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37

2008.05.27

녹색 충전 위해 떠나는 여행

  • 정성갑 여행 칼럼니스트·월간 ‘럭셔리’ 피처·여행팀장 a53119@design.co.kr

    입력2008-05-21 13: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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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자연이 아름다운 여행지를 편애한다. 여행기자라는 직업 덕에 전 세계 수십 개국을 다녔지만 ‘아, 다시 가고 싶다’ 하는 간절함이 드는 곳은 그리스 산악마을 에피루스나 프랑스 프로방스와 같은 자연이 눈부신 곳들이었다.

    한때는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그런 곳에 두어 해 머물며 그 일상을 책으로 엮어보면 어떨까 하고 자못 진지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손에 쥔 것은 놓기가 쉽지 않은 법. 유야무야 단념하고 말았지만 자연 속에서 느긋하고 느리게 사는 삶은 여전히 로망으로 남아 있다.

    자연 속으로의 여행이 볼 것 많고 즐길 것 많은 여행보다 더 좋은 이유는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 탓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처럼 시골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하늘색 맑고 정직한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곳이 도쿄 파리 런던보다 훨씬 더 큰 행복과 위안을 준다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이리라 믿는다.

    돌이켜보면 앞으로 소개할 녹색 여행지 10곳에서 내 마음은 어느 때보다도 풍요로웠다. 따뜻한 햇볕이 마음속 깊이 스며든 탓일까. 연락 끊긴 인연이 문득 생각나고, 돌아가신 아버지의 청춘도 사뭇 궁금해졌다. 치킨 한 마리에도 행복해하는 아내의 표정이 그리워졌고, 쓰고 싶은 책에 관한 아이디어도 불쑥 떠올랐다.

    도시에서의 생활은 차분하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생각하며 살기가 참으로 힘들 뿐만 아니라 사는 대로 생각하기조차 쉽지 않다. 황석영의 단편소설 ‘삼포 가는 길’에 는 이런 말이 나온다. “사람이 많아지면 하늘을 잊는 법이거든.” 도시에 살다 보면 마음의 여백을 잊기 십상이다. 하물며 컴퓨터도 주기적으로 ‘휴지통 비우기’를 해줘야 성능이 유지되는 법인데, 도시인은 ‘비울’ 시간을 찾기가 쉽지 않으니 심신의 자정(自淨) 능력은 조금씩 무뎌질 수밖에 없다.



    ‘컬러테라피’라는 것이 있다. 말 그대로 색상을 이용해 마음을 치유하는 것이다. 녹색은 쉽게 피곤함을 느끼거나 정서적으로 불안하거나 우울할 때, 간이 좋지 않을 때 적극 권장되는 색이라고 한다. 녹색의 기운이 마음에 퍼져 햇빛이 되고 바람이 된다는 것이다. 일본의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숲으로의 여행이 혈압을 누그러뜨리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 많은 볼거리, 놀거리를 뒤로하고 심심한 자연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 생산적이지 못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끄러운 마음을 정리하고 청정한 에너지로 마음속을 채우는 데 녹색 여행만큼 좋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눈 감은 사람이 더 많은 것을 보는 법이다. 조용하고 깨끗한 풍경은 더 많은 사유와 상상을 가능케 한다. 소설가 김훈이 자전거를 타고 남한산성 일대에서 ‘놀지’ 않았다면 소설 ‘남한산성’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여러분의 올 여름휴가를 위해 10곳의 여행지를 소개한다. 모두 싱그러운 녹색이 가득한 곳들이다. 쨍하고 햇볕 좋은 날, 눅눅한 이부자리를 말리듯 여러분의 마음이 상쾌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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