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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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기 소지 자유와 규제의 딜레마

  • 이명재 자유기고가

    입력2008-11-03 15: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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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기 소지 자유와 규제의 딜레마

    영화 ‘다크 나이트’의 한 장면.

    영화 ‘타짜’에서 신체를 절단하는 장면처럼 한국영화에서 폭력 묘사는 이제 리얼한 단계를 넘어 거의 초현실적인 수준이다. 스크린에는 칼 외에도 숱한 흉기가 넘쳐난다. 그런데 가장 강력하고 효율적인 살상 무기인 총은 아직 흔하지 않다. 아무리 범죄조직이라도 민간인이 총을 소지하기는 쉽지 않은 게 한국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달콤한 인생’에서 주인공이 권총을 들고 있는 모습을 내세운 포스터는 뭔가 이국적이다.

    반면 배트맨 시리즈 ‘다크 나이트’에서 악당 조커는 권총 대신 칼을 쓰는 것에 대해 오히려 설명을 해야 한다. “내가 왜 권총을 쓰지 않는지 알아? 그걸로는 고통을 줄 수 없기 때문이지.”

    할리우드 영화의 숱한 총싸움 장면들처럼 미국은 총기의 천국이다. 세계 대부분의 국가보다 미국의 민간인이 휴대하는 총기 수가 더 많다.

    선과 악의 대결 구도로 몰기엔 총기 소지 역사와 이념 뿌리 깊어

    그걸 새삼 확인해준 뉴스가 막판으로 치닫고 있는 미국 대통령선거 소식과 겹쳐서 들려왔다. 대통령 당선이 유력한 흑인 후보 오바마에 대한 암살 기도가 적발됐는데, 경찰이 공개한 사진에는 용의자들이 중화기를 들고 있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용의자들이 스스로 찍어 인터넷 사이트에 올렸다고 하는데, 지나칠 수 없는 건 용의자들의 나이다. 겨우 20세와 18세, 갓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정도의 새파란 젊은이들이다.



    이들 젊은이가 총기를, 그것도 권총이 아닌 기관단총 수준의 무기를 쉽게 소지할 수 있는 게 총기 천국 미국인 것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이런 현실이 도통 이해가 안 된다. 1999년 컬럼바인 고교 사건이나 지난해 버지니아 공대에서 일어난 한국인 유학생에 의한 총기난사 사건을 겪으면서도 왜 총기 규제를 하지 않는 걸까.

    여기서 ‘벤허’ ‘십계’의 명배우 찰턴 헤스턴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 그의 숨겨진 유작(遺作)은 뭘까.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볼링 포 컬럼바인’이다. 그러나 그 자신이 내세울 만한 역할은 전혀 아니었다. 당시 전미총기협회 회장이기도 햇던 이 대배우는 이 다큐에서 마이클 무어에게 총기 규제에 대한 질문을 받고 난처해지자 도망치듯 자리를 피해버린다.

    총기 소지 자유와 규제의 딜레마

    대중연설을 하고 있는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버락 오바마.

    이 영화만 보자면 총기 소지 자유주의와 규제주의는 선과 악의 대결처럼 명확해 보인다. 그러나 미국인들에게 총기 소지는 간단치 않은 역사와 이데올로기적인 뿌리를 갖고 있다. 독립전쟁 민병대의 전통, 서부 개척시대 인디언들과의 싸움 등 상무·호전적인 전통 속에서 총기 소유가 자유와 권리처럼 인식돼온 것이다. 미국 헌법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규율 있는 민병들은 자유로운 주의 안보에 필요하므로 무기 소지 및 휴대에 관한 국민의 권리를 침해할 수 없다.”(수정헌법 제2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오바마는 아직 유력한 후보지만, 이 글이 읽힐 때는 이미 당선됐거나 당선이 임박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첫 흑인 대통령이 될 경우 그에 대한 암살 기도는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어, 그는 임기 내내 긴장 속에서 살아야 할지 모른다. ‘오바마 대통령’이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미국 사회의 이 오래된 숙제를 풀 수 있을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영화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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