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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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무대 넘나드는 연극쟁이들의 청춘 열병

  • 현수정 ‘더 뮤지컬’ 수석기자

    입력2008-03-19 14: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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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과 무대 넘나드는 연극쟁이들의 청춘 열병

    평범한 ‘줄리’의 모습은 젊은 연극인들의 현실이자 세상의 모든 청춘을 대변하는 이미지다.

    “길가 담벼락 너머로 막 피어나던 목련꽃이 내게 말을 걸었소. 아프지 마라, 아프지 마라. … 햇살에 눈을 찌푸린 내가 찌푸린 얼굴로 목련을 올려보았을 때 세상에, 세상에, 목련은 막 꽃봉오리를 밀어내고 있는 중이었소. 이 세상에 꽃을 피워내려 안간힘을 쓰는 목련보다 더 아픈 것이 어디 있단 말이오. 근데 나더러는 아프지 말라 하더이다. 자기가 더 아프면서….” -극중극 ‘햄릿’ 중 석동의 대사

    4월이 오면 나뭇가지에 앉은 흰 새들처럼 목련이 핀다. 꽃잎이 너무 커서 미처 잎사귀를 거느리지 못한 앙상한 목련나무의 모습은 장식 없는 순정을 보여주는 듯 처연함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한 달을 채 못 채우고 둔탁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커다란 꽃잎은 무작정 슬프고 애달프기만 한 청춘의 심경을 자극한다. 목련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며 사랑을 고백하는 석동, 피었다가 금방 떨어진 꽃잎 같은 과거의 사랑이 여전히 아프게 느껴지는 선정…. 연극 ‘줄리에게 박수를’(박수진 작, 민복기 연출)에서는 사랑과 삶에 대해 고민하고 아파하는 젊은 연극쟁이들의 모습이 위트 있게 그려진다.

    연극배우인 석동(김영민 분)은 상대역인 선정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는 ‘햄릿’의 타이틀롤에, 선정은 오필리어(이진희 분) 역에 캐스팅된 상태. 그러나 선정은 오필리어가 아닌 줄리엣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 5년 전,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 역을 맡았던 그녀는 당시 남자친구인 민호를 잊지 못한다. 같은 연극에서 로미오를 연기했던 민호는 지하철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석동은 선정을 줄리엣에서 오필리어로 변화시키기 위해 갖은 애를 쓰지만, 그녀는 따라주지 않는다.

    이야기는 ‘햄릿’을 연습하며 석동이 선정에게 구애하는 현재와 ‘로미오와 줄리엣’을 준비하면서 선정과 민호가 사랑을 하던 과거가 교차되면서 진행된다. 그 와중에 셰익스피어의 두 연극이 극중극으로 펼쳐진다.

    연극 ‘줄리에게 박수를’이 지닌 미덕 중 하나는 ‘햄릿’과 ‘로미오와 줄리엣’의 시적인 대사들이 인물들이 지닌 현재의 상황과 잘 맞물려 사용된다는 것이다. 햄릿 역의 석동은 선정의 사랑을 갈망하며 “사느냐 죽느냐…”를 외치고, 자신의 마음을 외면하는 선정을 향해 “아름다움이란 정숙한 여인을 요부로 바꾸어놓기 쉽다”는 대사로 비아냥거린다. 나아가 두 사람은 햄릿과 오필리어의 언쟁을 인용하며 말싸움을 벌인다. 그리고 민호와 선정이 보여주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극중극은 마치 두 사람이 사별할 것을 예고하는 듯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특히 민호가 로미오의 대사로 사랑을 고백하다 급작스럽게 코러스에 둘러싸여 멀어져가는 장면은 죽음을 상징적으로 처리한 연출적 묘미가 돋보인다. 일상에 사용하기에는 너무 깊은 감성을 건드리는 셰익스피어의 대사들이 이 극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것은, 석동의 대사처럼 ‘하루에도 수십 번 죽었다가 살아나는’ 청춘의 힘겨운 열정이 진정성 있게 표현되기 때문일 것이다.

    배우들의 연기가 유독 진솔하게 다가오는 것은 무대에서 풀어놓는 이야기가 자신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시공간적 배경은 전단지가 덕지덕지 붙고 쓰레기와 꽃잎이 나뒹구는 2008년 봄의 대학로다. 연극 대사를 섞어가며 대화하고, 셰익스피어 연극 중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햄릿’과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습하며, 연극계를 떠나 다른 삶을 찾아간 선후배들의 근황을 화젯거리로 삼는 모습 등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연극쟁이들의 자화상이다. 석동은 이야기한다. “물어요 사람들이. 너는 왜 그 일을 하고 있냐? 왜 거기 있냐? 아직 그다지 멋있는 이유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묻는 그 이유라는 것, 오히려 당사자인 저한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은데, 제가 이상한가요?” 이들은 연극을 통해 사회를 변혁시키거나 입신양명하려는 원대한 꿈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다. 이들에게 연극은 숨쉬고 생활해온 일상인 것이다.

    극중극 ‘햄릿’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는 또 다른 재미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그러하듯 ‘줄리에게 박수를’의 인물들은 크게 뛰어나지도, 뒤떨어지지도 않는 ‘어중간한’ 사람들이다. 선정은 지하철에서 사고로 죽은 민호가 자살했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평범한 자신의 삶에 사랑만큼은 특별한 색깔로 채색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사랑마저도 어중간하면, 나 너무 비참하지 않아요? 자살로 할래요. 로미오는 자살했어요. 삶과 인생과 예술의 날선 칼끝에 심장을 맡겼다고요.” 극중 강아지의 이름으로도 불리는, 어찌 보면 하찮고 흔한 느낌을 주는 ‘줄리’는 극중의 ‘선정’을 넘어서서 대학로의 연극인들과 관객, 그리고 세상의 모든 청춘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나 ‘줄리에게 박수를’이라는 제목과 극의 결말 부분이 다소 인위적으로 연결되는 인상을 준다. “만일 나뭇가지가 움직이면 너에게 내가 박수를 보내고 있는 것”이라는 민호의 이야기, ‘연습용 줄리엣’을 맡은 복순이 선정 앞에서 줄리엣의 대사를 읊은 후 박수를 강요하는 장면 등 중간 중간 이음새를 마련해주는 곳들이 있지만, 극의 주제를 이어줄 연결고리가 좀더 만들어진다면 작품은 더욱 완결성 있게 마무리될 것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길쭉한 캣워크 모양의 양면 무대가 사용됐다. 극장 구조물의 일부인 양편 굵은 기둥을 아예 마로니에 공원의 벤치로 꾸며놓은 아이디어가 참신했다. 이로 인해 배우들은 방향에 제약받지 않으면서 양편 관객들을 향해 뛰어다니고, 복합적인 층위의 공간은 순발력 있게 교차된다. 라이브 반주에 맞춘 배우들의 노래가 극중극에 삽입되는 것도 이 작품의 특징인데, 뮤지컬과는 다른 방식으로 감성을 자극하며 여운을 남긴다.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김영민의 연기를 비롯해 약방의 감초 같은 복순 역 김은옥의 연기도 작품의 재미를 더한다.

    ‘줄리에게 박수를’은 청춘을 앓고 있는 사람들, 또 지난 시절의 꿈결 같은 공기와 봄바람처럼 산란한 마음이 그리운 이들이 볼만한 연극이다. 3월8일부터 5월5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 111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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