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78

2017.03.08

김승용의 俗 담은 우리말

개구리 특성의 멋진 응용

‘청개구리 같다’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aristopica@gmail.com

    입력2017-03-03 16: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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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우내 잠자던 개구리가 따스함에 놀라 뛰쳐나온다는 경칩이 다가옵니다. 하지만 흔한 개구리 말고 이상한 개구리, 즉 청개구리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물로 가라 하니 산으로 간다’는 말과 함께 속담처럼 쓰는 ‘청개구리 같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엄마와  아들 청개구리에 대한 유명한 이야기에서 나온 표현이죠. 평소 말을 안 듣고 거꾸로만 행동하는 아들 청개구리 때문에 근심 가득하던 엄마 청개구리는 죽으면서 유언을 남깁니다.

    “나 죽으면 산에다 묻지 말고 물가에 묻어다오.”

    그래야 자신을 산에다 묻어줄 거라 생각한 거죠.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그동안 자신이 했던 불효를 뉘우친 아들 청개구리는 진짜로 엄마를 물가에 묻고 맙니다. 그 뒤로 비만 오면 엄마 무덤이 떠내려갈까 봐 애타게 운다는 이야기입니다. 살아 계실 때는 몰랐다가 돌아가신 뒤에 드는 효심은 무의미하고 어리석다는 교훈이 담겨 있죠.

    이 이야기는 중국 당나라 때 이석(李石)이 편찬한 ‘속박물지(續博物志)’에 ‘청와전설(靑蛙傳說)’이란 민담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1000년도 넘은 이야기이죠. 여기서 잠시 생각해볼 대목이 있습니다. 왜 청개구리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일까요. 두 개의 질문을 던져봅니다.



    첫째, 어째서 아들 청개구리는 거꾸로만 행동했을까. 청개구리는 영어로 ‘Tree Frog’, 즉 ‘나무개구리’라고 합니다. 여느 개구리와 달리 물가가 아닌 수풀이나 나무 위에서 생활하기 때문입니다. 짝짓기와 산란할 때를 제외하면 ‘물이 아닌 산으로’ 가는 거죠. 잠시만요, 개구리가 나무를 탄다고요? 네, 맞습니다. 청개구리는 여느 개구리외 달리 발가락 끝에 있는 흡반이 발달해 나무는 물론, 스파이더맨처럼 높은 빌딩도 타고 오를 수 있습니다. 예전에 청개구리를 모델로 내세운 모 화장품회사에서 고층빌딩 벽을 오르는 청개구리 모습을 광고로 내보낸 적도 있습니다.

    둘째, 아들 청개구리는 엄마 무덤이 떠내려갈까 봐 비만 오면 운다? 청개구리가 울고 나서 72시간 안에 비가 올 확률이 60~70%라고 합니다. 우리가 노래방에서 오래 노래하면 목이 마른 것처럼 개구리도 오래 울면 체내 수분 손실이 큽니다. 그래서 개구리는 습도가 높을 때 우는데, 청개구리는 개구리 가운데 가장 작은, 어른 엄지손가락 한 마디 크기라서 체내 수분도 매우 적습니다. 그러니 청개구리는 습도와 강우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울다가 탈수 현상으로 죽을 수도 있으니 습도가 높을 때 구애의 노래를 하는 게 유리할 것입니다.

    이렇게 퍼즐이 맞춰졌습니다. 엄마와 아들 청개구리 이야기는 청개구리의 특이한 서식과 행동 양상을 바탕으로 지어낸 것입니다. 뭐든 이유 없이 만들어진 이야기나 속담은 없겠지만, 옛사람들의 세밀한 관찰과 멋진 응용에 감탄만 나옵니다.

    아무튼 이 이야기가 한중일 세 나라에 1000년 넘게 전해오지만, 자식들은 여전히 청개구리입니다. 효는 갚음이 아니라 부모에 대한 사랑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하죠? 지금부터라도 부모님과 서툰 연애를 해보길 권합니다. 때늦게 철든 청개구리가 아니라 지금까지의 자신에게 청개구리가 돼서 말입니다.


    김승용은
    국어학과 고전문학을 즐기며, 특히 전통문화 탐구와 그 가치의 현대적 재발견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속담이 우리 언어문화 속에서 더욱 살찌고 자랄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고자 10년간 자료 수집과 집필 끝에 2016년 ‘우리말 절대지식’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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