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51

2008.09.02

뭐? 1000원짜리는 비지떡이라고?

1000원숍 다이소 불황 먹고 수직 성장 … ‘착한’ 가격, 다양한 상품 온라인에서도 호황

  • 용인 =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입력2008-08-25 12: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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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1000원짜리는 비지떡이라고?

    서울 서대문구 다이소 영천시장점의 모습. 전국의 1000원숍들은 습기제거제, 수세미 등 생활필수품들과 우유마개, 날짜 표기식 봉투클립 등 아이디어 상품들을 찾는 고객들로 붐빈다.

    8월19일 오전 8시40분, 어슴푸레한 아침 기운이 감도는 경기 용인시 기흥구 고매동 다이소아성산업(이하 다이소) 물류창고. 부산에서 올라온 길이 12m짜리 컨테이너들이 네모난 입을 쩍 벌린 채 누런색 박스들을 끝없이 토해낸다.

    ‘메이드 인 차이나’ ‘메이드 인 베트남’ ‘메이드 인 코리아’ 등의 프린트를 몸에 새긴 채 곳곳에서 모인 이 ‘다국적군’은 품목명도 다양하다. 대다수는 ‘고급 도기수저통’ ‘리본 포장지세트’ ‘강아지 인형’ ‘클리어 면봉함’ 등 친숙한 이름의 생활용품이다.

    국내 최대 규모의 균일가 유통사인 다이소는 일본에서 ‘100엔숍’을 운영하는 일본 다이소산업과 국내 무역회사 한일맨파워가 합작 설립한 회사로, ‘1000원숍’이란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하역작업을 지켜보던 다이소 조민호 부장은 “매일 6~9대의 컨테이너가 중국 일본 동남아 유럽 등 27개국에서 온 물건들을 부산항에서 싣고 온다”고 말했다. 주문 물량이 많을 때는 12대가 물류창고에 한꺼번에 들이닥치기도 한다. 이날 도착한 컨테이너 한 대에 실린 박스만 2110개.

    오전 9시. 조회를 마친 50여 명의 직원들이 국민체조 음악에 맞춰 몸을 푼다. 마지막 동작인 숨고르기 순서가 채 끝나기도 전, 기다렸다는 듯 각자의 작업 위치로 잰걸음을 한다.



    물류창고의 아침은 6시 반부터 시작됐다. 전날 저녁 주문에 맞춰 매장별로 분류된 물건들이 이때부터 18대의 소형 화물차에 실려 중부 및 강원 지역으로 출발하기 때문이다.

    한편 물류센터 한쪽에서는 각 매장이 발주한 물건들을 보관장소에서 찾아낸 뒤 박스에 분류해 담는 ‘피킹(picking)’ 작업이 한창이다. 매일 오후 3시에 접수가 마감되는 매장별 주문서는 디지털 피킹시스템(Digital Picking System)을 통해 작업대로 직접 전송된다.

    9년 전 입사한 물류센터담당 신동균(38) 과장은 최근 들어 일이 크게 늘었다고 귀띔한다.

    “피킹 건수만 봐도 지난해 3만 건에서 올해 4만8000건 정도로 증가했어요. 디지털 피킹시스템 도입 이후 약 120명의 작업자가 70명으로 줄었는데, 요즘엔 손이 모자라 다시 110명으로 늘었을 정도입니다.”

    2만개 아이템 중 90%가 2000원 이하

    물류센터를 떠난 수만 개의 물건은 다이소 직영점과 가맹점을 통해 소비자와 만난다.

    서울 서대문구의 다이소 영천시장점을 찾은 회사원 최경희(30) 씨는 “식품이 주류를 이루는 마트에서는 한 번에 찾기 힘든 생활용품을 이곳에선 한자리에서 쉽게 고를 수 있는 데다 아이디어 상품도 많아 즐겨 찾는다”고 말했다.

    배홍연(33) 점장은 “소비자들의 요구사항을 접수해 상품 개발에 반영한 사례도 많다”고 말했다. 이 매장의 인기 상품인 싱크대 수도꼭지에 매다는 분무장치가 대표적이다.

    ‘1000원숍’은 다른 업종들은 거의 울상 짓는 고유가, 고원자재가로 인한 경기침체기에 되레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다이소 매장에서 판매하는 약 2만개 아이템 가운데 90%가 2000원 이하의 ‘착한’ 균일가로 판매된다. 이중 1000원짜리 제품이 55%를 차지한다. 다이소의 전국 매장 수는 405개. 지난해 매출액은 1500억원을 기록했다. 1000원숍이 문을 연 1997년 3억원대 매출을 올렸던 때와 비교하면 10년 만에 500배 성장한 셈이다. 1500억원은 1200원짜리 물건을 매일 34만개 판 것에 해당한다. 또한 6m 컨테이너 약 4500대에 꽉 채워진 물건값에 해당하는 액수다. 매년 30%씩 성장해온 다이소는 최근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49% 성장하는 등 론칭 이후 최고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회사 측은 이 같은 추세라면 올해 매출 목표 2100억원을 무난히 넘어서리라 내다보고 있다(표 참조).

    다이소뿐 아니라 온라인 1000원숍도 호황이다. G마켓, 옥션, 디앤숍, 인터파크 등 유명 인터넷 쇼핑몰들은 사이트 내에 1000원숍 코너를 따로 만들었다. ‘천냥하우스’ ‘에브리천’ 등은 아예 1000원 이하 제품을 주력으로 한 쇼핑몰을 운영 중이다. 롯데백화점은 8월 말까지 문화센터에서 1000원짜리를 내고 재테크 강의를 들을 수 있는 ‘1000원 특강’을 마련하기도 했다.

    ‘1000원숍’의 인기와 더불어 최근 주목받고 있는 다이소 상품개발실은 기흥 물류센터 2층에 자리잡고 있다. 책상들 사이를 가득 메운 진열대와 진열대를 꽉 채운 물건들 때문에 의자에 앉은 직원들의 얼굴을 찾기가 쉽지 않다. 진열대는 위생용품, 인테리어 용품 등 품목별로, 또 ‘검토상품’ ‘진행상품’ ‘신상품’으로 분류됐다.

    물건들 틈에서 박종훈(39) 국내상품부 차장을 만났다. 그는 가장 잘 팔리는 아이템을 묻자 기다렸다는 듯 면봉세트를 꺼내 흔들었다.

    뭐? 1000원짜리는 비지떡이라고?
    면봉 400개짜리 한 세트는 한 달에 6만개씩 팔린다. 판매 2, 3위 상품은 매달 약 5만개 팔리는 건전지와 3만5000개씩 나가는 비닐백, 비닐장갑 세트. 박 차장은 “주고객층이 20대 후반~40대 후반 주부이고, 전체 고객의 80%가 여성이기 때문에 생활, 주방용품이 꾸준히 잘 팔린다”고 설명했다.

    “이 물건들은 ‘목적구매’를 통해 판매되는 제품들이죠. 한마디로 필요해서 샀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파는 사람 처지에서는 그런 물건만 다뤄서는 안 됩니다. 소비자들의 충동구매를 유도하기 위해 점차 인테리어 제품군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까다롭게 고르고 당당히 컴플레인

    뭐? 1000원짜리는 비지떡이라고?

    현재 판매되는 제품과 판매를 검토 중인 제품들로 가득한 다이소아성산업 상품개발실(왼쪽). 물류창고의 분주한 모습.

    목적구매를 하러 온 소비자들이 충동구매로 ‘생각의 전환’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제품은 목각인형, 조화(造花) 장식품, 향초 등이다. 소비자들은 수세미를 사러 왔다가 그 옆에서 은은한 향을 내는 향초를 집어들게 된다.

    한편 사용법이 복잡한 아이디어 상품들은 ‘대박’이 나기 힘들다. 판매구조의 특성상 판매원이 일일이 설명해줘야 하는 제품들은 다루기가 쉽지 않기 때문. 박 차장은 “설명이 필요한 제품들은 패키지에 사용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놓고 제품 이름이나 패키지 문구도 최대한 자세하고 이성적으로 쓴다”고 말했다.

    박리다매식 비즈니스 모델도 고유가, 고원자재가 시대의 파도를 피해가긴 쉽지 않을 터.

    “1000원이라는 물건 가격 자체가 우리의 가장 큰 경쟁력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다른 회사들처럼 원가 상승분을 판매가에 자유롭게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 딜레마죠”(조민호 부장)

    하지만 그는 앞으로도 가격을 상향조정할 계획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1997년을 전후한 외환위기 때 전성기를 맞다가 급격히 쇠락한 균일가 업체들이 대개 1000원대라는 ‘핵심가치’를 지키지 못하고 은근슬쩍 가격대를 높이다 소비자들에게서 외면받게 됐다는 사실을 타산지석으로 삼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리다매만 내세워서는 매출을 높이기가 쉽지 않을 듯했다. 박 차장은 원가를 줄이는 상품 기획의 예로 꽃그림이 새겨진 사기 수저통을 집어들었다.

    “이런 제품은 아웃렛에서도 6700원은 줘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2000원에 맞춰야 하기에 수저 담는 사기통을 만들 공장과 사기통을 받치는 쇠받침대를 가장 싸게 제작할 공장을 따로 발굴한 뒤, 서로 연결해 더 싸게 가격을 맞출 수 있도록 독려했습니다.”

    국내 200여 개 업체를 포함, 해외 27개국 1500개 업체에서 납품받고 있는 다이소는 베트남 인도 파키스탄 브라질 업체 등으로 소싱처를 다각화하는 방법으로 원가를 낮추기 위해 애쓴다고 한다. 박정부 사장은 더욱 저렴한 상품 개발을 위해 1년 중 100일가량을 해외 출장으로 보낼 정도다. 할인, 끼워팔기 등 프로모션이 없다는 것도 원가를 지키는 데 큰 구실을 한다.

    1000원짜리 물건이라고 소비자들이 쉽게 사갈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라는 게 다이소 직원들의 공통된 증언. 소비자들은 ‘이렇게 싸게 판다면 분명히 하자가 있을 것’이라며 돋보기를 들이대듯 물건을 꼼꼼히 살피고, 백화점에서처럼 컴플레인도 당당히, 또 빈번히 제기한다는 것이다. 유통 전문가들은 고물가가 계속되는 한 1000원숍 또는 1000원짜리 물건의 신화가 계속되리라는 데 이견을 보이지 않는다. 신제품 개발로 소비자의 흥미를 유발하고, 상품의 품질관리만 제대로 한다면 오히려 소비층이 더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서민층 밀집지역뿐 아니라 서울 강남 등에서도 고른 매출을 보인다는 사실은 회사 측으로서는 고무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바야흐로 ‘1000원짜리’는 고물가 시대 최고 소비 트렌드로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이제 1000원이 대세다.

    다이소아성산업 연도별 매출 현황
    연도
    매장 수
    매출액
    1997
    5개
    3억원
    2000
    82개
    245억원
    2002
    174개
    400억원
    2004
    275개
    650억원
    2006
    345개
    1050억원
    2007
    390개
    1500억원
    2008
    405개
    2100억원(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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