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21

2008.01.29

끊임없는 구설 제조기 결국 막판에 대형사고

  • 신석호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kyle@donga.com

    입력2008-01-23 11: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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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끊임없는 구설 제조기 결국 막판에 대형사고
    김만복(62·사진) 국가정보원장이 지난해 대선 전날 극비리에 평양을 방문한 ‘국가기밀’이 알려진 것은 새해 벽두인 1월3일 오후 한 방송사 6시 뉴스의 단신을 통해서다. 김 원장은 2006년 11월23일 취임한 이후 이런저런 처신 문제로 여러 차례 구설에 올랐지만 대선 이후 일절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다시 여론의 도마에 오른 그가 방북 당시 김양건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과 나눈 대화록 유출사건으로 사표를 제출하고 검찰수사 대상이 되리라고는 당시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1월1일 신년사에서 “(국정원은) 늘 겸허한 자세로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진실된 정보보고로 국민의 사랑에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10년 만의 정권교체를 앞두고 마음을 비운 듯한 투였다. 하지만 그의 속내는 달랐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측근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관계자들에 따르면, 그는 대선 이후 여러 차례 이 당선인 및 측근들과의 접촉을 시도했다. 유출한 대화록을 통해 그가 “김 통전부장에게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당선 유력을 알리고, 이에 따른 대북 지원 감소를 우려한 북측의 걱정을 덜어주려 노력했다”는 내용을 당선인 측에 알리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선 전날 방북에 대한 국민적 의혹이 제기되자, 그는 문제의 대화록을 포함해 그 경위를 담은 보고서를 작성한 뒤 1월8일 인수위에 보고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이 보고서를 한 일간지 간부와 전직 국정원 간부 등 14명에게 돌렸다. 비밀 엄수가 생명인 국가정보기관의 장(長)이 사실상 대통령에게 보고한 문건을 개인적인 채널을 통해 유포한 것이다.

    역대 정보기관장의 수난사에 이름을 올린 그를 놓고 “능력에 비해 너무 큰 자리에 앉았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많다. 그는 1974년 당시 중앙정보부에 경력 직원으로 들어간 뒤 공채 동기들에게 밀려 이렇다 할 요직을 경험하지 못했다. 99년 한직인 세종연구소로 파견됐고, 당시 이종석 연구위원과 대북정보를 교환하면서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것이 인연이 돼 이 위원이 2003년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실세로 떠오르면서 그도 ‘벼락출세’를 하게 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김 원장이 부적절한 처신으로 파문을 일으키자, 김승규 전 원장의 혜안이 다시금 회자되고 있다. 김 전 원장은 자리를 떠나면서 “김만복은 절대 국가정보기관의 수장이 돼서는 안 된다”며 수차례 반대의사를 밝혔다. 그는 최근 사석에서 본사 기자에게 “내가 왜 후배를 폄훼하겠느냐. 그러나 김만복은 기획조정실장 때부터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 국정원장을 지낸 사람이 총선에 출마하면 국정원의 권위가 뭐가 되겠느냐”며 당시 반대했던 이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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