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19

2008.01.15

‘7% 경제성장률’ 아니면 말고 공약?

대다수 전문가들 회의적 시각 … 새해 5% 미만 성장 전망 속 ‘기업 투자’ 변수로 꼽아

  • 고승철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cheer@donga.com

    입력2008-01-09 12: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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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경제성장률’ 아니면 말고 공약?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국내 조선업계는 주문량을 소화하느라 야간작업에 한창이다.

    경제성장률 7%와 4.7%. 차이는 2.3%포인트다. 아마추어의 눈에는 엇비슷해 보이겠지만 프로 시각에선 엄청난 차이다. 일터를 찾아 헤매는 ‘백수’ ‘백조’ 수십만명을 구제할 만한 수치다.

    지난해 12월27일 오전 8시 서울 조선호텔 오키드룸.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주최한 ‘새해 경제 전망과 기업의 대응방안’ 조찬간담회에 현정택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이 연사로 나왔다. 유난히 피부가 하얀 그의 얼굴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더욱 빛났다. 그러나 표정은 밝지 못했다. 경제 전망이 좋지 않기 때문인 듯했다.

    현 원장은 “새해 상반기의 국내외 경제여건이 그리 좋지 않다”며 성장률과 관련해서는 “한국은행,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삼성경제연구소 등 주요 기관의 성장률 전망치가 4.6~5.2%로 유례없이 큰 차이를 보인다”고 말했다.

    옛 경제기획원에서 잔뼈가 굵은 경제관료 출신인 현 원장은 거시경제에 대한 안목이 넓은 인물로 손꼽힌다. 그가 진정한 프로라면 성장률 7%가 무리임을 모를 리 없다.

    7%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목표치다. 좋게 말하자면 의욕에 불타는 수치이고, 꼬집자면 달성 난망한 목표다.



    4.7%는 한국은행이 내놓은 2008년 전망 수치다. 한국은행의 전망치는 대체로 들어맞는다. 한국은행은 성장률 통계를 작성하는 전담기관인 데다 수십 년 동안 노하우를 쌓아 이 분야에선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다.

    그렇다면 7%는 희망사항에 그치는 것이 아닐까. 공약이니만큼 다분히 부풀려진 게 아닌가.

    ‘7% 경제성장률’ 아니면 말고 공약?
    “연 7% 성장은 개발도상국에서나 가능”

    김대중 정부에서 초대 중앙인사위원장을 지낸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도 12월27일 희망제작소가 주최한 심포지엄에서 “연 7% 성장은 개발도상국에서나 가능한데, 국민소득 2만 달러가 넘는 한국이 이룰 수 있는 목표인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행정학 전문가로 정부조직에 관심 있는 김 명예교수는 “고도성장을 달성한다는 것은 정부 주도로 추진하겠다는 뜻인데, 이러면 작은 정부를 이루겠다는 공약과 모순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물론 ‘이명박 정부’는 정부 주도로 고도성장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적은 없다. 민간이 자발적으로 투자를 활성화하는 분위기를 만든다는 쪽이다.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 중 가장 논란이 되는 ‘한반도 대운하’ 사업에서 경부 운하는 민자 유치로 건설한다고 밝혔다. 호남 운하는 정부 예산으로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재계 관계자는 “집권 첫해에 7% 성장 목표를 이루지 못하면 국민들이 크게 실망할 것”이라며 “경제 살리기를 열망하는 국민들은 배신감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여러 악재를 고려하면 7% 성장률 달성은 거의 불가능하다”며 “정부가 성장률을 높인답시고 기업들에 투자를 강요할까 걱정스럽다”고 털어놨다.

    ‘모든 선택엔 대가가 있다’는 게 경제원리의 하나다. 그러니 무분별하게 투자해서 부실로 이어지면 해당 기업뿐 아니라 국민경제에도 주름살이 생기게 마련이다. 외환위기 당시 방만한 경영으로 도산한 대기업 때문에 수십조원의 공적 자금이 투입된 뼈아픈 전례가 있지 않은가.

    연평균 7%씩 10년간 성장하면 평균소득은 2배로 늘어난다. 예금 이자율이 7%라면 10년 동안 은행에 맡길 경우 복리로 따져 원리금이 갑절로 늘어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삼성경제연구소는 2007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을 2만6달러로 추정했다. ‘마(魔)의 2만 달러 선’을 마침내 넘었다. 2007년 성장률은 4.8%였다.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는 1995년(1만823달러) 처음 열렸다. 그러다 외환위기 때문에 98년, 99년엔 1만 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그 후 구조조정 과정을 겪으면서 외환위기를 이기고 12년 만에 국민소득이 갑절로 늘어난 것이다.

    선진국들은 1만 달러 시대에 진입한 이후 평균 9.2년이 지나 2만 달러를 달성했다. 한국의 성장속도가 1만 달러 이후엔 선진국 평균보다 늦은 셈이다. 싱가포르는 1989년 1만 달러 시대에 들어선 지 5년 만인 94년에 2만 달러 시대에 진입했다.

    외환위기 직후의 한국 분위기를 회상하면 이런 성과도 대단하다. 당시 정부의 외환보유액이 바닥나 국제통화기금에 긴급 구제금융을 신청할 때만 해도 “이러다 나라 망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정도였다. ‘국가 부도’의 위기감이 엄습한 것이다.

    이명박 당선인은 후보 시절 유세 때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경제를 반드시 살리겠다”고 외쳤다. 이 당선인이 내놓은 ‘대한민국 7·4·7 프로젝트’는 △성장률 연 7% △10년 내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위의 경제강국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의 이론적 틀은 곽승준 고려대 교수(경제학)가 마련했다. 후보 캠프에서 정책기획팀장을 맡아 경제정책 개발에 관여한 곽 교수는 ‘한국경제 7% 성장의 필요성과 전제조건’이라는 논문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대다수 국내외 전문가들은 2008년의 7% 성장률 달성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본다. 한국경제는 글로벌 경제체제와 맞물려 돌아가므로 세계적으로 경기 둔화가 예상되는 새해에 한국만 ‘독불장군’식으로 앞서나가기가 어렵다는 분석이다.

    LG경제연구원 4.9%, 모건스탠리 4.8% 성장 추정

    LG경제연구원은 성장률 전망치를 4.9%로 산출했다.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으로 본 것이다. 국제적인 투자은행도 비슷한 시각이다. 리만브라더스는 4.6%, 모건스탠리는 4.8%, JP모건은 4.9%로 각각 전망했다.

    동아일보 경제부가 국내 경제전문가 100명을 대상으로 새해 경제성장률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4.5% 이상~5.0% 미만’이 45명으로 가장 많았고 ‘5.0% 이상’(28명), ‘4.0% 이상~4.5% 미만’(22명), ‘3.5% 이상~4.0% 미만’(5명) 순으로 나타났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100명 중 대기업 대표와 임원이 30명, 금융계 대표와 임원이 30명, 벤처기업 대표가 5명으로 과반수를 차지했다. 이는 그만큼 경제 현장의 체감 예견력이 반영됐음을 뜻한다.

    장하원 하나금융연구소장은 “본격적인 중성장(中成長) 시대의 막이 올랐다”며 “이를 기회로 삼으려면 △사람 중심 투자 △금융 패러다임의 변화 △제조업의 고도화라는 트로이카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물론 ‘경제는 심리’라는 말이 있듯, 기업친화적인 정부의 출범으로 기업들의 투자 마인드가 살아난다면 분위기가 크게 호전될 수 있다.

    12월28일 이 당선인과 재계 총수들이 만난 자리에서 조석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시장경제 원칙과 법치주의가 지켜지는 사회가 만들어지고 정부가 각종 규제를 과감하게 줄이면 기업인들은 마음 놓고 투자할 것”이라 전제하고, “노사가 합심해 생산성을 높이고 좋은 물건을 만들면 7% 내외의 성장을 달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수십 년간 대기업을 경영한 조 회장의 경험을 중시한다면 이 발언이 당선인에 대한 덕담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의 좌파 정권 10년간 대기업이 위축된 것은 사실이다. 성장보다 분배를 우선시하는 좌파 정권 앞에 기업들은 성장 엔진을 과감히 돌리지 못했다.

    대기업 그룹들은 이 당선인과의 간담회를 계기로 새해 투자계획을 재점검하고 있다.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은 “새해에 충남 당진군 일관제철소 건설에 5조2000억원, 현대·기아차 연구개발(R·D)에 3조5000억원 등 모두 11조원을 투자하겠다”고 기자들에게 밝혔다. 현대·기아차 그룹의 2007년 투자액 7조원에 비해 거의 60%나 늘어난 규모다.

    삼성그룹은 새해 투자규모를 공식 발표하지 않았다. 하지만 2007년의 투자실적 22조6000억원보다 늘어날 것으로 재계에선 전망한다. 삼성의 투자계획과 관련해서는 ‘삼성 특검’이라는 변수가 가로막고 있다. 이 장벽을 무난히 넘는다면 투자에 박차가 가해질 것이다.

    이렇듯 대기업 그룹을 비롯한 기업 부문에서 투자 훈풍이 분다면 새해 성장률이 예상보다 높게 나타날 수 있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돈 흐름이 원활하고 유가와 기타 원자재 값이 안정된다면 한국경제는 탄력을 받아 도약할 수 있다.

    새 정부 경제정책의 전체 그림을 그리는 임무를 맡은 사공일 국가경쟁력강화특위 위원장은 12월30일 기자간담회에서 “법질서를 제대로 지키기만 해도 성장률을 1%포인트 높일 수 있다”며 “투자를 늘리고 국가 효율성을 높이면 경기순환에 따라 어떤 해는 7%를 밑돌게 되고, 어떤 해는 초과 달성할 수도 있지만 평균적으로 7%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틀림없이 달성한다고 하지 않고 유연성을 내비친 셈이다.

    2008년 한 해만이 아니라 이후 지속적으로 7% 성장을 이룰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 당선인은 1월2일 경제연구소 대표들과의 간담회에서 “정부가 재정 지출을 늘려 무리하게 7%를 만들겠다는 어리석은 정책은 쓰지 않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이명박 정부는 ‘7·4·7 프로젝트’가 과장된 것이 아닌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MB노믹스’의 브레인 곽승준 교수 논문 살펴보니…

    노동과 자본 조화에 역점 둔 ‘내생적 성장이론’ 근거


    ‘7% 경제성장률’ 아니면 말고 공약?
    ‘MB노믹스’의 브레인 곽승준 교수가 동료인 강성진 고려대 교수(경제학)와 작성한 ‘한국경제 7% 성장의 필요성과 전제조건’이라는 논문은 이색적인 이론을 담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들이 주장한 7% 성장론은 ‘내생적 성장이론’에 뿌리를 둔다. 1986년 로머가 처음 제기한 이 이론은 기존의 신고전학파 성장이론을 부정한다.

    기존 이론에 따르면 성장률은 노동과 자본의 투입량으로 결정된다. 성숙기에 이르면 노동과 자본을 더 투입해도 성장속도가 과거만 못해진다. 한국은 성숙단계에 접어들어 고도성장에 한계가 있는 셈이다.

    내생적 성장이론은 노동과 자본의 ‘조화’에 역점을 둔다. 조화를 잘 이루면 성숙기 경제도 고도성장할 수 있다고 한다. 조화를 촉진하는 요소는 기술 개발, 규제 완화, 외국인 투자 등이다. 이는 아일랜드의 성공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미국 같은 선진국도 2000년대 초반에 정보기술(IT) 발달에 힘입어 4~5%의 고속성장을 이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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