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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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어깨 힘 빼고 ‘아빠’로 돌아온 이병헌

주연 영화 ‘싱글라이더’ 개봉 “소소한 행복, 삶의 여유가 그리웠어요”

  • 김민주 자유기고가 mj7765@maver.com

    입력2017-02-27 13:5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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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이병헌 주연의 새 영화 ‘싱글라이더’는 고은의 시 ‘순간의 꽃’ 중 한 구절로 문을 연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액션배우’ 이병헌이 오랜만에 감수성 짙은 작품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그가 보여준 화려하고 숨 막히는 액션과 선 굵은 연기는 잠시 잊어도 좋다. 23일 개봉한 ‘싱글라이더’는 최소한의 대사, 절제된 감정, 예상치 못한 반전으로 관객의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긴다. 더욱이 전작 ‘번지 점프를 하다’(2001), ‘그해 여름’(2006) 이후 오랜만에 선택한 감성영화라는 점에서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2월 20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이병헌은 신작 ‘싱글라이더’에 대해 “연기 인생에서 마음을 움직인 몇 안 되는 시나리오”라며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은 곳은 비행기 안. 할리우드 영화 ‘매그니피센트 7’(2016) 촬영 차 미국으로 날아가던 때였다. 당시를 떠올리며 이병헌은 “마음 깊은 울림이 느껴졌고, 잘 짜인 소설 한 권을 읽은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예전에 찍은 ‘번지 점프를 하다’ 같은 감성 드라마를 좋아해요. ‘언제 그런 작품을 또 할 수 있을까’ 많이 기다렸죠. 최근 영화계에는 범죄·액션물이 많아 ‘싱글라이더’ 같은 잔잔한 내용의 시나리오는 찾아보기 어렵거든요. 처음 출연 제의가 들어왔을 때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미래 위해 지금의 행복을 외면하지 말자”

    제목 ‘싱글라이더’는 홀로 떠난 여행객을 뜻한다. 쉼 없이 달리기만 했던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며 진정으로 우리가 원하는 삶은 무엇인지를 되묻는다. 영화는 잘나가던 증권회사 지점장 강재훈(이병헌 분)이 부실채권 사건으로 하루아침에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재훈은 자기 재산은 물론, 주변 사람들의 돈까지 끌어들여 부실채권에 투자했다 한꺼번에 잃은 뒤 죄책감에 고통스러워한다.

    그러던 중 호주 시드니에 살고 있는 아들과 아내가 보고 싶어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가족에게 위로받고자 달려간 그곳에서 처음 마주한 장면은 아내 수진(공효진 분)이 이웃집 남자와 다정하게 웃고 있는 모습. 재훈은 가족 앞에 나타나지 않은 채 집 주변을 맴돌며 아내와 아들의 달라진 삶을 지켜본다. 한국에선 자물쇠 2개를 단단히 채워야 안심하던 아내는 이제는 문고리가 고장 나도 고칠 생각을 하지 않고, 결혼 후 포기했던 바이올린도 다시 연주하고 있었다.

    일과 가족을 모두 잃었다고 생각하며 거리를 배회하던 중 재훈은 호주에서 고생스럽게 번 돈을 모두 사기당한 한국 소녀 지나(안소희 분)를 만난 뒤 깊은 깨달음을 얻는다. 재훈은 지나에게 “너무 좋은 거래에는 항상 거짓이 있다. 다 뺏기고 이용만 당하고 살 거면서 왜 그렇게 우아한 척하면서 살았는지, 돌이키기엔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다”고 후회한다. 이 대사는 이병헌이 ‘싱글라이더’를 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눈에 보이는 행복이 가까이에 있는데 사람은 대부분 ‘나중에 즐기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소중한 걸 외면한 채 살아가는 것 같아요. 극중 재훈도 아이의 교육 때문에 기러기 아빠의 삶을 선택했는데, 정작 중요한 건 그게 아니죠. 이 영화를 통해 얘기하고 싶은 건 딱 하나예요. ‘미래를 위해 지금의 행복을 외면하지 말자’예요.”

    영화 후반부에서는 가족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간 재훈의 모습이 그려진다. 뒤늦게 아내의 진심을 알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충격적인 진실과도 마주하게 된다. 이 때문에 배우들과 제작진은 ‘스포일러 방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병헌은 “반전을 주 무기로 삼는 작품은 아니지만, 극의 재미를 위해서는 모두가 조심해줬으면 좋겠다. 처음 시나리오를 볼 때부터 관객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리라 생각했지만, 누군가에겐 분명 ‘인생 영화’가 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이병헌은 ‘싱글라이더’에서 처음으로 부성애 연기를 선보였다. 실제로도 세 살배기 아이의 아빠인 이병헌은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놓치고 살 때가 많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빠듯한 촬영 스케줄로 아이의 모든 순간을 함께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촬영이 없을 때는 최대한 많은 시간을 가족과 보내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2013년 배우 이민정과 결혼한 이병헌은 아들 얘기가 나오자 여느 아빠와 마찬가지로 만면에 미소가 번졌다. 작품을 선택하고 연기할 때도 이제는 배우 이병헌뿐 아니라 ‘아빠·남편 이병헌’의 판단이 필요하다고 한다.  

    “결혼한 뒤 연기를 대하는 태도도 조금 달라진 것 같아요. 연기자에게는 새로운 감정을 경험하는 것만큼 훌륭한 재산이 없죠. 영화에서 아들을 부를 때 이름이 아닌     ‘아들~’ 하고 부르는데, 저도 평소 아들을 그렇게 부르거든요. 그 대사를 할 때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뭔가 뜨거운 게 올라오는 느낌이었어요. 작품을 선택할 때도 아내의 생각을 꼭 물어봐요.”



    “아들~” 하고 부를 때마다 가슴 뜨거워져

    이번 영화에서 이병헌은 ‘내부자들’(2015), ‘마스터’(2016) 등에서 보여준 카리스마는 잠시 내려놓고 잔잔한 눈빛 연기로 관객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는 “한 남자의 심리와 감정을 따라가는 작품인 만큼 미세한 감정 변화도 치밀하게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싱글라이더’는 CF 감독 출신인 이주영 감독의 처녀작으로, 이 감독은 CF를 연출하던 시절 기러기 아빠인 사내 동료들을 보면서 시나리오를 집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병헌 역시 아이가 커갈수록 교육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아이는 아이답게 키우고 싶은데, 주변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그게 쉽지 않은 것 같더라. 한 살 때부터 정해진 교육 코스가 있다는 말을 듣고 많이 놀랐다”며 헛웃음을 지었다.

    그는 “이번 연기는 나 자신에게 하는 얘기나 마찬가지”라며 “가족은 물론, 친구와 동료 등 주변 사람들과 느끼는 순간의 기쁨을 놓치고 싶지 않다”고 전했다.

    이병헌의 연기 투혼은 당분간 계속될 예정이다. 현재 영화 ‘남한산성’을 촬영 중인 그는 최성현 감독의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출연도 확정했다. 이병헌에게 20년 가까이 쉬지 않고 작품활동을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지 물었다.

    “계속해서 좋은 작품을 만난 덕분이에요. 하지만 가끔은 저 자신을 너무 소비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특히 근래 무리했다 싶을 정도로 빽빽한 스케줄을 이어왔는데, 현재까지 정해진 작품만 하고 그 뒤에는 충전의 시간을 좀 가질 생각이에요. 그래야 관객에게도 새로운 모습, 발전된 연기를 보여드릴 수 있으니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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