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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빨라진 탄핵시계와 헌재의 힘

“헌법재판의 브레인이자 손과 발”

탄핵심판 숨은 주역 헌법연구관의 세계…판사 대우받는 특정직국가공무원

“헌법재판의 브레인이자 손과 발”

“헌법재판의 브레인이자 손과 발”

2월 1일 박한철 전 헌법재판소장 퇴임 후 처음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기일의 재판정 모습. 박 전 소장이 앉던 법대 가운데 자리(점선 안)에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앉았다. [공동취재단]

“헌법연구관 20여 명이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기로 했다.”

지난해 12월 12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개시 후 처음 열린 헌법재판소(헌재) 전체 재판관회의 직후 배보윤 헌재 공보관이 밝힌 내용이다.

헌법재판이 열릴 때 재판정에 앉는 건 ‘헌법재판관’(재판관)이다. 대통령 탄핵 여부를 최종적으로 결정할 권한 역시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을 비롯한 8인의 재판관에게 있다. 그런데도 헌재가 탄핵심판 개시와 동시에 ‘헌법연구관 TF’에 대해 밝힌 건 헌법재판에서 이들이 담당하는 구실이 작지 않기 때문이다.

평의 기초자료부터 결정문 초안까지

“헌법재판의 브레인이자 손과 발”

2월 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출근하고 있다.[박영대 기자]

헌재법은 헌법연구관(연구관)을 ‘헌법재판소장의 명을 받아 사건의 심리 및 심판에 관한 조사·연구에 종사’(헌법재판소법 제19호 3항)하는 존재로 규정한다. 일견 ‘연구직’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를 실제 재판 과정에 적용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헌재 관계자들에 따르면 헌재는 재판관마다 3명씩 전속연구관을 둔다. 이외에 재산권, 자유권, 사회권 등 3개 부서에 공동연구관을 배치하고 있다. 헌법재판이 시작되면 사건 성격에 맞는 부서의 공동연구관 중 한 명이 담당자가 돼 해당 사건의 사실관계를 정리한다. 적용 법리와 법률적 쟁점 등을 검토하고 기존 판례와 외국 사례 등까지 종합해 보고서를 만드는 것도 이 연구관의 몫이다. 이후 해당 부서 연구관들이 이를 놓고 집단토론을 벌인 뒤 담당 재판관에게 보고하면, 재판관은 이 결과를 바탕으로 재판관 전원이 참석하는 평의를 연다. 전속연구관은 이 과정에서 해당 재판관을 보좌한다. 재판관들이 최종 결론을 내리면 다시 처음의 담당 연구관이 결정문 초안을 작성하는 게 일반적이다. 헌법재판의 시작부터 끝까지 연구관이 깊숙이 참여하는 셈이다. 연구관을 지낸 한 변호사는 이에 대해 “일반적인 헌법재판은 담당 연구관의 시각, 관점 등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단, 대통령 탄핵이나 통합진보당 해산처럼 재판관들이 초기부터 깊이 관여하는 사건은 그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적다고 한다.  

일반적인 사건에서 재판관들은 평의 도중 궁금한 부분이 있으면 수시로 연구관에게 추가 보고서 제출을 요구하고, 연구관들과 격의 없이 의견도 교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관 출신인 또 다른 변호사는 “이 때문에 헌법재판 현장에서 연구관은 브레인이자 손과 발로 통한다”고 했다. 2015년 정년퇴임한 최갑선 전 연구관은 당시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을 언급하며 “관습헌법 아이디어는 극소수 연구관이 고안해낸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2월 현재 헌재에는 이러한 연구관(연구관보 포함)이 76명 있다. 자체적으로 임용한 60명에 법원·검찰에서 파견된 판검사 16명을 포함한 인원이다. 이 가운데 몇 명이 탄핵심판 TF에 참여 중인지 묻는 질문에 배보윤 공보관은 “정확한 수를 밝히는 건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과거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처럼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고 결론을 빨리 내려야 하는 사안이 발생했을 때는 거의 모든 연구관이 해당 사건에 투입된다는 게 전직 연구관들의 귀띔이다. 이번에도 연구관들이 사실상 ‘전원 동원체제’로 일하고 있을 것임을 짐작게 한다. 한 전직 연구관은 “탄핵시계가 빨라지면서 언론 카메라가 연일 재판관들의 출퇴근 모습을 비추는데, 연구관들도 전면에 드러나지 않을 뿐 재판관 못지않게 밤낮 없이 일하고 있을 것”이라며 “연구관들은 이처럼 국가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결정에 참여할 때 힘들어도 보람과 자부심을 느낀다”고 밝혔다. 

90% 이상이 판사, 검사, 변호사 출신

“헌법재판의 브레인이자 손과 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첫 변론기일인 1월 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탄핵 찬반 1인 시위가 있었다. [김재명 기자]

1988년 헌재가 처음 문을 열었을 때는 연구관 전원이 파견자(법원 2명, 검찰 1명)였다. 그러나 헌재가 89년 3명, 92년 1명, 94년 1명 등 자체 연구관을 충원하고 2000년대 들어 정기적으로 공채를 실시하면서   임용자 규모가 크게 늘었다. 이 과정에서 헌재의 전문성과 연구관들의 자긍심 또한 눈에 띄게 높아졌다는 평가다. 바른정당 오신환 의원이 지난해 9월 헌재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당시 연구관 59명 가운데 57명(97%)이 사법연수원 출신이거나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법률전문가였다.  

헌법재판소법은 연구관의 자격 요건을 판검사 또는 변호사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한정하지 않는다. 변호사 자격이 없더라도 △공인된 대학의 법률학 조교수 이상의 직에 있던 사람 △국회, 정부 또는 법원 등 국가기관에서 4급 이상의 공무원으로서 5년 이상 법률에 관한 사무에 종사한 사람 △법률학에 관한 박사학위 소지자로서 국회, 정부, 법원 또는 헌법재판소 등 국가기관에서 5년 이상 법률에 관한 사무에 종사한 사람 △법률학에 관한 박사학위 소지자로서 헌법재판소 규칙으로 정하는 대학 등 공인된 연구기관에서 5년 이상 법률에 관한 사무에 종사한 사람 등은 연구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연구관 공채 경쟁률이 매년 수십 대 1을 기록할 만큼 인기가 높아지면서 판검사를 하거나 유명 로펌에 근무하다 연구관으로 자리를 옮기는 이가 적잖다는 후문이다. 2010년부터 연구관이 판검사와 동일한 호봉 및 승급체계를 적용받게 된 것도 이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연구관은 헌재법상 ‘특정직국가공무원’이지만 실제로는 판사에 준하는 대우와 보수를 받는다. 임기는 10년이나 연임할 수 있고, 정년은 60세다. 사법시험 합격 후 연구관과 대법원 재판연구관 등을 지낸 노희범 법무법인 우면 변호사는 “연구관은 헌재에서 일하기 때문에 몇 년 간격으로 임지를 옮겨 다녀야 하는 판검사에 비해 근무환경이 안정적이다. 또 법률가로서 민주주의, 법치주의, 기본권 등 근원적인 문제를 성찰할 수 있다는 데 만족감이 크다. 헌재가 연구관의 공부를 장려해 국제회의 및 학술대회 참가, 해외 유학 등의 기회를 많이 주는 것도 인기 원인 중 하나일 것”이라고 밝혔다.

반복되는 인력 유출, 전문성 강화 숙제

업무강도도 다른 법률 직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여겨진다. 2010년 대법원 국정감사에서 당시 민주당 박우순 의원은 연구관과 비슷한 업무를 담당하는 대법원 재판연구관(공동재판연구관 포함)의 인당 담당 사건 수가 연구관의 8배 이상(2008년 8.1배, 2009년 8.5배)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한 전직 연구관은 “대법원의 경우 처리해야 하는 사건이 워낙 많아 선례가 있으면 이를 쉽게 인용하게 된다고 들었다. 판례가 바뀌기 힘든 것이다. 하지만 헌재는 좀 더 충분한 시간을 갖고 사안을 논의할 수 있는 데다 재판관들도 영혼이 자유로운 편이라 대법원에 비하면 판례가 변경되는 경우가 잦다”고 밝혔다. 이 또한 연구관들의 직업 만족도를 높이는 요소중 하나라고 한다.

그러나 연구관이 천상의 직업인 것만은 아니다. 전문성을 쌓고, 헌법재판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 해도 끝내 ‘보좌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법원이나 검찰은 주요 보직을 내부 승진한 판검사가 맡는다. 하지만 헌법 재판관은 철저히 정치적 고려에 의해 정해진다. 연구관이 재판관으로 임명돼 헌법재판의 주역이 될 길이 사실상 막혀 있는 셈이다. 대통령과 대법원장, 국회가 각각 3인씩 추천하는 재판관 명단에 연구관이 포함된 일은, 30년 가까이 이어진 헌재 역사에서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에 대해 한 연구관 출신 법조인은 “헌법 분야 전문성을 놓고 보면 연구관이 저명한 판검사에 뒤질 게 없다. 하지만 결국 재판관이 되는 건 외부에서 ‘날아온’ 이들”이라고 했다. “연구관은 아무리 좋은 법률 논리를 만들어내도 그것을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없다. 재판관의 보조인력에 머물기 때문에 연차가 쌓여도 ‘디시전 메이킹(decision making)’을 할 수 없다는 게 힘들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많은 연구관이 경력을 쌓은 뒤 학계나 법조계에서 ‘인생2막’을 모색한다. 특히 법학전문대학원이 생긴 뒤 헌법학 교수로 진출하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 이에 대해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는 “연구관이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헌재에서 인재가 계속 유출되는 건 우리나라 헌법재판의 미래를 생각할 때 바람직한 일만은 아니다. 연구관들이 경력과 전문성에 맞는 임무를 부여받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각계각층 헌법연구관들
새누리당 정종섭 의원과 이석연 전 법제처장은 1989년 헌법재판소(헌재)가 처음 자체적으로 헌법연구관(연구관)을 채용했을 때 선발돼 연구관을 지냈다. 이후 법조계 안팎에서 다양한 활동을 해왔지만 이들에게는 늘 ‘헌법전문가’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박일환 전 대법관이 88년 법원에서 헌재로 파견돼 초대연구관을 지내는 등 법원·검찰에 적을 두고 헌재를 경험한 인사도 적잖다. 이선애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사법시험 합격 후 판사로 일하다 연구관을 지낸 인물이다. 이외에도 많은 전직 연구관이 로펌에서 활동 중이며, 교육계에도 연구관이 다수 진출해 있다. 황도수(건국대), 성기용(이화여대), 윤영미(고려대), 전종익(서울대), 최진수(연세대), 정남철(숙명여대) 교수 등이다. 연구관 출신인 김선휴 변호사는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에서 공익법센터 간사로 활동 중이다.


입력 2017-02-10 18:06:00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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