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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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해라” 이 말 대신 관찰하고 같이 놀고 대화하라

방학 활용해 자녀와 눈높이 맞추는 법 공부 강요보단 학습동기 심어주는 게 먼저

  • 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 원장·의학박사 psysohn@chol.com

    입력2008-07-29 15: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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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부해라” 이 말 대신 관찰하고 같이 놀고 대화하라

    자녀와 재미있게 놀아주고 대화하는 것은 ‘방학 솔루션’의 첫걸음이다.

    여름방학이다. “학교 가야지”란 말로 시작되는 ‘아침 전쟁’이 없어 다소 지루하신가. 어쨌든 분명한 것은 학기 중보다는 부모와 자녀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점. 이 때문에 갈등이 더 많아질 수 있고, 반대로 친밀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방학을 어떻게 활용하는가’는 자녀들의 공부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방학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면 방학이 끝날 때까지 자녀와 ‘웬수’로 지낼지, 아니면 이번 기회에 좋은 아버지 어머니로 변신할지 생각해보시길. 만약 후자가 되고 싶다면 다음 글을 꼼꼼히 읽어보시면 좋을 듯.

    자녀와 친해지기 원한다면 재미있게 놀아라

    첫째, 자녀에 대해 ‘자세하게 관찰하기(close obser-vation)’를 한다. 아이가 갓난아이 또는 걸음마 단계일 때는 아무래도 자녀를 관찰할 시간이 많다. 그러나 학교에 다니면서부터는 부모가 보지 않는 가운데서 보내는 시간이 점차 늘어난다. 학교 수업시간에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친구들이나 선생님과는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에 대해 제대로 알기 어렵다. 물론 선생님과의 면담을 통해 알 수 있지만, 그래도 부모가 직접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방학은 그러한 기회를 제공한다. 또래 친구들을 집에 불러 함께 놀게 하면서 아이가 어떻게 그들과 관계를 맺는지 살펴보라. 친구들을 잘 배려하는지, 텃세만 부리는지 그리고 리더 역할을 하는지, 순종적 태도를 보이는지 잘 관찰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 아이의 사회성과 사회적 위치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집에서 공부를 시킬 때도 학교 수업을 하듯 ‘지금부터 40분간은 수학을 하고, 10분간 휴식 후 다음은 국어’ 식으로 해보라. 아이가 좋아하는 과목과 각 과목의 주의집중력 정도를 알아낼 수 있다. 이처럼 자녀를 잘 관찰해야 하는 이유는 자녀의 현재 모습과 상태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부모가 아이를 어떻게 도와줄지 구체적인 전략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자녀와 ‘재미있게 놀기(joyful play)’를 한다. 누군가와 친해지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즐거운 시간을 공유하는 것이다. 부모와 자녀 또한 마찬가지. 친해지기 위해 서로 재미있게 노는 시간을 갖는다. 지금 당장 아이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달려보라. 또는 실내에서 체스나 블루마블 등의 보드게임을 해보라. 아이가 좋아할 만한 것이면 무엇이든 좋다. 부모 자신도 좋아하고 즐길 수 있으면 금상첨화다. 아이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보라. “오늘 엄마(또는 아빠)가 너와 마음껏 놀고 싶은데, 우리 무슨 놀이 할까?” 아이는 한껏 기대에 부푼 얼굴로 “우리 OO하고 놀아요”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에는 서로 지칠 때까지 노는 일만 남아 있다.

    셋째, 이제 자녀와 ‘충분하게 대화하기(deep conver-sation)’를 한다. 놀기를 통해 서로 친해지면 좀더 수월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이때 대화의 주된 목적은 아이에게 무엇인가를 지시하고 가르치는 것보다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마음을 이해하는 것임을 명심하라. 아이가 부모님에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충분히 전달했다고 느낀다면, 이후부터는 부모님의 지시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돼 있을 것이다. 많은 부모님들이 자녀와 대화를 나누려고 시도하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이유는 처음부터 자녀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고 지시를 내리기 때문이다. 당연히 자녀는 부모님과의 대화를 부담스럽게 여겨 도망쳤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학습동기 심어주기(inoculation of moti-vation)’다. 자녀의 학습 문제도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영역이다. 방학 동안 부모는 수학 한 문제, 영어단어 하나를 익히게 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바로 자녀가 학습에 대한 흥미나 동기를 갖도록 분위기를 마련해주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의 학습 진도나 학원숙제를 잠시 제쳐두고, 아이와 함께 ‘무엇인가’에 빠져 심층적인 공부를 해보라. 예컨대 곤충에 관심을 보이는 아이에게는 각종 곤충도감을 읽게 하고, 인터넷으로 자료를 열심히 찾아보게 하며, 과학관에 함께 가서 곤충을 직접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아이라면 도서관을 방문해 하루 종일 책에 파묻혀 지내는 경험을 맛보게 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방학에만 가능한 ‘무엇인가’를 해보는 것이다.

    학습 레이스 최종 승자는 부모와의 관계도 좋아

    “공부해라” 이 말 대신 관찰하고 같이 놀고 대화하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상상놀이터’ 체험전에 참가한 학부모와 자녀. 이 체험전은 8월24일까지 열린다.

    이 과정에서 부모의 전폭적인 지지와 협력이 중요하다. 아이가 자신이 좋아하는 활동을 마음껏 하고 그러면서 좀더 깊이 다양한 경험을 한다면, 결국 그것은 학습 자체에 대한 동기로 발전할 것이다. 학습은 무엇인가를 연습하고 경험함으로써 개인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 그러한 학습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동기, 즉 어떤 일이나 행동을 일으키게 하는 계기다. 동기가 생기는 것은 놀이로 친해지고, 대화로 서로를 이해하게 된 부모님과의 체험을 통해서다. 아이의 머릿속에 평생 남는 소중한 기억으로 작용하면서 그 능력을 발휘할 것이다.

    방학 동안 아이의 학습능력을 크게 높이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던 부모라면 필자의 제언에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의 임상경험으로 비춰볼 때 장기간의 레이스에서 승리하는 학생은 부모와의 관계가 좋은 가운데서 ‘학습의욕’과 ‘동기’를 갖춘 사람이었다. 부모의 욕심 때문에 강압적으로 공부한 아이들은 결국 레이스 후반부로 가면서 뒤처지거나 포기하고 말았다.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보다 멀리 내다볼 줄 아는 부모의 혜안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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