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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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고 긴 글 핵심을 읽어라

  • 입력2008-07-16 10: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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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설고 긴 글 핵심을 읽어라
    1 강남 조 선생과의 여섯 번째 만남

    “아무튼 내가 일이 좀 있으니 그런 줄 알고 오늘은 혼자 가.”

    ‘무슨 일이지? 부장님이 얼마나 구두쇠인데, 돈 아깝게 학원 수업을 빠지시겠다니….’

    일이 있어 못 온다는 마 부장의 전화에 용 과장은 궁금증이 생겼지만, 혼자 조용히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되어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오랜만에 즐거운 마음으로 H학원으로 향했다.

    “아니, 왜 자네만 왔어?”



    “네, 부장님은 일이 있으셔서요.”

    “허허, 그 양반. 벌써 공부하기가 싫어졌나?”

    “그러게요. 평소 같으면 돈이 아까워서라도 오실 분인데….”

    “공부에는 역시 끈기가 가장 중요해. 날도 더워지는데, 자넨 마음을 다잡도록 하게.”

    “네, 선생님.”

    2 긴 글에 적응하기

    “그동안 언어이해 문제는 풀어봤는가? 지난 시간에 봐서 알겠지만, 언어이해 문제 풀이의 관건은 역시 낯설고 긴 지문을 정확히 읽어내는 것이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은 계속해서 긴 글에 적응하는 훈련을 하도록 하겠네. 그럼, 일단 긴 글을 한 편 읽고 퀴즈를 풀어보겠나?”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제게 퀴즈를 내주십시오!”

    강남 조 선생의 LEET 퀴즈

    자, 다음 글은 존 포드 감독의 영화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에 대한 비평문이네. 이 글을 잘 읽고, 주어진 물음에 대해 ① 또는 ②를 선택하고 그 이유를 말해보게나.

    존 포드(John Ford) 감독은 서부영화를 스트레스 해소용 활극에서 인문학적 깊이를 지닌 장르로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는데, 그의 작품 가운데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이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1962)다.

    영화는 상원의원 랜스가 과거를 회고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동부에서 갓 변호사 자격을 획득한 랜스는 마차를 타고 서부지역을 지나다가 무법자 리버티 밸런스 일당의 습격을 받아 큰 부상을 입는데, 톰과 그의 연인 할리 덕분에 목숨을 구하고 신본이라는 마을에 살게 된다. 그곳 사람들은 종종 마을에 나타나 행패를 부리는 리버티에게 저항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마을 보안관 역시 리버티 앞에서 벌벌 떠는 소인배일 뿐이다. 피바디라는 지식인이 ‘신본 스타’라는 신문사를 통해 근대적 이념을 전파하려 하지만, 주민 대부분이 문맹인 그곳에서 무력감만 느낀다. 리버티가 겁내는 사람은 자기보다 힘세고 총을 더 잘 쏘는 톰뿐이다.

    랜스는 이러한 상태를 방관할 수 없다는 생각에 야학을 열어 사람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한편, 변호사 사무실을 열어 리버티의 법적 기소를 꾀한다. 그를 보면서 톰은 리버티를 이길 수 있는 건 총뿐이라며 비웃는다. 그러던 중 리버티 일당에 의한 피바디 살인 미수사건이 벌어지자, 랜스도 법의 무력함을 절감하고 결투를 통해 리버티를 쏘아 죽인다. 그래서 랜스는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로 불리게 된다. 이윽고 서부에서도 연방상원의원 선거가 시작되자 랜스는 후보로 출마한다. 하지만 자신의 소신을 어기고 총을 사용했다는 죄책감에 후보직을 사퇴하려 하자, 톰이 나타나 자신이 숨어서 리버티를 저격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비밀을 얘기하던 중 톰은 “당신은 너무 생각이 많고 말도 많아”라고 빈정대지만, 랜스가 유세장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때가 왔음을 쓸쓸히 받아들인다.

    결국 랜스는 선거에서 이긴다. 그리고 톰을 사랑했지만 랜스 또한 사랑했던 할리는 랜스와 결혼한다.

    [A] 영화는 이처럼 주먹과 권총의 시대가 가고 이성과 법의 시대가 시작되려는 미국의 역사적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작품은 문화철학자 비코를 떠올리게 한다. 비코는 법제도가 이성적·객관적 실체로서 정의를 실현하는 근대적 단계를 ‘인간의 시대’로, 개인의 감정과 물리적 힘이 최종심급(最終審級)이었던 야만의 단계를 ‘영웅시대’로 부른다.

    물론 포드가 비코의 저작을 읽었다는 증거는 없지만, 영화의 두 ‘사나이’는 비코가 대비시키는 두 시대 유형에 그대로 대응한다. 즉 톰과 랜스는 각각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시대와 새롭게 도래하는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톰이 허리에 차고 있는 권총과 랜스가 들고 온 법전은 그것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대립적인 이미지는 랜스가 물을 끌어들여 기르는 장미와 톰이 애착을 보이는 거친 사막의 선인장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갈등관계에 있는 두 대립적 가치를 하나의 예술적 장치로 엮어 형상화함으로써 자신의 양가적(兩價的) 지향성을 우회적으로 노출하는 포드 감독의 전략이다. 이는 등장인물에 포드 자신이 투영된 점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제목이 두 인물을 동시에 가리킨다는 점에서 잘 드러난다.

    이 영화는 호쾌한 장면 연출을 극도로 억제함으로써 다른 대부분의 서부극과 달리 관객에게 높은 수준의 감상 능력을 요구한다. 즉 이 영화의 예술적 이미지는 더 이상 감각적으로만 소비되는 대상이 아니라 일종의 변용된 이미지로서, 피상적 접근만으로는 판독될 수 없는 심층적 내용을 담고 있다. 이렇게 예술작품은 그것의 생산 과정뿐 아니라 수용 과정에서도 지적 도야를 불가결의 조건으로 요구하거니와, 한갓된 감각적 쾌 또는 불쾌에서 소진되지 않는다. 더욱이 수작으로 평가되는 작품들에는 심층 의식, 사상, 가치관, 세계관 등은 물론 예술 자체의 정체성에 대한 작가의 생각까지 예술적 장치 안에 교묘하게 숨겨져 있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에, 작품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선이해(先理解)가 갖춰지지 않으면 결국 그 작품들은 수수께끼로 남는다. 요컨대 훌륭한 예술적 이미지는 육안으로 ‘보는’ 대상에 그치지 않는, 심안으로 ‘읽어야’ 할 일종의 텍스트인 것이다.


    물음. 예술작품 감상에 대한 글쓴이의 관점에 따라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를 보면

    ① 이 작품이 이집트 신화 모티프를 차용하고 여러 익살적인 장면과 고난도의 아리아를 활용해 예술의 심미적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가운데서도 프리메이슨의 선진적 정치이념을 함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② 이 작품이 이집트 신화 모티프를 차용하고 여러 익살적인 장면과 고난도의 아리아를 활용해 부담 없이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 이거 어릴 때 본 영화잖아. 와, 잘됐다. 아는 게 나왔네.’ 서부 활극을 좋아하는 아버지를 둔 덕에 어려서부터 서부영화를 많이 보고 자란 용 과장은 아는 내용이 나오자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막상 글을 읽어 내려가다 보니 자신이 생각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글이 흘러가고 있었다. ‘어? 이런 건 처음 듣는 소린데….’ 결국 글이 생소하긴 매한가지였다. 잠시의 시간이 흘렀다.

    “답은 ①입니다.”

    “그래,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마지막 문단에서 글쓴이는 피상적 접근만으로는 판독될 수 없는 작품의 심층적 내용에 대한 감상을 중요하게 언급하는데, ①은 겉으로 드러나 있지 않은 작품의 정치이념까지 읽고 있다는 점에서 글쓴이의 관점에 더 부합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오, 아주 훌륭하네. 자네 날이 갈수록 실력이 느는구먼. 글을 읽을 때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는가?”

    “처음엔 아는 내용이 나오는 줄 알고 방심했는데, 읽어보니 처음 보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 그 점에 절대 속으면 안 돼. 단지 자기가 아는 제재를 다룬 글이 나왔다고 해서 또는 진짜로 자기가 잘 아는 내용을 다룬 글이 나왔다고 해서 문제도 잘 맞히리란 보장은 없네. 평소의 배경지식은 절반은 약이 되고, 절반은 독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게.”

    “네, 명심하겠습니다.”

    “자넨 방금 주어진 글을 바탕으로 그 글의 관점을 다른 상황에 적용하는 문제를 풀었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창의’형 문제로 분류하기도 하지. 그리고 이것 외에 아직 설명하지 않은 유형으로 ‘비판’형 문제도 있네. 이러한 문제 유형과 관련한 자세한 얘기는 내 친구 하 선생에게 부탁해둘 테니 잘 배우도록 하게.”

    “네, 알겠습니다.”

    “그럼 자네, 내가 만든 진짜 문제를 한번 풀어보겠나?”

    (합격의 법학원 ‘논리와 비판연구소’ 제공, 다음 호에 계속)

    척척박사 하 선생의 LEET 돋보기

    추론의 핵심 원리, ‘지문으로부터’ 답을 끌어내기


    LEET 언어이해 시험에는 네 가지 문제 유형이 있어요. 각 유형은 어떻게 다를까요? 분석형은 ‘지문 안에서’, 추론형은 ‘지문으로부터’, 비판형은 ‘지문에 대해서’, 창의형은 ‘지문을 넘어서’라고 규정한 재미있는 표현은 각 유형의 특성과 해법의 핵심을 잘 알려주고 있어요. 예를 들어 분석형은 ‘지문 안에서’ 해결이 된다는, 즉 답이 지문에 있단 말이죠. 이 경우엔 앞선 시간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글지도 만들기와 바꿔 말하기 기술을 활용해 관련 정보를 찾고 그것을 바꿔 말하여 답을 찾으면 돼요.

    추론은 전제들로부터 논리에 맞게 결론을 끌어내는(결론으로 나아가는) 생각 활동을 의미해요. 그럼 추론형 문제는 어떻게 하면 잘 풀 수 있을까요? ‘지문으로부터’라는 말에 길이 있어요. 먼저 ‘지문으로부터’ 해결된다는 뜻이니, 반드시 지문에서 출발해야 해요. 글쓴이가 말하지도 않은 것에서 출발해서는 안 돼요. 둘째, 절대 지문의 내용과 충돌해서는 안 돼요. 지문과 충돌하는 것은 추론될 수가 없죠. 셋째, 수험생의 배경지식보다는 지문이 말한 것에 의존해야 해요. 행여 자기만의 생각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간 틀림없이 오답을 고르고 말 거예요.

    그럼 구체적으로 문제를 한번 살펴볼까요? 존 포드의 영화에 관한 비평문을 지문으로 하는 추론형 문제를 보죠. 질문: [A]의 ‘비코’ 분류에 따라 등장인물을 평가할 때 적절하지 않은 것은? 주요 선택지: ① ‘리버티’는 철저히 ‘영웅시대’의 법칙에 따라 사는 인물이다. ② ‘랜스’는 ‘인간의 시대’의 법칙을 철저히 지킴으로써 ‘영웅시대’의 종말을 가져온 인물이다. 근데 질문에 ‘평가’라는 말이 나오는데 추론을 통해 푸는 게 맞나요? 예, 맞습니다. 지문으로부터 답이 나오니까요. 자 그럼, 위의 세 가지 핵심 원리를 적용해서 풀어보죠.

    선택지 ①부터 검토해보죠. [A] 부분은 분류의 원칙을 말하고 있어요. ‘리버티’와 관련된 내용만 추려 바꿔 말해보죠. ‘이성과 정의를 따르려 하기보다는 감정적이고 물리적 힘에 기대어 삶을 사는 사람은 ‘영웅시대’의 법칙을 따라 사는 사람이다.’ 그럼 ‘리버티’와 관련된 정보는? 주목! 철저히 지문 안에서만 찾으세요. 글지도를 활용해 ‘리버티’에 관한 사실들을 찾은 다음, 종합해서 바꿔 말해볼까요? ‘리버티는 이성과 정의를 따르려 하기보다는 감정적이고 물리적 힘에 기대어 삶을 사는 사람이다.’ 이제 다음과 같은 논증으로 정리해보면 선택지 ①은 적절한 추론임을 알 수 있겠네요.

    전제 1: 이성과 정의를 따르려 하기보다는 감정적이고 물리적 힘에 기대어 삶을 사는 사람은 ‘영웅시대’의 법칙을 따라 사는 사람이다.(분류의 원칙)전제 2: 리버티는 이성과 정의를 따르려 하기보다는 감정적이고 물리적 힘에 기대어 삶을 사는 사람이다.(리버티에 관한 사실)결론: 리버티는 ‘영웅시대’의 법칙을 따라 사는 사람이다.(선택지 ①)

    선택지 ②를 검토해볼까요? 선택지 ①과 다른 방식으로 풀어보죠. 선택지 ②가 옳다고 가정해보죠. 그럼 랜스는 ‘인간의 시대’의 법칙을 철저히 지켰겠죠. 그런데 지문에 ‘리버티 일당에 의한 피바디 살인 미수사건이 벌어지자, 랜스도 법의 무력함을 절감하고 결투를 통해 리버티를 쏘아 죽인다’라는 내용이 있네요. 이는 랜스가 ‘인간의 시대’ 법칙을 철저히 지키지 않았다는 말이네요. 그렇다면 선택지 ②는 지문의 내용과 충돌해요. 선택지 ②는 추론될 수가 없겠군요.이렇게 추론형 문제는 지문으로부터 답을 이끌어내는 거예요. 막상 해보면 쉽지 않다고요? 결코 그렇지 않아요. 지문의 내용에 근거해 추론하지 않고 자기만의 배경지식과 상상의 나래를 펴 추론하니 자꾸 틀리고, 그러다 보니 어렵게 느껴지는 거예요. 예를 들어 “리버티 밸런스라는 인물에서 ‘리버티’라는 이름은 ‘자유’를 뜻하고 성은 ‘밸런스’이니까(사실 그의 성은 Valance인걸요), ‘리버티 밸런스는 균형 잡힌 인성을 갖춘 자유인이겠군. 그럼 이성적이고 정의를 추구할 테니 선택지 ①은 추론될 수 없겠군” 하는 식으로 답을 지어내면 정말 곤란해요. 꼭 명심하세요. 추론형 문제는 반드시 ‘지문으로부터’ 답을 끌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에요.

    하상용 논리와 비판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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