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49

2008.08.19

‘진솔함과 고독’은 예술가의 영원한 조건

  • 최광진 미술평론가·理美知연구소 소장

    입력2008-08-13 11: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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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솔함과 고독’은 예술가의 영원한 조건

    이중섭 ‘흰 소’(1954)

    고도의 전문가가 아닌 한, 작품만 보고 그 가치를 판단하는 일은 쉽지 않다. 우리의 눈이 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작가의 현란한 포장술에 속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에 대한 평론가의 글도 믿을 수 없다. 객관성 없이 주례사처럼 쓴 평론은 종종 이상한 논리로 형편없는 작가를 대가처럼 만들어놓기도 한다. 컬렉터들에게 작가는 일종의 기업이다. 작품에 대한 투자는 애널리스트들이 기업을 리서치하듯 종합적이고 신중해야 한다.

    작가를 분석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작가의 생활태도나 의식에 대한 주변인들의 소문을 듣는 일이다. 특히 작업과정이나 생활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본 동료 작가들의 발언은 참고할 만하다. 같은 생산자인 작가들이 보는 관점은 일반인과 다를 뿐 아니라 좀더 정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생활태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진실성과 고독을 즐길 수 있는 자질의 여부다. 예술은 일반적인 상식과 관습을 벗어나는 지점에서 자양분을 얻을 수 있고, 자신의 지식이나 양식과 대결하기 위해서는 진솔하게 스스로를 반성하며 외로운 싸움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마음이 가난하고 정신이 배고픈 것은 예술가가 되기 위한 첫째 조건이다. 권력과 예술은 속성상 상극이다. 권력의 속성은 개체들의 다양함을 통합하는 힘이고, 예술의 속성은 획일화된 통합에서 개성을 회복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술가 최대의 적인 명예와 권력을 오히려 쫓아가는 예술가들이 종종 있다. 대중이 내용의 실체를 보지 못하고 대학교수라는 직함이나 수상 경력에 의존하는 한 이러한 역행은 계속될 것이다. 권력이나 명예로 대중의 눈을 일시적으로 가릴 수는 있으나 역사는 이들을 용납하지 않는다.

    국민작가인 박수근이나 이중섭은 대학교수란 명예도 없었고 거창한 수상 경력도 없었지만 진솔하고 고독하게 자신과 치열한 싸움을 벌였던 작가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생존 당시 미술계에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며 정치적 유명세를 키웠던 작가들은 이제 서서히 잊혀가고 있지 않은가. 시대가 바뀌어서 작품의 매체가 바뀌고 양식이 바뀌더라도 진솔함과 고독은 예술가의 영원한 조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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