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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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환란은 없다”

외환위기 주역 강경식 前 부총리 … “97년과 지금은 천양지차, 환율은 시장에 맡겨야”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입력2008-09-08 15: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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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2  환란은 없다”
    10년 10개월 전 한국 경제는 ‘환란(換亂)’으로 풍비박산이 났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구제금융 지원계약을 맺은 1997년 12월3일은 ‘경제 국치일’로 기억되고 있다. 결코 되풀이해서는 안 될 치욕스러운 역사다.

    그런데 최근 ‘9월 위기설’ ‘11월 위기설’이 등장하면서 다시 그때와 유사한 위기상황이란 말이 나오고 있다. 환율 급등, 증시 폭락, 채권시장 불안, 외환보유고 감소, 경상수지 적자 등 모든 경제지표가 당시와 흡사하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을 총괄지휘하는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외환위기 당시 재정경제원 차관이었다는 점도 우연찮게 여겨지는 분위기다.

    “한국 경제 실제와 달리 위기 과장”

    정부는 ‘뜬소문’이라며 위기설 진화에 전방위로 나서고 있지만 힘에 부치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정말 위기일까? 외환위기 직전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을 맡아 환란 주역으로 내몰렸던 강경식(72·사진) 동부그룹 상임고문의 생각이 궁금했다. 환란을 막지 못한 데 따른 직무유기와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됐다가 1999년 8월 무죄를 선고받은 그는 2000년 8월 동부그룹 금융·보험 부문 회장을 거쳐 2003년부터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9월2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동부그룹 본사 임원 접견실에서 만난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외환위기를 맞았던 1997년과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며 위기설을 일축했다.



    - 현재 한국 경제상황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유가 폭등, 환율 상승 등 주변 경제상황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1997년에 겪은 외환위기 상황까지 가지는 않을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세상이글로벌화한 지금은 돈의 국경이 사라져 시장의 반응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 그러다 보니 시장 상황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기보다 일단 남을 따라가고 보자는 식의 심리가 팽배하다. 사람들은 좋을 때는 계속 좋을 것이라 생각하고, 나쁠 때는 계속 나쁠 것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세상은 파도처럼 흐르는데 직선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 경제도 실제와 달리 위기로 과장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 1997년 외환위기 때와는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

    “그때는 300억 달러도 안 되는 외환보유고로 버텨야 하는 피 말리는 상황이었다. 1996년 한 해 국제수지(경상수지) 적자가 240억 달러였다. 지금으로 치면 몇천억원에 달하는 적자가 난 셈이다.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살림 자체가 넉넉하다. 최근 몇 년간 계속 흑자가 나다 올해 들어 110억 달러 정도 적자가 났다. 그것도 구조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유가와 환율이 올라가면서 대외여건이 변화해 발생한 것이다. 일시적 적자만 가지고 마치 우리 경제 전체에 문제가 있는 양 볼 건 아니다.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또 그때는 집권 말기였고, 지금은 집권 초기다. 그때는 의욕도 없었다. 당시 집권여당인 신한국당은 김영삼 대통령을 당적에서 제명하고 당명도 한나라당으로 바꿔버렸다. 그러면서 제1당이지 여당이 아니라고 했다. 국회와 행정부가 완전히 단절돼 당정협의 자체가 안 됐다. 지금은 한나라당이 과반수를 차지하는 집권여당이 아닌가. 여당도 정부와 함께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와 능력이 있다는 점에서 그때와는 전혀 다르다.”

    - 위기설이 등장한 가장 큰 이유는 채권시장의 불안이다. 1997년 외환위기도 결국 채권시장의 불안이 원인이지 않았는가.

    “국내 채권에 투자한 외국인들이 그걸 모두 팔아 달러로 바꿔서 나갈 경우 위기라는 것인데, 여기에는 세 가지 경우의 수가 있다. 첫째가 외국인 자신들이 쓸 돈이 당장 급한 경우다. 1997년 외환위기 때 일본이 그랬다. 일본은행이 부실해지면서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기준을 맞추기 위해 우리나라에 빌려준 돈을 만기가 되자마자 회수해 갔다. 지금은 미국이 그런 처지다. 서브프라임 때문에 미수 채권이 많아진 것이다. 하지만 그때처럼 패닉 상태로 갈 것 같지는 않다. 둘째는 한국보다 돈을 훨씬 잘 벌 곳이 있는 경우다. 하지만 지금 세계지도를 펴놓고 보면 어느 나라나 도토리 키 재기다. 셋째는 한국 경제상황이 불안해 투자하면 돈을 떼일 가능성이 높은 경우인데, 지금 우리나라가 그 정도는 아니다.”

    “공급자 중심 접근법 이해 어려워”

    -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경제정책이나 방향에 문제는 없는가.

    “제 2  환란은 없다”

    정부가 환율을 방어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달러를 쓰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근본적으로 할 수 없는, 전혀 승산 없는 게임을 하는 것이다. 국내 3대 국책은행의 외환보유고를 다 합해도 민간이 갖고 있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된다.

    “정부가 환율을 방어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달러를 쓰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근본적으로 할 수 없는, 전혀 승산 없는 게임을 하는 것이다. 국내 3대 국책은행의 외환보유고를 다 합해도 민간이 갖고 있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된다. 그것과 싸울 수는 없다. 결국 시장에 맡겨야 한다. 서민물가를 안정시킨다고 52개 품목을 정해 집중 관리하겠다고 나선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그건 30년 전에 하다 집어치운 일이다. 이명박 정부는 이런 것들을 ‘비즈니스 프렌들리’라면서 기업친화적이라고 강조하는데, 그게 문제다. 그건 공급자 중심의 접근이다. 수요자 중심의 ‘마켓 프렌들리’, 즉 시장친화적으로 가는 게 바람직하다.”

    - 정부의 해명에도 국내외 시장은 1997년 강 고문이 ‘펀더멘털(경제기초)’이 튼튼하다고 했는데도 외환위기를 당한 전례를 들어 믿지 못하는 분위기다.

    “요즘 언론을 보면 그때 내가 거짓말한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그건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바보들의 이야기다. 당시 경제상황을 내가 모를 리 있겠는가. 경제총수가 기자들 앞에서 ‘지금 경제상황이 위기다. 국고가 달랑달랑하다’고 이야기했다면 그날부터 시장은 엉망이 됐을 것이다. 실례가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기자들 앞에서 ‘국고가 텅 비어 밤잠이 안 온다’고 했다가 금융시장이 난리난 적이 있다. 그리고 실제 우리나라 펀더멘털은 튼튼했다. IMF도 인정했다. IMF 협정문 제1조를 보면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은 튼튼하다고 써 있다. 안 그랬으면 우리나라 경제가 이처럼 빨리 회복될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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