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53

2008.09.16

흥, 세계 패션디자인 꿇어!

  •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입력2008-09-08 16: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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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 세계 패션디자인 꿇어!

    올 가을, 겨울을 겨냥한 ‘스말토’ 컬렉션. 박윤정 씨는 “소설 ‘위대한 게츠비’에 등장하는 환락적인 1920년대 모습을 모티프로 했다”고 설명했다.

    올1월 파이낸셜 타임스는 미국 뉴욕을 중심으로 한 세계 패션무대에서 유난히 두각을 나타내는 한국계 디자이너들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신문은 ‘미국 패션의 미래는 한국인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뉴욕 패션계의 등용문인 ‘젠 아트(Zen art)’가 신인 패션쇼에 출전할 수 있도록 선정한 디자이너 8명 가운데 절반이 한국인 또는 한국계 미국인이었던 데다 뉴욕의 유명 패션스쿨 ‘파슨스’ ‘FIT’의 외국인 재학생 중 25% 가량이 한국계인 것으로 조사됐기 때문이다. 프랑스 파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뉴욕과 파리의 유명 패션스쿨에서 유학한 한국계 디자이너들이 세계 패션디자인 업계를 ‘접수’하고 있다. 방한 중인 또는 방한을 앞둔 ‘코리안 디자인 파워’의 대표주자, 박윤정 두리정 채규인에게 물었다. 현재진행형인 이들 3명의 성공스토리와 꿈은 이들의 행보에 주목하는 수많은 후학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박윤정 = ‘이미지’보다 실력으로 승부

    나풀거리는 초록색 원피스, 이번 여름 ‘핫’ 아이템인 검투사풍 샌들, 선탠한 듯 가무잡잡한 피부까지…. 멋쟁이 여대생 같은 모습의 그는 프랑스 명품 남성복 브랜드 ‘스말토’의 디자인 수장 박윤정(30)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8월19일 서울 청담동 ‘스말토’ 매장에서 만난 그는 휴가와 시장조사를 겸한 이번 방한 기간에 ‘주간동아’에만 잠시 시간을 허락했다.

    스말토는 1962년 이탈리아 출신의 양복 디자이너 프란체스코 스말토가 만든 고급 맞춤양복 브랜드다.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 프랑스 국민배우인 제라르 드 파르디유와 장 폴 벨몽도, 할리우드 배우 숀 코너리 등이 그의 VIP 고객으로 꼽힌다. 2006년 독일월드컵 때는 프랑스와 독일 축구대표팀의 정장 유니폼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박씨는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독일에서 만나 결혼한 부모님은 취리히에 정착해 각각 사업가와 간호사로 일했다. 어머니는 취리히에서 한국 식당을 운영하기도 했다.

    “1997년 파리의 패션스쿨 에스모드에 입학한 직후부터 남성복에 매력을 느꼈어요. 여성복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작은 디테일로 큰 변화를 줄 수 있어 더 창의적인 작업을 할 수 있거든요.”

    에스모드 재학 시절 스말토에 인턴사원으로 취직해 약 7년간 근무한 그에게 지난해 수석디자이너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직을 제안한 것은 창업자 프란체스코 스말토였다. 그보다 더 브랜드를 잘 이해하고, 실력 있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 발탁의 변이었다.

    “여성의 눈으로 본 남성복이 더 경쟁력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었어요. 남성 디자이너였던 전임자가 강하고 섹시한 남성미를 표현하려 애썼다면 저는 여성이 좋아하는 남성의 모습을 부드러운 컬러와 옷감, 디자인을 통해 구현하려고 힘쓰고 있어요.” 그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뮤즈는 한국 가수 비와 영국 배우 주드 로.

    박씨는 파리 패션계에 안착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배경으로 외국어 실력을 꼽았다. 한국어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 이탈리아어를 모두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다는 점이 출장이 잦은 업무 특성상 큰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박씨는 파리의 한국인 유학생들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성취력, 이해력, 손재주는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국제적 감각이 모자란 경우가 많아요. 한국인 후배들에게 함께 일하는 기회를 주고 싶지만 프랑스어를 못해 탈락시키는 경우가 많거든요.”

    이번 한국 여행길에는 박씨의 어시스턴트 디자이너 이주영(27) 씨가 동행했다. 그 역시 한국인이다. 상사를 스스럼없이 ‘언니’라고 부르는 이씨는 담대함이 박씨의 숨겨진 저력이라고 꼽았다. “언니가 지휘하는 첫 패션쇼 데뷔를 앞두고 다른 직원들은 정말 많이 떨었거든요. 그런데 정작 본인은 쇼 한 시간 전에야 ‘조금 긴장된다’고 하더라고요.”

    한 브랜드의 디자인 수장이 되고도 그는 모델에게 간식을 챙겨주고, 광고 촬영장을 청소하는 일을 솔선수범 한다. 이씨가 나지막한 한국어로 ‘이미지를 위해서라도 직접 하지 말라’며 옆구리를 쿡 찔러봐도 소용없단다.

    “저는 패션계의 ‘디바(diva)’가 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어요. 나 스스로 바닥부터 시작해서 아랫사람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잘 알거든요. ”

    박씨가 구상하는 앞으로의 도전과제는 신중하게 그러나 빠르게 진행될 전망이다. 그는 “일단은 고급 맞춤복 라인인 스말토 파리와 캐주얼한 세컨드 라인 ‘스말토 바이’에 집중하되, 한때 러시아에서만 판매됐던 여성복 라인에도 다시 한 번 도전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 두리정 = 세탁소 지하에서 키운 꿈

    흥, 세계 패션디자인 꿇어!

    9월 중순부터 위즈위드를 통해 선보이는 ‘W 콘셉트 바이 두리’의 디자인 일러스트. ‘합리적 가격대의 럭셔리 브랜드’를 표방하며 뉴욕풍의 도시적이고 세련된 디자인이 특징.

    두리정(35) 씨는 뉴욕의 패션디자인을 이끌 차세대 로 주저 없이 꼽히는 한국계 디자이너다. 뉴욕 파슨스디자인학교를 수석 졸업한 그는 2004년 미국패션디자이너협회(CFDA) 선정 유망디자이너상 수상, 미국 뉴스위크의 ‘2006년에 주목할 인물’(패션 부문) 선정, 2006년 CFDA 신인디자이너상 및 삼성패션디자인펀드상 수상 등으로 국내외 패션업계에 이름을 떨치고 있다. 소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실제 모델인 안나 윈투어 미국 보그 편집장도 그에게만큼은 악마가 아닌 천사처럼 든든한 지원군이 돼주고 있을 정도다.

    정씨는 9월 중순부터 국내 인터넷 쇼핑몰 위즈위드를 통해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브랜드 ‘W 콘셉트 바이 두리’를 선보인다. 9월21일 방한하는 그를 e메일로 먼저 만났다. 영어로 보낸 답변지에서 스포트라이트의 주역답지 않은 겸손함이 묻어났다.

    그는 네 살 때인 1977년, 부모님 남동생과 함께 미국 뉴저지에 정착했다. 한국에서 출판 관련 일을 했던 부모님은 “자식들이 좀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해주고 싶어 이민을 결심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가장 큰 성공비결로 부모님의 희생을 꼽았다. “제 패션쇼를 앞두고 엄마는 재봉을, 아빠는 공장에서 옷을 수거해 작업실로 가지고 오는 일을 도와주시곤 했어요. 패션쇼에 필요한 자금을 대주시는 것은 물론이었고요.”

    그의 작업실이 부모님이 운영하던 세탁소 지하에 있었던 까닭에 데뷔 초기, 현지 언론들은 ‘세탁소 지하에서 꽃피운 아메리칸드림’이란 제목의 기사를 쏟아내기도 했다.

    파슨스를 수석 졸업한 정씨는 ‘피플’지 디자인전에 공모한 작품으로 뉴욕타임스의 호평을 받은 직후 미국 패션계의 거물 제프리 빈에게서 러브콜을 받았다. 6년간 그와 함께 일한 뒤 2002년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선보이며 뉴욕 패션계에 독자적인 디자이너로 데뷔했다.

    그는 특히 미국 현지 언론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게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미국의 거물급 디자이너들이 점점 나이 들어가면서 미국 패션을 이을 차세대 주자에 대한 갈망이 커졌거든요. 동양인이라고 차별한다는 느낌은 가져본 적이 없어요.”

    그는 자신의 디자인을 ‘관능적이고(sensual)’ ‘부드러우며(fluid)’ ‘세련됐다(sophisticated)’고 압축했다. 위즈위드를 통해 선보이는 의상들에도 이러한 디자인 철학이 담길 예정이다.

    “고급 컬렉션 라인인 ‘두리정’의 고객들은 매우 제한적인 편이지요. 제 디자인을 훨씬 넓은 층에게 입힐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신나요.”

    그는 ‘두리정처럼 되고 싶다’는 일념으로 뉴욕 패션계의 문을 두드리는 한국인 후배들에게 따뜻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유명해지기만을 갈망해서는 안 돼요. 새롭고 훌륭한 작품을 창조해낸다는 마음으로 일해야죠. 비전을 가지세요. 그리고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나가세요.” 그는 곧 자신의 슈즈라인이 론칭된다며 들떠 있었다. ‘창조’를 향한 그의 갈망은 끝이 없어 보였다.

    흥, 세계 패션디자인 꿇어!

    박윤정,두리정,채규인(왼쪽부터).

    ◎ 채규인 = 땀, 꿈, 맛을 추구하다

    파리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 채규인(38) 씨에게 국내 패션피플의 시선이 집중된 것은 7월9일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코오롱패션 남성복 패션쇼장에서였다. 홍콩 누아르 영화 속 주인공처럼 성냥개비를 스타일리시하게 물고 런웨이에 오른 남성 모델들은 독특하지만 경박하지 않은 옷들로 객석을 술렁이게 했다.

    코오롱의 멀티 브랜드 ‘시리즈’를 통해 올 가을부터 국내 시장에 디자인을 선보이는 그에게 그동안의 여정과 앞으로의 꿈을 e메일로 물었다.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지만 그는 한국에서 성장하고, 홍익대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한 ‘토종 한국인’이다. 대학 졸업 후 파리 유학길에 올라 파리의상조합학교와 국립고등장식미술학교(ENSAD)에서 기초를 다졌다.

    패션의 본고장에서 그의 재능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은 1999년 파리국제신발디자인전에서였다. “프랑스의 유명 구두 디자이너 로저 비비에에 대한 오마주를 표현하는 것이 주제였어요. 립스틱을 구두굽으로 사용한 작품으로 특별상을 받았고, ‘오피시엘 파리’ ‘주르날 드 텍스틸’ 등 패션 전문지들이 주목하면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평소 관심이 많았던 두 브랜드, 겐조와 크리스티앙 디오르에서 인턴십을 하며 착실히 실력을 쌓아나갔다. 그리고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스타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의 눈에 띄어 그의 디자인팀에 합류하게 됐다. 20여 명으로 구성된 디자인팀에서는 크리스티앙 디오르와 존 갈리아노 브랜드의 의상 작업을 함께 진행한다.

    흥, 세계 패션디자인 꿇어!

    채규인의 ‘마미페어 드 룩스 파리’ 컬렉션 컷. 그의 디자인은 코오롱의 ‘시리즈 바이 채규인’으로 국내에 소개된다. ‘군중 속 고독감을 자신만만하게 즐기는 남성’이 컨셉트다.

    “이곳에서 파리 패션의 힘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세분화된 전문성을 자랑하는 협력업체들이 브랜드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거든요. 이들이 스타 디자이너를 서포트해주는 시스템은 매우 체계적입니다.”

    2002년부터 2006년까지 4년 동안 크리스티앙 디오르 디자이너로 활동했던 그는 할리우드 배우 니콜 키드먼의 화보 촬영용 의상과 갈리아노가 패션쇼 피날레 때 입는 쇼 의상을 도맡아 디자인하는 등 디자인팀 내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이렇게 유명 패션하우스에서 익힌 노하우를 바탕으로 채씨는 지난해 1월, 재킷을 주력 상품으로 내세운 남성복 브랜드 ‘마미페어 드 룩스 파리’를 론칭했다.

    파리에서 디자이너로 뿌리내리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최근에는 일부 브랜드의 경우 아시아인 디자이너 비율이 프랑스인보다 많을 정도로 아시아인 선호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하지만 정식 직원으로 취업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외국인 취업비자가 쉽게 발급되지 않는 시스템을 악용해 아시아 엘리트들을 1년 이상 인턴으로 묶어두고 정규 디자이너로 채용하지 않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는 세계적 디자이너가 되기를 꿈꾸는 한국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감을 찾는 일”이라고 말했다. “맹목적으로 이미 성공한 브랜드만 우러러보는 것은 열등감만 키웁니다. 디자이너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인내입니다.”

    그는 자신의 스타일을 명쾌하게 3음절로 소개했다. ‘땀, 꿈, 맛’. 그 안에 그가 추구하는 우주가 모두 담겨 있다는 설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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