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37

2008.05.27

대유행 인플루엔자 PI 발생 땐 약 5만5000명 사망 추정

전염 강도 가장 약했던 1968년 홍콩 PI 사례 적용 … “섣부른 걱정” 의견 속 우려 목소리 커져

  • 김우주 고려대 의대 감염내과 교수 wjkim@korea.ac.kr

    입력2008-05-21 08: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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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초 전북의 가금(家禽)농장에서 시작된 고병원성 H5N1 조류인플루엔자(AI)는 단기간에 전국으로 확산됐다. 심지어 서울 부산 등 대도시에서도 발생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과거 성공적으로 통제됐던 2003~2004년, 2006~2007년의 겨울철 AI 유행과 달리 이번 경우는 온난한 봄에 발생했다. 게다가 닭과 오리에 국한된 숙주의 범위가 꿩 칠면조 토종닭 등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또한 양계농장에 집중됐던 AI 발생 장소가 이젠 우리 생활 주변의 재래시장에까지 파급되고, 무증상 감염만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오리마저 폐사하는 특징을 나타내면서 변종 바이러스의 대두와 함께 AI의 한국 내 토착화 우려가 높아졌다.

    20세기에 PI 11~39년 주기로 세 차례 발생

    설상가상으로 가금류 살처분에 참여했던 사병에게서 인체감염도 의심되고 있다. 이제 국내에서도 AI는 국민 건강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상황이 됐다.

    지금 당장은 AI가 가금산업에 끼치는 피해가 무엇보다 크게 여겨지겠지만, 사실 가장 두려워해야 할 시나리오는 AI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통해 대유행 인플루엔자(Pandemic Influenza, PI)를 일으켜 막대한 인명피해를 초래하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와 인플루엔자 전문가들은 PI는 반드시 발생하며, 시간이 흐를수록 PI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가장 가능성 높은 PI의 원인은 H5N1 AI로, 철저히 대비하도록 각국에 경고하고 있다.

    일각에선 AI가 대유행으로 발전한다는 가정은 기우(杞憂)이며 불필요하게 과도한 불안을 조장하는 것이라 비판하지만, AI로 인한 PI 발생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많다. 첫째는 인플루엔자 대유행 사례가 실제로 적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 300년간 10회의 PI 기록이 있으며, 20세기에는 1918년 스페인 PI, 1957년 아시아 PI, 1968년 홍콩 PI 등 11~39년 주기로 세 차례 발생했다. 특히 1918년 스페인(H1N1 바이러스) PI는 세계적으로 5000만명의 사망자를 냈으며, 2005년 미국의 타우벤버거(Taubenburger) 박사는 스페인 PI는 AI 바이러스가 직접 인체감염을 일으켜 발생된다는 과학적 증거를 제시했다.

    둘째 근거로는 새로운 PI의 유력한 후보인 고병원성 AI가 실제로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1997년 홍콩에서 처음으로 인체감염을 일으킨 고병원성 H5N1 AI가 지난 10년 동안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등지 67개국의 가금류와 철새에서 유행했다. 이 바이러스는 14개국에서 400여 명의 감염자와 250여 명의 사망자를 초래했다.

    이미 AI 바이러스는 PI 발생의 전제조건인 신종 인플루엔자의 출현, 인체감염 발생, 사람 간 전파 가운데 두 가지를 충족시킨 셈이다. 마지막 조건인 사람 간 전파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파키스탄 중국 등에서 가족 내 부자, 모녀, 형제간 감염사례들이 보고되고 있다는 점에서 반쯤은 뚫렸다고 볼 수 있다.

    셋째는 인체감염 AI 바이러스의 다양한 돌연변이주가 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H5N1 바이러스는 1997년 이래 계속된 유전자 변이를 통해 10여 가지로 세분화되고 있다. 크게는 홍콩주, 베트남주, 인도네시아주, 칭하이주 및 안휘주로 나뉜다. 이처럼 AI 바이러스는 끊임없는 변이를 통해 사람 간 감염 전파능력을 획득해 궁극적으로 PI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PI 한국보다는 동남아시아에서 먼저 시작될 가능성 커

    그렇다면 현시점에서 한국은 AI와 PI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AI가 이미 토착화된 동남아시아에서 인체감염자와 사망자가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AI의 토착화는 인체감염 사례의 위험성 증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따라서 국내에서 AI의 인체감염과 PI 발생 예방의 최우선 순위는 가금류에서 AI 유행을 종식시키는 것이다. PI는 한국보다 동남아시아에서 먼저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국내에서 AI가 통제되더라도 PI에 대한 국가적 대응과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향후 PI가 발생한다면 과거 전염 강도가 가장 약했던 1968년 홍콩 PI 사례를 적용한다 해도 약 900만명의 외래환자와 5만5000명의 사망자가 발생할 것으로 추산된다.

    PI의 대책은 환자 격리, 손 씻기, 개인 보호구 착용과 같은 고전적인 공중보건학적 조치에서부터 예방 및 치료용 항바이러스제(타미플루) 비축, 백신 개발과 비축 등에 대한 방안을 포함하고 있다. PI 피해 예측모델 연구를 통해 앞서 언급한 공중보건조치, 항바이러스제, 대유행 백신 세 가지를 병행했을 때 가장 피해가 적다는 결론이 나왔다. 특히 타미플루는 적어도 국내 인구의 20%에 해당하는 1000만명분의 비축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최근에야 250만명분 정도까지의 증량이 결정된 상황이다.

    백신은 현재 국내 비축량이 없어 매우 심각한 실정이다. 선진국들은 전 국민이 접종받을 수 있는 양을 목표로 단계적으로 백신을 개발, 비축하고 있다. 미국은 1300만명분, 일본은 1000만명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스위스는 전 국민 접종량을 비축해두고 있다.

    미국은 2011년까지 전 국민을 2회 접종할 수 있는 6억 도스(1회 주사량)의 백신을 확보할 계획이다. 한국도 최소한 초기 방역요원, 의료진, 사회기능 필수요원 등에게 접종할 130만명분은 비축할 필요가 있다. 단기적으로는 백신을 수입할 수밖에 없다 해도 중장기적으로는 국내에서 자체 개발, 생산해야 한다.

    대유행이 발생하면 전 세계적으로 백신 수요에 비해 생산량이 턱없이 부족해진다. 선진국에서는 자국민 위주로 공급할 것이다. 당연히 우리가 백신을 확보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따라서 국가 안위 차원에서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 최단기간 안에 백신을 연구 개발하고 생산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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