시네마 천국”
    관객 연령대 따라 상영작 그때그때 달라요

    “사실 80%가 넘는 기관에서 ‘쿵푸팬더’를 볼 수 있냐고 물어옵니다. 물론 ‘쿵푸팬더’는 모두가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이긴 하지만, 문화 편식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현상이지요.”(노현진 씨)

    ‘찾아가는 영화관-인천 구석×2’는 11월30일까지 진행된다. 2009년의 계획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인천 구석×2’ 스태프들은 어떻게든 이 사업을 이어갈 방법을 찾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영화를 접해본다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한 번에 그친다면 그건 이벤트잖아요. 물론 2008년 40여 곳을 다닌 것이 앞으로의 방향을 잡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고 더 많은 곳을, 필요하다면 정기적으로 찾아가고 싶어요. 문화 차이를 해소하고 다양성을 확대해나가는 일이 되겠죠.”(노현진 씨)

    또래모아 극장의 영화 상영이 끝났다. 세계 각국에서 제작한 5개의 애니메이션 감상을 마치고 해설자 선생님이 어떤 작품이 가장 재미있냐고 아이들에게 물었다.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작품을 꼽았다. 인상 깊은 부분도 다 달랐다. 먼 훗날 아이들은 트럭을 타고 화성을 다녀온 소년을 생각하며 어떤 기억을 떠올릴까.

    ■ ‘주간동아’가 따뜻한 세상의 이야기를 찾습니다

    ‘주간동아가 만난 따뜻한 세상’에 소개할 사연이나 인물, 단체를 찾습니다. 세상을 훈훈하게 하는 이웃의 이야기를 귀띔해주세요. 훌륭한 업적을 세운 분도 좋지만 꼭 거창할 필요는 없습니다. ‘살 만한 세상’을 만드는 힘은 작지만 착한 움직임에서 나오니까요.☏ 02-361-0966 comedy9@donga.com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