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30

2008.04.08

남편에게 차이고 돈은 없고 분노의 아줌마 인생 방랑기

  • 심영섭 영화평론가 대구사이버대 교수

    입력2008-04-02 14: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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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에게 차이고 돈은 없고 분노의 아줌마 인생 방랑기

    ‘미스언더스탠드’ 테리보다 되레 더 성숙한 쪽은 네 명의 딸들이다. 딸들은 테리에게 아버지를 용서하라고 권하지만, 테리는 이를 거부한다.

    시네마 천국의 땅에서 분노라는 샘물은 유독 남성들의 왕국에서 철철 솟아오른다. ‘분노의 주먹’ ‘성질 죽이기’ ‘아귀레, 신의 분노’ 등등. 이 영험한 샘물을 마신 남자 주인공들은 용기와 용맹이란 갑옷을 입고 칼을 휘두르고 주먹을 너울대며 섀도복싱을 해댄다. 물론 여성들의 그것은 때로는 ‘여고괴담’의 때깔 좋은 귀신으로, 때로는 ‘친절한 금자씨’ ‘펀치 레이디’의 복수극으로 판타지의 너울을 뒤집어쓰고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는 수준이지만…. 그런데 자기 아이를 유괴한 놈도 자신의 육체를 멍들게 한 놈도 지구상에서 다 사라져버리고 들끓는 가슴에 분노의 여명만이 자욱할 때, 여성들은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좀 뒤늦게 도착했지만, 마이크 바인더 감독의 ‘미스언더스탠드’(2005)는 바로 가족의 울타리에서 분노의 난투극을 벌이고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한 여인의 방랑기다. 한마디로 과거에는 ‘Miss 언더스탠드’였지만, 지금은 ‘Mrs. 언더스탠드’가 돼버린 아줌마의 이야기.

    남편이 여비서와 스웨덴으로 사라진 뒤 마음의 상처를 입은 주부 테리는 술과 담배를 입에 달고 살아간다. 어느 날 옆집에 사는 프로야구 선수 출신의 라디오 DJ 데니가 나타나고, 그녀 역시 그에게로 향하는 마음을 누를 길 없다. 그러나 딸들은 좀처럼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고 설상가상으로 경제적 곤궁까지 밀어닥치자, 테리는 유일한 재산인 집 뒤의 숲을 파헤치기로 마음먹는다.

    각본과 연출을 맡은 마이크 바인더 감독(그는 스탠드업 코미디언 출신으로 이 영화에서 라디오 PD 역을 맡았다)은 마치 심리학자처럼 분노와 투사라는 기제가 친밀한 타인들에게 가하는 보복과 상처의 말을 섬세한 언어의 그물로 건져낸다.

    테리는 자신을 버리고 떠난 남편에 대해 사실은 ‘백수가 될 뻔했다’며 네 딸에게 끊임없이 고자질하고 미워하게 만든다. 또 대학 대신 늙은 남자와 사귀고, 일찍 결혼해 계속 아이를 낳고, 자신이 못다 이룬 꿈을 펼치려는 딸들에게 “그 대학은 대학도 아니다”라고 쏘아붙이는가 하면, 결혼식 날 “볼이 통통하다”며 악담을 던진다. 게다가 남자친구의 의견은 무시한 채 “당신 집을 청소해주러 왔다”며 막무가내로 일을 벌이는 데야(테리는 유난히 데니와의 만남에서 계속 나신으로 그를 맞닥뜨리는바, 세상에서 유일하게 이 사내에게만은 마음의 가면을 벗어버리는 듯하다).



    중년의 위기, 시큼한 유머로 맛깔스럽게 버무려

    남편에게 차이고 돈은 없고 분노의 아줌마 인생 방랑기
    이혼한 뒤 어려운 시기를 보냈던 어머니와의 경험을 토대로 시나리오를 썼다는 마이크 바인더는 진정한 폭력은 단지 물리적인 수위를 넘어 자신의 경험을 타인에게 강요하고 내면의 충동을 행동화하는 것임을, 그 단단한 분노의 메커니즘을 까발린다.

    그래서 시종일관 술잔을 들고 사는 테리는 자신의 분노를 연료로 해 쉴 새 없이 자학과 우울, 자괴감을 벌컥벌컥 마셔대는, 보기 드물게 현실적인 캐릭터다. 테리를 좋아하는 데니 역시 영화 첫 장면부터 술잔을 들고 나타나기는 마찬가지. 그는 “나는 월드시리즈 반지 끼고 손 흔드는 사람”이라며, 정작 라디오에 나가선 죽어도 야구 이야기를 하려 들지 않는다. 그가 숨겨둔 상처와 열등감도 테리 못지않다.

    이 영화의 묘미는 중년의 위기라는 분노의 소나타를 시큼한 유머의 양념에 버무리는 마이크 바인더의 솜씨에 있을 것이다. 영화에서 어른보다 더 성숙한 쪽은 아이들이며, 언니보다 더 성숙한 쪽은 동생이다. 딸들은 어머니 대신 식사 준비를 하고 아버지를 용서하라고 권하지만, 테리는 이를 거부한다. 또한 테리가 함께 자자고 데니에게 제안하자, 오히려 뒷마당에 숨는 쪽은 남자인 데니. 그런 데니를 보며 테리는 자기와 자려면 핼리혜성처럼 앞으로 57년은 기다려야 할 거라고 분통을 터뜨린다.

    조앤 알렌의 변화무쌍한 희로애락 연기 ‘압권’

    여기서 이 모든 희로애락을 때론 가녀리게, 때론 가슴 아프게, 때론 심술궂게 연기하는 조앤 알렌은 천의무봉의 경지에 올랐다고나 할까. 마이크 바인더의 전작 ‘섹스 몬스터’를 보고 “자신을 위해서도 시나리오를 써달라”고 주문했다는 이 여배우는 명실공히 생애 최고의 연기를 펼친다. 또한 우리에게는 ‘늑대와 춤을’로 유명한 케빈 코스트너 역시 능청스럽고도 자상한 데니 역을 훌륭히 소화하고 있다.

    결국 영화의 마지막, 한국어 제목인 ‘오해’가 암시하듯 테리의 모든 고통은 세상이란 책을 어떻게 읽어내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오해의 산물이었다. 감독은 막내 뽀빠이가 작성하는 비디오 클립에 데모와 유혈진압의 다큐 동영상을 삽입하며, 이 개인적 가족극에 마지막으로 자신의 사회적 통찰을 첨가한다. 폭력, 증오, 강탈, 종교적 억압, 대량학살 등은 바로 사람들이 사랑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에, 사랑이 미움이 되는 게 얼마나 쉬운지 모르기 때문에, 두려움 때문에, 때론 진실을 알려고 하지도 않기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을.

    전작 ‘레인 오버 미’에 이어 다시 한 번 ‘미스언더스탠드’는 치유적이다. 마이크 바인더는 우디 앨런보다는 덜 자기중심적이고 찰리 채플린보다는 더 현실적으로 누더기가 된 인간의 마음을 감싸안는다. 기실 이 가족들은 병들고 죽고 살아나고 아이를 낳지만,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분노의 성장통을 넘어 또 다른 자아를 향해 떠나가려는 모든 이들에게 ‘미스언더스탠드’를 권한다. 세상과 자신을 조금이라도 더 ‘언더스탠드’하는 데 ‘미스언더스탠드’가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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