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37

2008.05.27

재난 현장의 인명구조 핫라인

  • 입력2008-05-21 09: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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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난 현장의 인명구조 핫라인

    휴대전화는 예기치 않은 재해 현장에서 가장 신속하게 정보를 전달하는 미디어 역할을 해낸다. 2004년 12월 일어난 동남아시아 쓰나미 현장을 맨 먼저 전한 것도 휴대전화 동영상이었다.

    호외(號外)라는 것이 있었다. 중대한 뉴스를 신속하게 전달하기 위해 신문사가 특별히 찍어서 무작위로 뿌리는 신문이었다. 1965년 한일협정,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 1995년 전두환 전 대통령 구속 같은 사건이 터졌을 때 임시로 발간됐다. 한 장짜리 짧은 신문이지만 헤드라인을 대서특필하고 관련 사진도 큼직하게 집어넣었다. 호외가 나오는 날이면 장안이 떠들썩해졌다. 길거리에서 갑자기 “호외요, 호외!”라는 외침이 들려오면, 그 배달 소년 주위로 행인들이 모여들어 황급하게 신문을 집어들던 장면이 기성세대의 기억 속에 선연히 남아 있다.

    그런데 이제 호외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002년 월드컵 대회에서 한국이 승승장구할 때 뿌려진 것이 마지막이 아닌가 싶다. 텔레비전이 종일 방영되는 데다 인터넷을 통해 거의 모든 뉴스를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기에 인쇄물은 완전히 느림보가 된 것이다. 뉴스는 말 그대로 새로운 소식이고, 따라서 전달의 속도가 생명이다. 그런데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하고 대중화되면서 기존의 미디어들은 자꾸만 불리해진다. 하루 단위로 마감되는 신문은 속보 경쟁에서 방송에 밀릴 수밖에 없고, 누구나 글과 영상을 올릴 수 있는 인터넷 환경에서 방송은 포털에 뒤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인터넷보다도 빠른 것이 있으니 바로 휴대전화다. 2004년 12월26일 동남아시아에 지진해일 쓰나미가 발생해 25만여 명이 사망했다. 그때 현장에는 방송사나 신문사의 기자가 아무도 없었다. 아무런 예고 없이 터진 일이니 당연하다. 그러면 몇 시간 뒤 또는 하루 뒤쯤에라도 CNN이나 BBC 기자가 왔느냐 하면 그렇지 않았다. 마침 연말 휴가철이어서 많은 기자들이 자리를 비웠고, 그나마 남은 사람들은 저마다 10대 뉴스를 뽑는 일에 바빴다. 며칠 뒤 특파원들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뉴스’는 없었다. 처참하게 파괴된 마을, 구호대원들이 시체를 수습하거나 집을 잃은 사람들이 수용돼 고생하는 장면 정도만 취재해야 했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 예의 부족 지적도

    당시 빛을 발휘한 것은 보통사람들이었다. 해변에서 휴가를 즐기던 관광객 중 일부가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들은 폰카메라로 해일이 사람들을 쓸어가는 장면을 생생하게 담아 전 세계로 발송했다. 그 덕분에 사건이 발생한 지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아서 지구촌 각지에 소식을 전할 수 있었다. 인터넷만 해도 긴박한 현장에서 사진을 찍어 곧바로 발신하는 데는 제약이 따른다. 디지털카메라와 노트북을 가지고 있다 해도 재난 상황에서는 매우 번거로울 수밖에 없다. 그에 비해 휴대전화는 잠깐만 피신할 수 있다면 메시지를 곧바로 보낼 수 있다. 그야말로 긴급 타전(打電)이다. 전보나 무전 버튼에서 문자판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보통사람들의 정보력이 글로벌 미디어 시스템을 능가하는 상황은 종종 발생한다. 2007년 9월 미얀마에서 승려들을 중심으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을 때 군사정권은 이를 무참하게 진압했다. 그때 결정적인 제보를 한 이들도 대학생들이었다. 9월27일 미얀마 민주인사들이 외국에서 운영하는 정기간행물인 ‘미지마 뉴스’ 편집장의 휴대전화에 ‘양곤에서 관광객 한 사람이 총에 맞아 쓰러졌다’는 메시지가 들어왔다. 어느 대학생이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문자였다. 당시 100여 명의 대학생들이 문자메시지뿐 아니라 사진과 동영상까지 곳곳에 발송해 사태의 심각성을 알려주고 있었다.

    긴급한 상황에서 휴대전화는 매우 긴요하다. 9·11테러로 뉴욕의 쌍둥이빌딩이 불타고 있을 때 그 안에 있던 직원들은 재빨리 피신했다. 최대한 몸을 가볍게 해야 하니 가방은 물론 업무 관련 중요 서류 등도 미련 없이 남겨두고 사무실을 빠져나와야 했다. 그런 가운데 손에 꼭 챙긴 것이 바로 휴대전화였다. 어딘가에서 통로가 막히면 그 자리에서 SOS를 쳐야 했기 때문이다. 일초를 다투는 재난 현장에서 그 핫라인은 돈지갑과도 견줄 수 없는 생명줄이 된다. 1995년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실종자들에게 삐삐를 쳐서 그 호출음을 더듬어 수색을 벌였는데, 지금처럼 휴대전화가 보급돼 있었다면 훨씬 더 많은 인명을 구할 수 있었으리라.

    그런가 하면 재난 상황에서 휴대전화가 오히려 구조를 방해할 수도 있다. 2005년 런던에서 테러가 일어난 적이 있다. 당시 생존자들 가운데 일부는 폰카메라를 가지고 있었는데, 참사 현장을 빠져나올 때 너도나도 그 끔찍한 장면들을 찍어대느라 여념이 없었다고 한다. 고통에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촬영이 아니라 구조의 손길이었는데 말이다. 이를 목격한 어느 저널리스트는 “위기 속에서 잔인한 사람들이 있었다”고 술회한다. 자신의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는 상황에서도 카메라를 들이대는 그 투철한 정신을 시민 저널리스트의 열정이라고 해야 할까?

    문명이 고도화되고 복잡해지면서 우리의 삶과 사회는 점점 더 많은 위험을 내포하게 된다. 언제 어디서 어떤 사고가 일어날지 모른다. 위기 상황에서 탈출하거나 구조하는 작업에서 휴대전화는 효자 노릇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기기는 맹목적인 호기심을 자극하고 충족시키는 괴물로 돌변할 수도 있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곤경에 처한 이웃을 향한 측은지심을 무너뜨리고 천박한 자극 사냥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누구든 정보를 손쉽게 생산하고 가공하며 실시간으로, 그리고 대량으로 전달할 수 있는 미디어 환경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미세한 파동이 거대한 요동으로 증폭될 수 있는 마음의 생태계는 어느 때보다도 신중한 분별력을 인간에게 요구한다. 나의 휴대전화는 무엇과 무엇을 잇는가. 우리의 소통은 어떤 현실을 빚어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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