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28

2008.03.25

‘야구 스타 이호성의 마지막 팬인사’

  • 편집장 김진수

    입력2008-03-17 17: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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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기 어려운 공은 치지 않고, 잡기 어려운 공은 잡지 않는다.’박민규 씨를 일약 우리 문단의 대형 작가 반열에 들게 한 길잡이가 된 그의 2003년작 장편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 등장하는 유명한 구절입니다. 읽어본 분들이라면 공감하겠지만, 이 재미난 작품의 백미(白眉)랄 수 있는 무척 인상 깊고 위트 넘치는 표현이지요.

    이듬해 개봉된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도 국내 프로야구 초창기에 일반인 신분으로 프로선수에 뽑혀 패전처리 전문 투수로 활약(?)했던 감사용 씨의 실화를 모티프로 한 터라, 우리 프로야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만년 꼴찌’팀인 삼미 슈퍼스타즈라는 이름은 여러 사람의 귀에 익숙할 겁니다.

    장르가 다른 이 두 작품을 통해 제가 느낀 건 프로페셔널이기를 유난스레 강요하는 세상의 도도한 흐름에 대한 풍자였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지나치리만큼 키치(kitsch)적입니다. 한국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부터 지금까지 팬들은 무명(無名)선수에게 별반 관심을 두지 않았으며, 이는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팬들이 열광하는 무대는 승자만이 살아남아 대접받는 냉혹한 프로의 세계인 탓입니다. 최근 어처구니없는 범죄행각과 그로 말미암은 자살로 생을 마감한 전 프로야구 선수 이호성 씨도 한때는 그 중심에 섰던 ‘스타’였습니다.

    1990년대 해태 타이거즈의 전성기를 이끈 4번 타자. 워낙 힘이 센 데다 광주 무등구장에서의 연습 타격에서 무려 150m짜리 장외 홈런을 날려 붙여진 ‘삼손’이란 별명. 골든글러브 수상과 ‘20-20 클럽’(20홈런-20도루) 가입이 상징하는 호타준족(好打駿足)….



    그러나 “야구는 돈 가지고 하는 게 아니란 걸 보여주겠다”던 그도 부상으로 인한 은퇴 이후 사업에 연이어 실패하고 파산하는 등 자신의 인생행로에서만큼은 프로로서 각광받지 못했습니다. 야구도 마찬가지지만 인생은 더더욱 ‘치기 어려운 공은 치지 않고, 잡기 어려운 공은 잡지 않아도 되는’ 소설 속 허구의 공간이 아니었기 때문이겠지요.

    그럼에도 ‘성공 인생’을 일군 왕년의 프로야구 선수들은 적지 않습니다. 앞서 언급한 감사용 씨는 유명 강사로 거듭났고, 1990년 해태 코치 시절 당시 갓 입단한 신인 이호성 씨에게 자신의 등번호 ‘27’을 물려준 원년 홈런왕 김봉연 씨는 대학교수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끔찍한 집단살인을, 그것도 계획적으로 저지른 혐의를 받은 이호성 씨를 동정하고 싶진 않습니다. 다만 그가 스스로 한강물에 몸을 던짐으로써 옛 팬들에게 뜻하지 않게 남기게 된 간접적 인사만은 쉽게 잊히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야구공 못지않게 인생 또한 빠르게 돌고 돈다는 것을….

    ‘야구 스타 이호성의 마지막 팬인사’
    이번 호에서 그의 비극적 삶에 얽힌 내막과 프로야구계 왕년의 스타들 근황을 다루며 새삼 깨닫습니다. 때때로 ‘치기 어려운 공도 쳐야 하고, 잡기 어려운 공도 잡아야’ 하는 게 인생이라고. 사람들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이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의 세상에서 우린 모두 멍에를 짊어진 프로이자 ‘포로’입니다.

    편집장 김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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