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76

2017.02.22

경제 | 취업대란, 청년은 살고 싶다

고용부 정책 따라가니 나쁜 일자리만…

유명무실 청년인턴제, 아르바이트 수준 임금 경력 인정 안 돼 이직은 꿈일 뿐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7-02-17 16:4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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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의 중소기업 취업지원 사업을 믿고 중소기업에 입사한 청년들이 저임금·고강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중소기업청 조사에 따르면 현재 국내 중소기업의 평균 임금은 대기업 평균 임금의 60%에 불과하다. 심한 경우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고 일하는 청년까지 나오는 상황. 결국 청년 대다수는 어렵사리 구한 직장을 그만둔다. 답답한 현실에 이직을 노리는 청년도 있다. 그러나 중소기업에 한번 입사하면 대기업으로 이직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에 정부는 중소기업 입사자에게 지원금을 지급하는 정책을 펴고 있지만 기업들의 참여가 저조한 실정이다.

    2015년 지방 한 사립대 디자인 관련 학과를 졸업한 김모(26) 씨는 일찌감치 대기업 입사 꿈을 접었다.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 졸업 후 바로 직장을 가져야 할 형편이었다. 하지만 중소기업 입사 준비도 어려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중소기업 관련 정보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처음에는 인터넷 취업정보 사이트 등을 보면서 입사할 기업을 찾았다. 취업정보 사이트에는 각 기업의 업태나 모집 중인 직종, 간단한 급여 사항만 적혀 있었다. 오래 다닐 수 있는 만큼 건실한 기업에 입사하기를 원했지만 사이트에 노출된 기업 정보만으로는 어떤 기업이 건실한지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여러 기업을 두고 고민하던 김씨는 고용노동부(고용부)의 취업지원 정책 중 ‘청년인턴제’를 활용하기로 했다. 정부가 추천하는 기업이니 믿을 만하다고 여겼다. 게다가 ‘청년인턴제’를 통해 3개월 인턴기간을 수료하고 해당 기업에 정규직으로 취업하면 지원금도 받을 수 있었다. 인턴을 거쳐 취업한 기업이 제조업일 경우 300만 원, 그 외엔 180만 원의 취업지원금을 받는다.



    “이럴 거면 차라리 알바를 하지”

    그는 청년인턴제를 통해 서울 근교의 작은 벤처기업에 웹디자인직군으로 취업했다. 직원이 10명가량인 작은 회사였지만 원하던 직군에서 일할 수 있다는 생각에 김씨는 만족했다. 그는 3개월 인턴기간을 마치고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그러나 정규직이 되자 갑자기 업무량이 급증했다. 김씨는 “회사에서 ‘이제 더는 교육생 신분이 아니다’라며 업무량을 늘렸다. 회사가 정한 퇴근시간은 인턴 때와 같았지만 일이 늘어 퇴근이 점점 늦어졌다. 결국 집에 와서도 일할 수밖에 없었다.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컴퓨터와 씨름해야 겨우 그날 업무를 마칠 수 있었다. 이렇게 일해도 월급으로 손에 쥐는 돈은 160만 원 남짓이었다”고 말했다. 김씨가 일하던 당시 최저시급은 6030원. 하루에 12시간 일한다고 가정할 때 한 달 급여는 180만 원이 조금 넘는다. 최저시급을 받는 아르바이트생만큼도 월급을 못 받고 일해온 것. 하지만 그는 “퇴근이 늦어지는 게 내 능력이 모자란 탓이라고 생각해 이 문제에 대해선 따지지도 못했다”며 답답해했다.



    김씨는 1년 2개월 만에 사직서를 냈다. 그는 “일한 지 1년이 지났지만 통장에 돈이 거의 없었다. 돈을 쓸 시간이 없을 정도로 일했는데도 집세나 생활비로 월급 대부분이 소진되는 것을 보면서 ‘미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퇴사 이유를 밝혔다.

    김씨는 그나마 오래 버틴 편이었다. 지난해 10월 더불어민주당 김현미 의원이 국회예산정책처로부터 받은 ‘재정지원 일자리사업의 주요 문제점과 개선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청년인턴제로 중소기업에서 인턴으로 일하기 시작한 청년 4만3228명 가운데 38.5%(1만6660명)만 정규직 전환 1년 후에도 해당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60% 넘는 청년들이 중소기업의 낮은 급여와 열악한 근무 여건을 버티지 못하고 어렵게 취업한 회사를 그만두는 셈이다.

    일부 청년은 중소기업에서 경력을 쌓아 중견기업이나 대기업으로 이직을 꿈꾼다. 그러나 한번 중소기업에서 일을 시작하면 이직을 해도 비슷한 규모의 기업으로만 옮겨 다니게 된다. 직원이 20명 남짓한 소규모 기업에서 영업관리 일을 2년째 하고 있는 이모(29) 씨도 얼마 전 중견기업으로 이직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업무능력을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 이씨는 “회사 규모가 작아 영업관리 외에도 인사, 회계 등 다양한 업무를 담당했다. 할 줄 아는 일이 많은 만큼 쉽게 이직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규모가 작은 기업에 종사한 이력은  이직시장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직은 언감생심

    실제로 중소기업에서 좀 더 큰 회사로 이직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게 현실이다. 지난해 9월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은 청년층 대졸자의 초기 일자리 이동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연구진은 2014년 이후 대학을 졸업하고 취·창업 경험이 있는 1만4000여 명을 설문조사했다. 그 결과 졸업 후 2년 내 직장을 옮기는 비율은 19.8%에 달했다. 이 중 직원 수 300명 미만 중소기업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청년이 기존에 다니던 직장보다 규모가 큰 기업으로 이직한 경우는 4.8%에 불과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견기업 인사담당자는 “기업 규모가 다르면 같은 직무라도 일의 범위와 크기가 달라진다. 그래서 전문 기술을 요구하는 직종이나, 자신만의 영업판로가 있는 영업직 일부를 제외하면 사실상 상위 기업으로 이직은 어렵다. 게다가 회사가 작을수록 인력 충원이 어렵다 보니 직원이 이직 의사를 보이면 회사가 나서서 말리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고용부는 중소기업에 취업한 청년의 이탈을 막고자 지난해부터 ‘청년내일채움공제’ 정책을 펴고 있다. 중소기업에 취업한 청년이 매달 12만5000원씩 24개월을 저금해 300만 원을 모으면 정부의 취업지원금 600만 원과 사업주가 정부로부터 받은 고용장려금 300만 원을 보태 총 1200만 원의 목돈을 마련해주는 정책이다. 중소기업에 취업한 청년에게 지원금을 제공해 낮은 임금을 보전해주는 동시에 이직을 막겠다는 취지다(그림 참조).

    하지만 이 정책에 참여하는 중소기업이 너무 적다. 지난해 10월 기준 참여 기업은 3927곳. 전국 총 중소기업의 수가 약 350만 개인 것을 감안하면 0.1% 수준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지난 한 해는 청년내일채움공제 시범 기간이었다. 그래서 청년인턴제를 시행 중인 기업과 정책 도입을 신청한 일부 기업에서만 시범적으로 운영됐다. 올해부터는 청년내일채움공제를 청년 취업교육 프로그램인 취업성공패키지와 연계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공제 가입 기업을 늘리고 청년도 쉽게 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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