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42

2008.07.01

기능과 스타일 본능에서 문화 아이콘 관능으로

휴대전화 광고 시대의 인포테이너 … 기기 아닌 기업의 상징성 정조준

  • 김홍탁 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광고평론가

    입력2008-06-23 15: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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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능과 스타일 본능에서 문화 아이콘 관능으로
    1990년대 전반 광고회사에서 휴대전화라는 제품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더는 차별화가 어렵던 기존 제품군에서 휴대전화는 신기루에 가까운 존재였다. 게다가 휴대전화는 기존의 공산품처럼 일정 기간 같은 기능과 디자인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혁신을 일궜다. 기능적 측면에선 통화품질 개선은 물론 문자서비스, 컬러 LCD창, MP3, 카메라, 동영상 촬영 및 재생, 인터넷, 동영상 통화 등으로 영역을 넓혔다. 디자인 측면에선 평범한 바(bar) 타입에서 폴더, 슬라이더, 가로 형태의 LCD창(가로본능), 슬림형을 거쳐 이젠 햅틱(haptic)과 드래그 앤드 드롭(drag · drop) 같은 터치폰이 대세몰이를 하고 있다.

    기능과 디자인의 다양성은 광고표현에 고스란히 드러났고, 사람들은 광고가 보여주는 이미지에 끌려 신제품을 구매했다. 결국 한국인의 휴대전화 교체주기가 평균 18개월이라는 통계가 나오기에 이르렀다. 특히 주 타깃인 20대와 30대 초반, 그리고 나이와 상관없이 젊은 생각을 가진 타깃(YMC ·Youth Minded Consumer)에게 휴대전화는 주요 패션 아이콘이자 자신을 드러내는 상징물이다. 휴대전화 광고는 바로 이러한 상징성을 조준하고 있다.

    휴대전화가 대중 생활에 깊숙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 이때부터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광고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삼성 애니콜, LG 싸이언, 현대 걸리버 등 3개의 휴대전화 광고는 모두 통화품질이 우수하다는 데 초점을 맞췄는데, 이 광고 싸움에 011 016 017 018 019 등 5개 이동통신 서비스업체까지 가세해 개별 브랜드를 구분하기 어려운 소비자로선 무척 혼란스러웠다.

    2000년 이후 휴대전화 광고는 애니콜, 싸이언, 스카이 3파전으로 재편됐다. 각기 50%대, 20%대, 10%대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며 한국 휴대전화 시장에서 삼각구도를 형성한 이들은 광고에서도 혈전을 벌였다. 이동통신 서비스 역시 SKT 011, KTF 016, LGT 019의 3파전으로 좁혀졌다.

    해를 거듭할수록 각 회사의 휴대전화 광고와 이동통신 광고는 상품 판매를 위한 전술에서 벗어나 광고 자체를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려는 전략에 힘을 쏟고 있다. 다시 말해 기네스가 ‘우리는 병맥주와 생맥주, 그리고 광고를 판매한다(We sell three products : Draught Beer, Bottled Beer, and Advertising)’는 철학을 설파하듯 상품 못지않게 광고 자체를 중시하게 된 것이다.



    통신 3사 박터지는 광고 전쟁

    초창기 통화품질의 우수함을 전달하는 크리에이티브의 선봉에 애니콜이 있었다. 1995년 산악인 엄홍길이 험난한 산 정상에 올라 애니콜로 통화하는 장면을 담은 광고는 ‘한국 지형에 강하다’는 슬로건을 내세워 신토불이 정서에 호소하면서 한때 80%대의 시장점유율을 보였던 모토롤라를 끌어내리고 전세를 역전시켰다.

    싸이언과 걸리버는 각각 송윤아, 박진희를 등장시켜 한국 광고의 전형적 형태인 빅 모델 전략을 구사했다. 특히 걸리버는 ‘걸면 걸리는 걸리버’라는 말장난을 통해 제품명을 각인시키는 효과를 거뒀으나, 품질에 대한 신뢰도를 끌어올리지 못해 시장에서 큰 파이를 차지하는 데 실패했다.

    이후 애니콜과 싸이언은 일관된 빅 모델 전략으로 승부했다. 안성기로 시작한 애니콜은 이나영, 차태현, 세븐, 박정아, 이서진을 거쳐 이효리, 전지현, 문근영, 에릭, 권상우, 이준기, 황정민 등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톱스타를 대거 전속모델로 끌어들였다. 싸이언 역시 빅 모델에 의존한 광고를 선보였다. 송윤아, 박진영, 유지태가 초창기 모델로 활약했고 장동건, 신애를 거쳐 지금은 김태희, 원빈, 현빈, 다니엘 헤니, 강동원이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삼각편대에 새롭게 편입된 스카이는 처음부터 빅 모델 전략을 포기했다. 현명한 선택이었다. 두 거인의 틈바구니에서 똑같은 빅 모델 전략을 내세웠다면 스카이는 두 거인에게 헌혈을 해주는 꼴이 됐을 것이다. 3사의 휴대전화 광고를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애니콜 | 특급 연예인들의 최상급 뷔페로 초대합니다

    초창기 애니콜은 기능을 중심으로 하는 하드셀링(hard-selling) 메시지를 선보였다. 그 후 2001년 ‘디지털 익사이팅’이란 슬로건을 내세워 그 느낌 그대로 화려한 광고를 보여줬다. 휴대전화의 정체성이 통화와 문자라는 기본 기능을 넘어 컬러링, 고화질, 카메라폰 등 손안의 엔터테이너로 진화해가는 시기였다. 초창기 애니콜의 광고는 기능과 스타일을 알리는 데 집중했지만 형식이 그렇게 세련되진 않았다. 이나영이 차태현을 빙그르르 돌리면서 “까불면 돌려버린다”는 멘트를 던지고 폴더의 회전기능을 설명하는 식이었다.

    애니콜 광고가 촌스러움을 벗기 시작한 것은 2003년 세븐, 박정아가 등장하는 댄스배틀과 랩배틀 편부터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모델을 활용한다는 기본 전략은 여전했지만, 휴대전화 광고에 기능 대신 제품을 구매하는 타깃 세대의 문화코드를 반영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접근법이 반석에 오른 것은 2004년 가로본능폰 광고였고, 절정을 이룬 것은 2005년 애니모션 광고였다. 가로본능폰 광고는 애니콜 광고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유명 모델 없이 제품 특성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아이디어에만 초점을 맞췄다. 가로 형태의 사물이 세로가 됐을 때를 가정한 그림 공식을 통해 ‘가로가 되고 싶은 본능’을 강조한 이 광고는 휴대전화 광고의 획일적인 서술구조를 바꾼 작품이었다.

    이어 애니모션 광고는 같은 이름의 타이틀곡과 뮤직비디오를 만들어 하나의 문화상품을 창출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즉 애니모션 광고는 광고라는 기본 소스를 중심으로 하되, 뮤직비디오와 음악 다운로드 같은 인접 영역으로 범위를 확대하는 ‘원소스 멀티유즈(one source-multi use)’ 전략을 통해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Branded Entertainment)를 적절히 구사한 것이다. 현재 애니콜은 ‘만지면 반응하리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터치폰 시장의 선두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힘을 모으는 중이다.

    싸이언 아이디어 | 김태희의 개인기에 사로잡히다

    기능과 스타일 본능에서 문화 아이콘 관능으로

    빅 스타를 기용하는 애니콜(왼쪽 큰 사진)과 싸이언(위),젊은 층을 겨냥한 스카이.

    싸이언 광고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2003년 장동건과 신애가 등장했던 ‘Looks Good’ 시리즈다. 이 시리즈는 스타일리시하다는 평을 받았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싸이언 이미지를 정착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싸이언 광고가 구태를 벗은 터닝포인트는 2005년부터 시작된 ‘싸이언 아이디어’ 시리즈다. 김태희와 원빈이 연인으로 등장하면서 시작된 이 시리즈는 광고적 화장을 지워버리고 젊은이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휴대전화를 가지고 자장면을 먹을까, 스파게티를 먹을까 결정하는 스토리는 젊은 층의 일상에 대한 통찰이 없었다면 나오기 힘든 얘깃거리였다. 싸이언 아이디어 시리즈는 빠른 편집과 잘려나가는 멘트 등 몰입이 힘든 시퀀스로 구성됐지만, 이 점이 오히려 인터넷이나 문자전송을 통해 파편화된 커뮤니케이션에 익숙해 있던 젊은 세대에 어필하면서 ‘싸이언식 광고’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싸이언 아이디어 광고가 편마다 질의 부침이 심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초지일관 툭 던져놓는 투의 크리에이티브를 선보이며 싸이언의 이미지를 새롭게 업그레이드한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현재 싸이언은 뷰티폰을 내세워 애니콜 햅틱폰과 터치폰 시장에서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스카이 | 젊은 친구들 식으로 말을 걸다

    스카이가 특유의 광고 스타일을 갖게 된 것은 2003년 뮤직폰 광고부터다. 전형적인 빈티지 차림의 젊은이가 휴대전화로 음악을 들으며 길을 걷는다는 설정의 이 광고는 다소 밋밋해 보일 수 있지만, 타깃인 젊은이들이 바로 공감할 수 있는 형태로 스카이만의 틀을 다졌다는 데 의의가 있다. 스카이 광고는 이후 연속 히트를 기록하며 배경음악, 의상, 춤동작 등을 통해 빈티지 컬처 트렌드를 이끌었다. 옆구리 걸이 등장하는 조그셔틀 MP3폰, 가방에서 격투기 선수들이 나와 버스 안 결투를 벌이는 게임폰, 레슬링 장면으로 동성애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3D 사운드폰, 그리고 맷돌춤을 유행시켰던 와이드 PMP폰까지 스카이 광고는 늘 젊은 층에 바짝 다가서 있었다.

    스카이 광고의 미덕은 빅 모델에 의존하지 않고 아이디어 자체에 승부를 건다는 점이다. 달리 말해, 짧은 시간 안에 확실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광고만이 구사할 수 있는 아이디어의 집짓기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동통신사 역시 서비스의 다양성을 중심으로 표현 영역을 넓혀왔다. 이동통신사의 양대 산맥인 SKT와 KTF는 이동통신 이용자의 연령대를 세분화한 뒤 그에 맞는 서비스 브랜드의 세분화를 구축했다. 10대를 겨냥한 팅과 비기, 20대의 TTL과 016Na, 30대의 유토와 메인, 여성을 위한 카라와 드라마 등을 만들고 그에 따라 카테고리별 광고를 제작함으로써 엄청난 양의 이동통신 서비스 광고가 쏟아져나왔다.

    기능과 스타일 본능에서 문화 아이콘 관능으로

    KTF의 ‘쇼를 하라’(위)와 SKT의 ‘생각대로 T’.

    그중에서도 SKT의 20대를 위한 서비스 TTL은 디지털 시대의 N세대를 TTL족이라 부를 만큼 광고를 중심으로 한 마케팅의 영향력이 무척 컸다. 일종의 미스터리 기법을 동원한 TTL 광고 시리즈(1999~2000년)는 감성 광고의 전형을 제시하면서 ‘옳다-그르다’가 아닌, ‘좋다-싫다’의 가치판단에 더 익숙한 20대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2000년대의 20대를 TTL족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관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첫째는 휴대전화를 매개로 한 커뮤니케이션 없이는 지금의 20대를 파악할 수 없다는 점, 둘째는 역사상 최초로 젊은 세대의 정체성에 한국적 마케팅을 기준으로 이름을 부여하게 됐다는 점이다.

    KTF는 2000년 016Na 시리즈로 TTL에 맞불을 놓으며 젊은 세대의 관심을 끌기에 안간힘을 썼다. ‘아버지 나는 누구예요?’라는 카피를 회자시켰던 016Na 광고는 광고와 함께 만화적 상상력을 통해 유치하면서도 발랄한 키치 이미지를 전파했다. 의도된 촌스러움과 엉성한 스토리 구성은 세련된 모법답안 같던 당시 광고 화법에 대한 도전이었다. 이후 수많은 키치풍 광고가 줄을 이었고 트렌드를 형성했다.

    이동통신 서비스 SKT와 KTF의 자웅 겨루기

    2005~2007년 두 이동통신사는 ‘현대인의 생활백서’와 ‘쇼를 하라’ 시리즈로 다시 한 번 위용을 과시했다. SKT가 2005년 내놓은 ‘현대인의 생활백서’ 시리즈는 서비스의 특징을 알리는 USP를 버리고 소비자가 일상생활에서 휴대전화를 활용하게 되는 갖가지 에피소드들을 묶어 동시다발로 광고 활동을 펼친 드문 사례였다. 다시 말해, 제품이 아닌 소비자의 활용패턴에서 USP를 찾은 것이다.

    영상통화 서비스가 중심을 이루는 3G 시대를 맞아 이동통신 서비스의 패권을 잡기 위해 SKT와의 광고전쟁을 예고한 KTF는 2007년 ‘쇼를 하라’는 키워드로 크리에이티브 공세를 펼쳤다. KTF는 이 광고 시리즈 덕에 3세대 이동통신 서비스에서 선두자리를 차지했고, 전 국민의 입에 오르내리는 인기를 누렸다. 이처럼 이동통신 서비스의 광고 메시지는 초창기 통화품질에서 10여 년이 지난 2000년대 후반엔 엔터테인먼트로 그 무게중심이 이동했음을 알 수 있다.

    기능과 스타일 본능에서 문화 아이콘 관능으로

    LG텔레콤의 OZ 광고.

    제품 광고와는 별도로 SKT는 2005년 ‘사람을 향합니다’, KTF는 2001년 ‘KTF적인 생각’, 2003년 ‘해브 어 굿 타임’, 2006년 ‘생각을 이동하라’ 같은 이미지 광고를 통해 사회적 이슈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을 뿐 아니라, 기술문명 시대에서 휴머니즘의 소중함을 역설적으로 표현했다. 일종의 사회윤리 헌장과도 같은 이들 광고는 올바른 사회 가치관을 전파했다는 공이 인정된다. 스님과 함께 대나무 숲 사이를 거닐던 한석규가 휴대전화 벨이 울리자 ‘또 다른 세상을 만날 땐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던 1998년의 SKT 광고는 외환위기 이후 황폐해진 사람들의 마음에 휴머니티를 심어준 대표적인 광고로, 1위 업체인 SKT의 여유를 잘 대변했다. 이 광고는 훗날 디지털 서비스의 선두에 있으면서 오히려 아날로그적 정서에 맞춘 SKT의 2005년 ‘사람을 향합니다’ 시리즈의 모태가 되기도 했다. ‘청바지는 넥타이와 동등하다’로 시작하는 ‘KTF적인 생각’ 시리즈는 디지털 시대의 가치관 변화를 알기 쉽게 전파하면서 광고가 최초로 교과서에 실리는 사례를 남겼다.

    빅 모델을 활용하든, 아이디어에 집중하든 21세기 한국의 휴대전화와 이동통신사 광고는 정보와 함께 커다란 즐거움을 제공하고 있다. 이 시대의 광고는 인포테이너다. 과거 광고의 정의가 ‘물건을 팔지 못하면 광고가 아니다’였다면, 이제는 ‘재미있게 정보를 실어 나르지 못하면 광고가 아니다’가 모범답안이 됐다. 매일 유튜브를 통해 엄청난 양의 재미있는 영상물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TV에 얼굴을 내미는 광고가 밋밋하다면 바로 무덤을 팔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휴대전화와 이동통신사 광고는 누구보다 그 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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