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17

2008.01.01

새와 함께한 내 인생 ‘책으로’

  •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입력2007-12-26 1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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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와 함께한 내 인생 ‘책으로’
    “전생에 머슴 아니면 새였을 것 같아요. 아무 데서나 잘 자고, 잘 먹고, 부지런하니까요.”(웃음)

    ‘새(鳥)박사’ 윤무부(66) 경희대 명예교수는 매일 새벽 3시30분에 일어난다. 새를 연구하기 위해 새의 생활주기에 맞춰 살아온 것이 수십 년째. 강의가 있는 날을 제외하곤 어김없이 새를 찾아 산으로 들로 나가는 생활을 해왔다.

    그는 얼마 전 그동안 조류 연구자로 살아온 삶을 정리한 책 ‘날아라, 어제보다 조금 더 멀리’를 펴냈다. 전문서적이나 어린이 책이 아닌 에세이집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겨울, 강연을 하다가 뇌경색으로 쓰러져 두 달간 입원했어요. 아버지가 같은 증상으로 9일 만에 돌아가셔서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죠.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그때 했습니다.”

    오른손이 마비돼 왼손으로 글을 쓰거나, 아내의 대필 도움을 받아 책을 완성했다. 책에는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 새를 쫓아다니기를 좋아했던” 바닷가 소년이 “영문 타자를 배웠으면 하던 형의 바람을 저버리고” 생물학과에 진학해 “하루 천 마리 새 발에 가락지를 끼우고” “조용한 새소리를 녹음하기 위해 공동묘지를 드나드는” 등 새에 미쳐 살아온 60여 년 삶이 녹아 있다.



    “새 연구를 위한 장비나 교통비를 마련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간첩으로 오해받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강화도에 가려면 검문소 다섯 개를 거쳐야 하는데 가방을 뒤지면 망원경, 카메라, 녹음기 이런 게 나오니까 매번 걸리죠. 한 번은 기무사에서 저희 집을 조사한 적도 있어요. 동네 주민이 신고했다는데, 그곳 직원들 말에 따르면 간첩 중 저처럼 키 작고 새카만 사람이 많다는군요.(웃음)”

    이제는 검문소에 가면 되레 사인 요청을 받을 정도로 유명인사가 됐다. 아들 종민(33) 씨도 미국 콜로라도 주립대에서 조류생태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그가 소장하고 있는 조류 관련 자료는 방대하다. 조류 사진만 60만 장, 동영상과 녹음자료도 수천 개가 넘는다. 그는 앞으로 이 자료들을 데이터화해 “세계 최초의 조류 영상 사이버 박물관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어떤 새가 가장 좋으냐는 물음을 자주 들어요. 저는 모든 새가 다 좋습니다. 새 중에는 나쁜 새가 없어요. 사람들이 싫어하는 까마귀도 나쁜 새가 아니에요. 알고 나면 이해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죠. 저는 지금도 새에게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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