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28

2008.03.25

해외서 외면받는 작품 국내서 불티나는 까닭은

  • 이호숙 아트마켓 애널리스트

    입력2008-03-19 14: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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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서 외면받는 작품 국내서 불티나는 까닭은

    구사마 야요이의 1994년작 ‘Pumpkin’. 서울옥션 109회 경매에서 추정가의 2배 이상인 4600만원에 낙찰됐다.

    그림을 수집하면서 수업료를 지불해야만 했던 시절이 있었다. 여기서 수업료라는 것은 훈련되지 않은 눈과 확실하지 않은 정보만 믿고 쓸모없는 그림을 사는 데 들인 초기 자금을 말한다. 이름난 컬렉터들도 이런 수업료를 지불하고 구입한 그림을 잔뜩 가지고 있다. 그림을 보는 안목이 트인 후, 뒤돌아보면 내가 왜 저런 그림들을 샀을까 하며 쓴웃음 짓게 되는 작품들이다. 그리고 요즘도 여전히 수업료를 내고 검증되지 않은 작품을 구매하는 초보 컬렉터들이 눈에 띈다.

    최근의 미술시장 동향은 결국 단기투자가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한 뼈아픈 교훈을 남긴 셈이다. 하지만 그림을 산다는 것은 중독성이 있는 일이라서 컬렉터들은 시장이 냉각기인 지금도 그림을 사고 싶어 안달나 있다. 이들 중 몇몇은 대담하게도 해외 작품 구입으로 급선회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작가는 앤디 워홀, 데미언 허스트, 구사마 야요이다. 앤디 워홀이나 데미언 허스트는 두말할 것도 없이 전 세계 미술시장의 절대 강자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문제는 국내에 들어와서 거래되는 그들 작품의 퀄리티에 있다. 과연 소장가치가 있을 만큼 좋은 작품들이 유입되고 있는가? 작품을 감상할 때의 눈과 나만의 작품으로 컬렉션하기 위한 눈은 분명 다르다. 감상할 때의 눈이 좀더 느긋하다면 컬렉션을 위한 눈은 까다로워야 한다.

    앤디 워홀의 경우, 일반적으로 좋은 작품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10억 이상의 예산을 생각해야 하며 데미언 허스트 역시 5억 이상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 정도 예산이 없다면 이들의 판화작품을 구입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는 에디션이 몇 개인지, 기법은 무엇인지, 중요한 소재인지 등 따져봐야 하는 요소가 많다. 그럼에도 작품에 대한 정보들은 허술하기 그지없다. 국내에서 거래되고 있는 앤디 워홀 판화작품의 경우 오리지널과 리프로덕션 작품에 대한 구분이 명확하지 않으며, 심지어 사인이 없는 작품까지 버젓이 거래되고 있다. 사인 없는 작품을 누가 앤디 워홀의 판화라고 인정하겠는가.

    가장 우려되는 것은 갑자기 불어닥친 구사마 야요이 열풍이다. 전 세계에 퍼져 있던 그의 작품들이 적극적으로 국내로 유입되고 있다. 구사마 야요이의 작품이 단기간에 큰 수익을 낼 거라는 정보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에 들어와 있는 그의 작품 중에서 컨템포러리 아트마켓의 주무대인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거래될 수 있는 작품이 몇 점이나 있을까. 솔직히 말한다면 거의 없다고 판단된다. 특히 그의 ‘펌킨(Pumpkin)’은 일본의 마켓 전문가들조차 컬렉션을 권하지 않지만 국내 컬렉터들은 이 작품 앞에 줄을 서 있다.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도 가격이 똑같지는 않다. 구사마 야요이의 경우 초기 60년대의 ‘Infinity nets’, 그중에서도 회색 작품들이 가장 높은 평가를 받으며, 그 밖의 작품들은 가치평가 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한다. 특히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조심스럽게 구입해야 할 작품 소재가 ‘펌킨’이다. 피해야 할 1순위 소재인 ‘펌킨’이 국내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것이다.

    그림을 사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단순히 투자라고 볼 때(물론 장기적으로는 컬렉션이 되겠지만) 확인되지 않은 정보만 믿고 움직이는 것은 위험하다. 한 작가가 세계 최고의 갤러리에 전속된다 해도 그의 모든 작품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세계적으로 아무도 사지 않는 작품들이 국내에서 소화되고 있다는 것은 결코 자랑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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