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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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港 나폴리 쓰레기 도시로 추락

관료 보신주의, 주민 이기주의, 마피아 개입 등 소각로 건설 못한 대가 ‘톡톡’

  • 나폴리=김경해 통신원 kyunghaekim@tiscali.it

    입력2008-01-23 13: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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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더미 같은 쓰레기에 파묻힌 ‘세계의 미항(美港)’ 이탈리아 나폴리. 견디다 못한 주민들은 쓰레기에 방화를 저지르고, 이 때문에 소방차는 쉴새없이 출동한다. 한쪽에서는 매립장 재개를 반대하는 시민들이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경찰과 충돌하고, 그 와중에 기자들까지 시위 군중에게 몰매를 맞고 카메라 테이프를 압수당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그야말로 ‘쓰레기 전쟁’이다.

    쓰레기 수거업 진출한 마피아 막대한 수익

    연초부터 외신을 타고 전 세계에 전파된 추악한 나폴리의 모습은 상상을 초월했다. ‘아랍의 CNN’이라 불리는 ‘알자지라’는 나폴리의 쓰레기 대란을 톱뉴스로 내보냈다. 현재 상황은 진정 국면에 들어선 것처럼 보이지만 쓰레기 전쟁의 불똥은 이탈리아 중앙정부와 각 주(州)정부의 관계를 급격히 악화시키고 있다.

    나폴리가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된 이유는 복합적이다. 주정부는 중앙정부의 지원금을 받아 챙기기만 했을 뿐, 지난 14년간 소각장 하나 건설하지 않았다. 임기만 무사히 넘기면 된다는 안일한 태도와 책임 떠넘기기가 초래한 결과다. 나폴리가 속한 캄파니아 주정부가 2000년부터 현재까지 쓰레기 관련 예산으로 사용한 금액은 무려 20억 유로(약 2조7800억원)에 이른다. 20억 유로면 소각장 15개를 건설할 수 있는 거금이다. 하지만 이 돈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오히려 5억5700만 유로의 ‘쓰레기 빚’을 지고 있다.

    관계 전문가들은 이 지역의 마피아 카모라가 이권사업으로 쓰레기수거업에 진출, 수년째 타 지역의 산업 및 화학 폐기물까지 나폴리로 불법 반입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미 ‘환경 마피아’들은 소각로 건설 반대를 무대 뒤에서 지휘하고 있다. 러시아 마피아들도 환경비즈니스업에 눈뜨기 시작해 쓰레기수거업을 장악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또 쓰레기 매립장과 소각장 건설을 무조건 반대하는 나폴리 주민들의 이기주의와 열악한 시민정신도 쓰레기 전쟁을 일으키는 데 한몫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로마노 프로디 이탈리아 총리는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긴급 관계장관 회의를 열고 캄파니아주에 자체 처리능력을 갖춘 3대의 소각로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쓰레기비상특별위원회에 전 경찰청장이자 마피아 수사 전문가인 데 젠나로를 임명하고 4개월 안에 문제를 해결토록 지시했다. 데 젠나로는 쓰레기매립장 감시와 비상 수거에 군 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 특권까지 부여받았다.

    프로디 총리는 특별위원회의 지시를 수행하지 않을 경우 법정관리를 받게 함으로써 이 지방 시장들의 안일한 업무에도 제동을 걸었다. 그러나 프로디 총리는 조만간 직접 바로수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에게 사건 보고를 해야 하는 난처한 처지다.

    “나폴리 쓰레기 대란은 전국 비상사태”라고 단언한 프로디 총리는 다른 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나폴리의 넘쳐나는 쓰레기를 대신 처리해줄 것을 호소했다. 그러나 롬바르디아, 베네토, 움브리아 등 대다수 주는 시설에 한계가 있고, 또 품질을 따져보고 결정하겠다는 등의 이유를 내세우며 차가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르데냐 주정부만이 선뜻 쓰레기 처리를 약속했지만, 1월10일 밤 나폴리 쓰레기의 반입을 반대하는 이 지역 주민들의 항의가 벌어졌다. 레나토 소로 사르데냐 주지사는 “항의 시위자 대부분이 우익 야당 당원이거나 극우 성향의 칼리아리 현지 훌리건들”이라며 일부 정당들이 폭력을 부추기고 있다고 비난했다. 나폴리와 칼리아리 축구팀은 역사적으로 오랜 ‘적수’다. 문제는 이런 적대 감정만이 시위의 원인은 아닌 것 같다는 점이다. “돈을 받고 자행된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폭동이었다”는 칼리아리 경찰청장의 조사 발표도 있었다.

    주변 지역들도 “나폴리 쓰레기 절대 반입 금지”

    시칠리아에서도 나폴리에서 선박으로 수송된 쓰레기를 거부하는 등 쓰레기 반입을 반대하는 주민 시위가 확산되고 있다.

    나폴리 출신인 영화감독 마리오 마르토네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탈리아의 가장 큰 문제점은 냉소주의”라고 비판했다. 그는 “남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든 관심 없고 오직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의 결과가 바로 이번 쓰레기 대란이며, 국민 모두가 그 대가를 지불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가를 지불하는 첫 희생양은 어린 나폴리 학생들로 보인다. 이달 초 개학을 했지만 온 거리에 쓰레기 악취가 진동하자 대다수 부모들이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있어 나폴리 학교들의 교실은 텅텅 빈 상태다. 캄파니아주에 속한 다른 지역 학교들은 아예 개학을 늦추고 있다.

    너무나 딴판인 伊·獨의 쓰레기 재활용

    나폴리 쓰레기 독일에선 노다지


    쓰레기를 제대로만 활용하면 돈이 된다는 사실을 왜 나폴리는 알지 못할까? 나폴리 쓰레기의 일부는 현재 7년째 독일행 기차에 실리고 있다. 독일로 수출되는 물량은 캄파니아주 일일 쓰레기량의 60%인 4000t이나 된다. 나폴리시가 t당 약 200유로를 지불하며 독일에 쓰레기 처리를 의뢰한 데 따른 것이다. 그런데 독일은 그 쓰레기로 전력을 생산해 이탈리아로 재수출한다. 이중의 수입을 올리는 셈이다.

    이렇게 쓰레기는 새로운 비즈니스로 떠오르고 있다. 스위스도 나폴리 쓰레기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스위스 소각업체들이 나폴리 쓰레기를 수입해 각자가 보유한 소각로로 처리하는 방안을 나폴리 시당국과 협의 중이다. 이 협상에 스위스 정부 당국자들도 적극 나서는 모양새다. 독일도 “보내주기만 하면 얼마든지 더 처리하겠다”며 나폴리의 쓰레기 수출량 증대를 바라고 있다.

    타 지방의 쓰레기 반입을 반대하는 이탈리아 내부에서도 자체 쓰레기 처리능력을 비교해보면 남북 간 격차가 크다. 북부 브레샤 시에는 유럽 최대 규모의 소각로가 있고, 자체 소각로를 운영하는 베네치아에서도 시민들의 항의가 전혀 없다. 브레샤 시민들은 쓰레기 소각로 덕분에 전국에서 가장 싼 오물세를 낸다.

    2007년 나폴리의 분리수거율은 13%로 42%인 브레샤와 대조를 보인다. 이렇듯 분리수거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나폴리 시민들은 “불법으로 쓰레기를 태우면 소각로의 수십 배에 이르는 다이옥신이 발생한다”는 보건부 경고에도 아랑곳 않고 소각로가 건강을 위협한다며 무조건 반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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