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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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 다리로 아름다운 스텝

  • 이지은 동아일보 출판국 문화기획팀 기자 smiley@donga.com

    입력2008-08-25 17: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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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둥근 다리로 아름다운 스텝
    조명이 켜지고 잔잔한 왈츠 선율이 흐르면 그는 유려하게 ‘턴’을 돈다. 격렬한 스텝을 밟다가도 천천히 미끄러지는 그의 은빛 다리는 동그란 휠체어 바퀴다.

    8월17일 서울 그랜드힐튼호텔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08 제3회 회장배 전국장애인댄스스포츠선수권대회 및 프로·아마추어 댄스스포츠선수권대회’에 출전한 오연석(48·왼쪽) 씨. 비장애인 파트너 이경화 씨와 환상적인 조화를 이룬 끝에 ‘휠체어 스탠더드 5종목’에서 1위를 차지했다.

    지체장애 1급. 초등학교 5학년 이후 말초신경이 마비되는 장애를 겪으면서 30여 년째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지만 장애인 댄스스포츠 분야에서 알아주는 ‘댄서’다. 2003년 7월 휠체어 댄스스포츠를 시작한 뒤 5년 동안 참석한 국내외 대회만 20여 개. 우승 경험도 10여 차례에 이른다.

    “댄스를 배운 지 8개월 만인 2004년 3월 홍콩에서 열린 휠체어 댄스스포츠대회에 참가했어요. 춤이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동작만 외워 나갔는데 5등을 차지했죠. 내친김에 그 다음 달 네덜란드에서 열린 대회에도 참가했는데 시니어 부문에서 1등을 한 거예요. 기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언니한테 고맙기도 하고…, 많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지금도 무대에 설 때는 늘 설레요.”

    오씨는 딸 여섯, 아들 하나인 집에서 여섯째로 태어났다. 그를 포함해 여섯 자매 가운데 세 명이 말초신경이 마비되는 장애를 갖고 있다. 오씨에게 휠체어 댄스스포츠를 권한 것은 같은 장애를 앓는 넷째 언니. 동생과 함께 춤을 추고 싶어한 언니였지만, 장애가 심해져 시작조차 할 수 없었다.



    오씨는 춤출 때의 표정이 풍부하기로 유명하다. 특히 왈츠를 출 때면 즐거움과 내면의 슬픔이 오롯이 담긴다. 그는 “파트너의 리드에 따라 음악을 느끼며 동작을 취하다 보면 표정은 자연스럽게 나온다”며 배시시 웃었다.

    “춤추는 순간만은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어요. 남들은 운동이 되니까 좋을 거라고 말하지만, 정서적인 면에서 더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비장애인들과 함께 어울릴 수도 있고요. 춤바람 났다고 놀림도 받지만(웃음), 춤은 제게 새로운 세상을 알려줬어요.”

    오씨의 두 눈과 은빛 다리가 함께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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