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49

2008.08.19

섹시 털털 효리 서른 잔치는 시작됐다

예능 프로그램·3집으로 화려한 부활 “한물갔다” 조롱 깨고 국민언니로 발돋움

  •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입력2008-08-11 18:0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섹시 털털 효리 서른 잔치는 시작됐다
    대중매체는 ‘서른 살 싱글 여성’을 좋아한다. 멀게는 영화 ‘싱글즈’(2003)와 TV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2005)이 있고, 가깝게는 ‘달콤한 나의 도시’(2008)가 있다. 시청자와 관객들은 서른 살을 앞두고 있거나 갓 넘겨 ‘서른앓이’를 하는 여성 캐릭터들을 사랑한다. 대한민국 여성들은 자신과 비슷하게 ‘서른의 도전’을 받고 고군분투하는 또래의 등장인물에게 공감하고 그의 성공(또는 행복)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낀다.

    최근 그 ‘서른’ 편애의 대상이 한 인물에게로 옮겨졌다. 한때 국민요정이었던 섹시 아이콘, 최근 3집 ‘It’s Hyorish’를 들고 성공적으로 컴백한 ‘천하무적 이효리’ 말이다.

    “이름 이효리. 1979년생. 나이 서른, 서른, 서른! 1998년 데뷔 후 5년간 자기 정체성을 숨기고 요정으로 활약하다 2003년 본색을 드러내고 ‘텐미닛’으로 화려하게 부활!(중략)” (7월28일 방송된 SBS ‘야심만만’ 중 이효리의 자기소개 일부)

    이효리는 요즘 방송에서 자신의 나이 서른 살을 강조하는 듯 보인다. 30대 여자 연예인이라는 사실이 허물인 시대는 지났다지만 아이돌 출신의 섹시 스타라면 얘기가 다르다. 물론 이효리가 나이를 내세우기 훨씬 전부터 “서른 살이 이효리밖에 없는 것처럼” 그의 서른 살에 과장되게 의미 부여를 했던 것은 언론이었다. (아직 만으로 30세가 되지 않았음에도) 이효리는 나이를 소재로 한 가벼운 농담부터 모욕적인 상황(예컨대 2월 초 SBS ‘체인지’에 분장하고 출연해 바로 옆에서 “별로다, 나이가 많은 것 같다”는 반응을 견뎌야 한 것)을 두루 겪으며 다양한 형태의 서른 살 적응훈련(?)을 받아야 했다. 그와 더불어 2집 ‘겟차’, 드라마 출연 실패 등으로 “약발이 떨어졌다”는 의심 어린 시선도 그에게는 넘어야 할 산이었다.

    이효리는 이와 같은 상황에 정면돌파로 응했다. 3집 준비를 위한 공백기간에 신비주의 전략 대신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사생활을 공개하고(Mnet ‘오프 더 레코드, 효리’) 이후 ‘생얼’에 ‘몸뻬’를 입고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갈 데까지 갔다”는 비아냥거림도 나오던 상황에서 3집 ‘유고걸’을 들고 나왔고, 재기에 성공했다. 이효리는 컴백 일주일 만에 가요 프로그램과 각종 인터넷 차트 1위를 휩쓸었으며 언론에서는 ‘역시 이효리’라는 평을 쏟아냈다.



    그리고 이효리의 이런 드라마틱한 반전은 기존 이효리 팬 외에 서른 즈음의 동년배 여성들을 불러모으는 계기가 됐다.

    이효리와 같은 79년생 회사원 정민화 씨는 최근 들어 이효리에게서 애틋함 같은 게 느껴진다고 말한다.

    “쟤도 서른이구나, 저렇게 살아남기까지 보통 힘든 게 아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던데요. 예전에는 없었던 동년배 의식 같은 게 느껴졌어요. 핑클 때나 1, 2집 때는 별 관심이 없었는데 3집 때는 음악도 챙겨 들어봤고요. 저절로 응원을 하게 되더라고요.”

    ‘다른 여자 연예인들과는 구별되는 친근함’으로 이효리에게 호감을 갖는 많은 20, 30대 여성들은 더불어 이효리가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과정에 주목한다. 털털하지만 섹시한 ‘매력적인 여자친구’로서 이효리를 보는 남성팬들과 구별되는 점이다.

    “또래의 스타라도 전지현이나 김태희는 먼 나라 사람 같은데 이효리는 내 친구 같아요. 그래서인지 효리가 서른을 견뎌주면 나도 좀 편해질 듯한 느낌이 있어요. 이효리는 서른인데도 더 당당하고 멋있잖아, 그러면서 힘을 얻죠.”(28세 대학원생 임지은)

    “아무래도 어릴 때부터 성장하는 것을 봐온 비슷한 나이의 스타니까 애정이 있죠. 어린애들에게 밀리지 않고 여전히 매력 있는 모습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낀다고 할까요.”(29세 회사원 이나리)

    “핑클 때는 그저 예쁘고 노래는 못하는 멤버 중 하나였지만 이제는 대중문화의 여신 같은 존재가 됐잖아요. 무엇보다 효리를 좋아하는 이유는 엄청난 관심과 사랑, 미움을 함께 받아왔으면서도 흔들리지 않고 더 강력해진다는 거예요.”(27세 비서 김예진)

    동년배 여성들까지 새 팬으로 흡수 … 다른 스타들과 구별되는 ‘친근함’ 매력

    섹시 털털 효리 서른 잔치는 시작됐다

    1. 1998년 데뷔 후 5년간 활동한 그룹 핑클 당시 모습. 2. 2004년 아테네올림픽 축구 예선전 응원 모습. 3. 저조한 시청률로 ‘효리 효과’에 제동을 건 ‘세잎클로버’ 출연 당시. 4. 현재 출연 중인 SBS 예능 프로그램 ‘패밀리가 떴다’.

    20, 30대 여성팬이 늘고 있다는 것은 이효리 소속사 측에서도 실감하는 사실이다. ‘오프 더 레코드, 효리’의 기획을 맡은 한동철 CP는 “방송된 채널이 10대 성향임에도 ‘오프’는 20, 30대 여성층의 관심이 특히 높았다”고 전했다. 매거진t의 백은하 편집장은 “아이돌 1세대인 이효리는 단순히 서른이 넘은 댄스가수 이상의 의미가 있다”면서 “기획상품(아이돌)으로 등장한 후 독립된 어른으로 성장해나간 이효리의 무게감은 남다르다”고 말했다.

    “이효리는 본래 어리고 예쁘기 때문에 사랑받는 게 아니었어요. 이효리만의 독특한 매력이 있었던 거고 앞으로도 그 재능을 믿고 열심히 해야 하지 않을까요. 여자 연예인으로서 살아남는 게 얼마나 힘든지에 대한 푸념은 대중에게 불편하고, 불필요한 주장일 뿐이죠. 대중이 원하는 건 밝고 에너지 넘치는 이효리니까요.”(매거진t 백은하 편집장)

    이효리 역시 그 사실을 잘 아는 듯하다.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서른 살에 섹시 콘셉트가 부담스럽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효리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부담이 될 때도 있었는데 요즘은 나이에 자유롭다. (중략) 사실 서른 살이 되니 더 섹시해 보인다. 조금 여유 있어 보이고, 쫓기는 느낌도 없어졌다. 무대 위에서 표현력도 나아졌다. 이번 3집에서 노출은 많지만 느낌은 가장 발랄하다. 노출 수위보다는 느낌이 중요하지 않겠나. 노출에 대해 후회하진 않는다. 이효리니까 할 수 있는 콘셉트다.”

    서른 살 선언과 함께 이효리는 ‘섹시한’ 국민언니로 발돋움하는 중이다.

    *이 기사 취재에는 대학생 인턴기자 남효주(고려대 노어노문학과 4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