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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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 전쟁 그리고 살육

  • 이명재 자유기고가

    입력2008-08-13 10: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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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열, 전쟁 그리고 살육

    ‘인게이지먼트’

    20세기의 양대 세계대전 중 희생자 수로만 보면 2차 대전이 압도적이다. 그러나 유럽인들에게 ‘Great War’라는 수식어가 붙는 진정한 ‘대전’은 오히려 제1차 대전이다. 왜 그런가? 먼저, 세계대전이라고 명명은 됐지만 사실상 유럽에서 벌어진 유럽인들의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은 1차 대전이 그때까지 전혀 겪어보지 못한 끔찍한 전쟁이었다는 점이다. 유럽 각국 국민들은 자국 정부의 전쟁 선포 소식에 거리로 쏟아져나와 열광했다. 그러나 사람들을 흥분시켰던 민족주의적 열정과 낭만적 환상은 국경선을 따라 길게 늘어선 참호 안에서 수렁에 빠졌다. 1차 대전을 전례 없는 살육전으로 만든 곳이 바로 그 참호였다.

    1차 대전의 악명 높은 참호전이 특히 격렬했던 곳은 독일과 프랑스 국경지역의 베르덩이었다. 이곳에서 1916년 2월부터 5개월간 독일군 100만명이 죽거나 다쳤다. 독일의 베르덩 공세를 중지시키기 위한 영국의 솜강(Somme江) 공세는 42만명의 사망자를 냈는데, 공격 첫날에만 6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영화 ‘인게이지먼트(A Very Long Engagement)’는 당시 참호전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프랑스 군인들은 돌격을 위해 총검을 장착하지만 몇 걸음도 나가기 전 수백명이 쓰러진다. 지상에서 지옥을 찾는다면 그곳이 바로 베르덩이었다. 유럽의 문명과 인간의 이성, 그리고 수많은 젊은이들의 삶이 베르덩의 참호에서 진창에 빠졌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걸작 ‘영광의 길’의 ‘개미고지’ 전투가 그 기록이다. 기록은 “이건 전쟁이라기보다는 학살이라고 불러야 마땅한 것”이라고 증언하는 듯하다.

    유럽인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긴 곳, 베르덩. 이곳의 대립과 갈등은 바로 1000년 전 그곳에서 배태된 분열의 역사에 기원을 두고 있었다. 프랑크 왕국이 분할된 베르덩 조약이 이곳에서 맺어졌다. 서유럽의 수호자 샤를마뉴왕의 손자들, 그 형제간의 분열은 곧 유럽의 분열이었다. 그 후 숱한 전쟁이 유럽을 할퀴었고, 1차 대전은 그 일부이자 결정판이었다.



    그러나 이제 유럽은 베르덩 참호의 비극을 이겨내고 있다. 그 극복과 희망의 징표는 베르덩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일상의 풍경으로 볼 수 있다. 룩셈부르크의 작은 마을인 솅겐. 이곳은 베르덩의 분열을 꿰매는 유럽 통합의 상징이다. 프랑스 독일과 룩셈부르크 3국 간의 국경선이 교차하는 이 마을에서 1985년 맺어진 솅겐 조약으로 유럽 국민들은 자유롭게 국경선을 오갈 수 있다.

    베르덩과 솅겐. 대전의 참화와 통합. 값비싼 대가를 치렀기에 함께 갈 수 있게 된 것인가. 아시아는 그렇다면 아직 더 많은 대가가 필요하다는 것인가. 독도 분쟁은 그 길이 아득함을 다시금 확인해주고 있다.



    영화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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