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47

2008.08.05

“나도 비서가 있었으면 좋겠다”

퍼스널 컨시어지 서비스 국내 상륙 각종 예매부터 출장 일정까지 꼼꼼한 손발 구실

  •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입력2008-07-29 16: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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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비서가 있었으면 좋겠다”
    국내 대기업 계열사 사장 C(46)씨는 올 여름 휴가를 프랑스 파리에서 보낼 예정이다. 두바이와 파리를 오가는 닷새간의 출장 일정이 끝난 직후 파리에서 유학 중인 딸, 한국에서 출발하는 아내와 합류하는 것이 그가 그린 대강의 휴가 시나리오.

    이 시나리오를 들은 ‘누군가’는 다음과 같은 리스트와 일정을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두바이에서 만날 비즈니스 파트너에게 줄 선물 준비 △회의가 열리는 컨벤션센터에서 가까운 비즈니스호텔 예약 △한국에서 출발하는 아내를 공항에서 픽업하는 서비스 제공, 파리의 스파와 쇼핑센터 리스트 전달 △파리 부티크 호텔의 스위트룸 및 ‘미슐랭 가이드’ 선정 유명 레스토랑 저녁식사 예약 △파리 크리스티 경매 프리뷰 참석권 확보 △보르도 지역 와이너리 투어 예약 및 이동용 벤츠 렌탈 △아내를 위해 구매 대행을 요청한 에르메스 ‘버킨백’ 픽업.

    그 ‘누군가’가 C씨의 회사가 고용한 전문 비서라면 영어와 프랑스어에 능통하고 각 도시에 탄탄한 네트워크를 갖춘 엘리트 중 엘리트일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유능하면서도 세심한 비서를 만나기란 쉽지 않을 터. 출장을 며칠 앞두고 이 모든 일정을 개인이 직접 다 챙기는 것은 더욱 어려워 보인다.

    집·별장 찾아주기, 희귀한 와인 구해주기까지 ‘척척’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비서 서비스 ‘퍼스널 컨시어지(personal concierge)’는 C씨처럼 시간은 없지만 특별한 경험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탄생했다. 컨시어지는 원래 호텔 로비에서 투숙객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는 일종의 집사 서비스.

    컨시어지 개념이 뿌리내린 미국과 영국에서는 이미 수십 개의 크고 작은 회사들이 다양한 가격대의 컨시어지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텐유케이(tenUK)’ ‘마이머니페니(My moneypenny)’ ‘프리퍼드 서클(Preferred circle)’이 대표주자다.

    이 가운데 최근 영미 언론에 가장 많이 회자되는 업체는 2000년 문을 연 ‘퀸터센셜리(Quintessentially)’. 예로 든 C씨 역시 이 회사 서비스에 가입했다. ‘퀸터센셜리’는 영국 런던의 상류층 멤버십 커뮤니티가 확대 발전한 것이다. 현재도 각 국가의 VVIP들만을 타깃으로 한다. 이 회사의 공동 창업자 가운데 한 명인 벤 엘리엇 씨는 영국 찰스 왕세자와 결혼한 카밀라 파커 볼스 왕세자비의 조카다. 또 그 자신도 귀족 가문 출신이라 타깃 고객들에게 접근하기 쉬웠다는 점이 초기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현재 세계 50대 대도시에 진출한 이 회사가 6월 서울에서 론칭 행사를 가진 뒤 7월부터 본격적인 영업에 나섰다. 이 행사에는 조현욱 루이비통코리아 회장, 이혜경 오르비스인터패션 대표 등 고급 소비문화의 ‘생산자’와 ‘소비자’들이 초대됐다.

    기자가 최근 방문한 이 회사는 영어 이외에도 한 개 이상의 제2외국어에 능통한 상담 직원들의 친절한 전화 응대 소리로 가득했다. 회원들은 전화나 e메일로 언제라도 요구사항을 전달할 수 있다.

    이 회사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호텔 및 항공권 예매는 물론 각종 공연, 영화, 식당 예약 같은 비교적 간단한 업무에서부터 고객 취향에 맞는 집과 별장을 찾거나 희귀한 와인 또는 한정판매 상품을 구하는 일까지 그 난이도와 종목도 매우 다양하다. 특히 현재 약 30명의 국내 회원 가운데 절반은 한국 주재 외국인들이어서 한국 정착에 필요한 실질적 도움을 요청하는 사례가 많다.

    “나도 비서가 있었으면 좋겠다”

    ‘퍼스널 컨시어지’ 서비스에는 유명 브랜드의 한정판매 상품을 구해주거나 기호에 맞는 여행지를 찾아주는 것에서부터 가정부를 구해주는 것까지 포함된다. 연회비가 비싼 만큼 재력가들이 회원으로 가입하는 사례가 많아, 이들을 엮는 네트워킹 모임이 열리기도 한다.

    런던 퀸터센셜리의 서비스 사례 중에는 로맨틱한 청혼을 위해 모로코로 핑크색 개인 제트기 보내기, 영화 ‘인디아나 존스’ 스타일의 모험여행을 위해 요르단의 한 사막에 보물을 숨겨놓고 이를 찾아다니게 하는 테마여행 구성하기, 새로 산 최고급 요트의 운항법을 가르쳐줄 올림픽 메달리스트 출신 강사 찾아주기 등 ‘무한도전’의 도전 과제를 연상케 하는 것들도 있다. 연예인 고객인 팝스타 제니퍼 로페즈는 본인의 생일파티에 쓸 공작 12마리를 구해달라고 부탁했으며, 마돈나는 구하기 힘든 희귀한 차(茶)를 공수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등급 따라 연회비 980만~5000만원

    이렇게 다양한 요구사항을 어떻게 다 처리할 수 있는 것일까. 특히 수개월 전 예약해야 하는 레스토랑이나 공연에 들여보내달라고 떼를 쓴다면?

    퀸터센셜리코리아의 마케팅 담당 황수진(30) 매니저는 “주요 공연장, 호텔, 레스토랑 등과 파트너십을 맺어 자리를 선점해놓거나 다른 고객의 예약 취소가 있을 경우 우선적으로 그 자리를 양보하도록 하는 방법을 취한다”고 말했다.이 회사의 공동 창업자 애론 심슨 씨는 최근 영국 일간지 ‘데일리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한 도시당 50~100명의 주요 인사들만 공략해도 ‘핵심 커넥션’을 모두 꿰뚫게 된다”고 말했다. 성사되기 어려울 것 같은 특별한 요청들이 이 회사와의 특수 파트너십을 통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모든 회원이 동일한 서비스를 받는 것은 아니다. 퀸터센셜리는 회원권을 세 등급으로 나눠 판매하고 있다. 가장 낮은 레벨인 ‘데디케이티드(dedicated)’멤버의 연회비는 연 980만원으로 국내에서만 컨시어지 서비스를 요청할 수 있다. 이보다 한 단계 높은 ‘비스포크 엘리트(bespoke elite)’멤버의 연회비는 1980만원으로 자주 여행하는 3개국에서 같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연 5000만원의 회비를 내는 최상위 레벨 ‘풀 엘리트(full-elite)’의 회원들은 전담 직원을 통해 이 회사가 진출한 세계의 모든 도시에서 특별대우를 받게 된다.

    최근 퀸터센셜리가 역점 사업으로 삼는 것은 기업을 대상으로 한 ‘B to B’ 서비스다. 영국 등 해외에서는 이미 소니, 까르띠에, 폭스바겐의 VIP 서비스를 대행하고 있다.

    미국 ‘포브스’지는 마이크로소프트와 JP모건 체이스의 비서 서비스를 대행하는 업체 ‘텐유케이’를 소개하면서 “한 달에 250달러로 컨시어지 서비스를 이용하는 게 연봉 4만 달러의 비서 한 명을 고용하는 것보다 훨씬 경제적”이라는 한 투자은행 임원의 인터뷰를 실었다. 인센티브의 일환으로 직원들에게 컨시어지 회원권을 선물하는 회사도 늘고 있다.
    “나도 비서가 있었으면 좋겠다”
    국내에서 비서 대행업을 하는 데 어려움은 없을까. 황 매니저는 “국내에 본격적인 컨시어지 서비스가 소개된 게 처음인 데다, 서비스 대가로 팁을 주는 문화가 없다 보니 타깃 고객들에게 ‘서비스를 돈으로 산다’는 개념을 심어주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컨시어지 서비스 업체들은 모두 ‘라이프스타일 매니저’임을 자처한다. 바쁜 세상, 알라딘의 램프 속 충실한 하인 ‘지니’처럼 “분부대로 하겠다”고 머리를 조아리는 컨시어지 서비스는 앞으로도 다양한 형태로 진화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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