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25

2008.03.04

솜씨 좋은 종부가 차린 깔끔하고 화려한 잔칫상

  • 허시명 여행작가 twojobs@empal.com

    입력2008-02-27 14: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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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솜씨 좋은 종부가 차린 깔끔하고 화려한 잔칫상

    신선로.

    “아니, 종갓집 며느리가 음식점을, 그것도 바로 집 마당에서?”

    ‘서지초가뜰’은 강릉에서 한정식집으로 소문난 곳이다. 경포대 서쪽, 선교장 인근에 자리잡은 이 음식점을 운영하는 사람은 창령 조씨 9대 종부인 최영간 씨다. 9대는, 창령 조씨 집안이 경포대에 터잡은 뒤로 9번째로 들어온 큰며느리라는 뜻이다.

    종부 최씨는 일복이 터진 사람이다. 그래서 손은 늘 물에 젖어 부어 있고, 그녀의 어깨에는 한 짐이 얹혀 있는 듯하다.

    음식점을 열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살고 있는 종갓집이 강원도 문화재로 지정될 무렵, 문화재 전문위원들이 출입하면서 밥맛을 보더니 “식당을 차려도 좋겠다”고 칭찬했다. 음식이 맛있다는 소문을 들은 강릉 농업기술센터에서는 강릉을 대표하는 한정식을 선보이자고 졸랐다. 그래서 덜컥 1998년 식당 문을 열었다.

    이곳에서 내놓는 음식은 이 집에서 해먹던 것들이다. 설날엔 200명이 넘는 손님이 찾아오고, 제사상과 손님상을 자주 차리던 집이라 음식이 화려하다. 식단을 보면 못밥, 질상, 생일상, 잔칫상, 손님상, 큰상 등이 있다. 못밥은 모내기할 때 일꾼들에게 냈던 음식이고, 질상은 모내기를 끝내고 난 뒤 내놓은 소박한 잔칫상이다.



    집에서 해먹던 음식 … 계절 따라 개성 있는 손맛

    이 집에서 큰상을 받아봤는데, 한정식의 단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대식구가 아니고는 마련된 음식을 다 해치울 수 없었다.

    못밥, 질상 같은 이름만큼이나 음식은 개성이 있다. 우선 반주로 송죽두견주라는 술이 있다. 찹쌀, 멥쌀, 흑미, 차좁쌀 따위 재료에 누룩과 솔잎, 진달래꽃이 들어간다. 여기에 어울리는 주안상도 있는데, 특별한 안주 하나를 소개하면 배추 쇠고기 양파 송이를 끼워 양념한 뒤 자작자작 끓여낸 느림이가 있다.

    밥 먹기 전에 먹는 또 하나의 음식으로 씨종지떡이 있다. 씨종지떡에는 멥쌀 찹쌀 밤 대추 팥 쑥 곶감 호박오가리 강낭콩이 들어간다. 모내기에 사용하고 남은 종자 볍씨로 만든 떡이라 그런 이름이 붙었다. 큰상에 나오는 신선로의 사태국물은 무와 마늘, 파를 넣고 끓인 뒤 기름을 걷어내고 청장과 소금으로 간을 맞춰 마련한다. 육포, 구절판, 미나리강회, 파강회도 이 집의 별미다.

    한정식 맛을 소박하게 음미할 수 있는 식단으로는 1만원짜리 질밥이 무난하다. 계절에 따라 나오는 음식에 차이가 있는데 메밀전, 삼색나물, 잡채, 코다리찜, 집된장으로 끓인 찌개, 생선과 생미역, 젓갈 따위가 나온다. 종갓집에 초대받아 소박하게 한상 대접을 받은 느낌이 제대로 든다. 일손이 많이 가는 반찬들이 나오는지라 서비스가 따라가지 못하는 때가 있지만 편안하게 종갓집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솜씨 좋은 종부가 차린 깔끔하고 화려한 잔칫상

    ‘서지초가뜰’의 큰상 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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