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17

2008.01.01

숨소리도 통치 행위 대통령이 사는 법

연봉 2억3000만원, 눈 뜬 모든 시간 ‘빡센 업무’ … 엄청난 결정의 무게, 극도의 고독

  •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입력2007-12-26 13: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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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소리도 통치 행위 대통령이 사는 법
    대통령의 연봉은 얼마일까? 업무량은 어느 정도이며 야근이나 주말근무를 하면 추가근무수당을 챙길까? 휴가 일수는? 복지 혜택은?

    대통령도 ‘선출직 공무원’군에 속하는 ‘직업’이다. 모든 직업이 그렇듯 그 일 역시 나름의 보람과 고충이 있을 터. ‘대한민국 넘버1’이라는 대통령직은 어떨까?

    직장인으로서 가장 큰 관심사는 뭐니뭐니 해도 연봉이다. 중앙인사위원회가 밝힌 대통령의 2007년 기본 연봉은 1억6358만원, 직급보조비와 정액급식비를 포함한 실제 연봉은 2억3054만2000원이다(물론 이는 업무추진비와 특수활동비를 뺀 대통령 개인이 받는 액수다. 참고로 대통령비서실의 2007년 업무추진비 예산은 41억132만원이었다). 우리 돈으로 약 4억4600만원을 받는 미국 부시 대통령의 절반, 약 7300만원을 받는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3배 수준이다.

    대통령의 경우 추가근무수당이나 성과급은 해당되지 않으며(공무원 규정상 시간외수당은 5급 이하 공무원에게만 지급한다) 연봉을 12등분 해 매달 10일 통장에 입금된다. 연봉 상승률은 고위직 공무원 상승률과 동일하며, 2007년의 경우 전년 대비 1.16% 올랐다. 연봉만으로는 대한민국 공무원 중 가장 많은 액수지만, 헤드헌터들에 따르면 대통령 연봉은 ‘1000명 이상 고용인을 거느린 중견기업 임원’이나 ‘성과급을 포함한 대기업 부장급’ 수준이다.

    그러나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한낱 연봉으로만 판단할 수는 없다.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하고 행정권의 수반이 되는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은 형사상 소추(訴追)를 받지 않는 특권, 외교에 관한 권한, 조약의 체결·비준에 관한 권한, 선전포고 및 강화에 관한 권한, 공무원임면권, 국군통수권, 영전(榮典)수여권, 법률안거부권, 명령제정권, 사면·감형·복권에 관한 권한 등 광범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이종수 연세대 교수(행정학)는 대통령직에 대해 “현대국가에서 가장 큰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정부의 최고책임자”라고 표현했다. 그에 따르면 대통령직은 “정무직과 정부산하기관장, 군장성급, 경찰 경무관 이상, 각국 대사와 별정직 청와대 주요 직위 등 고위 공직자 3500명의 인사를 직접 결정하거나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자리”다.

    고위 공직자 인사 직간접 결정 … “최고 직업이자 최악의 직업”

    막강한 영향력과 권한을 가진 만큼 대통령의 책임과 업무 강도가 만만치 않은 것은 물론이다. 문민정부 시절부터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까지 청와대 출입기자를 지낸 경험을 바탕으로 ‘도대체 청와대에선 무슨 일이?’라는 책을 낸 송국건(영남일보 기자) 씨는 대통령을 “최고 직업이자 최악의 직업”이라고 평했다.

    “국정 전반을 조정할 수 있다는 점은 엄청난 의무이자 보람도 크겠지만 취임하는 순간부터 모든 개인생활이 없어지고, 퇴임 후까지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에서 굉장히 힘든 자리다.”

    공무원의 업무시간은 오전 9시에 시작해 오후 6시에 끝나는 게 보통이지만 대통령의 업무시간과 관련된 별도 규정은 없다.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 새벽 5시에 일어나 본인이 개발한 기체조를 1시간 정도 하고 관저에서 아침식사를 하는데, 보통은 이 아침식사부터가 하루 업무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은 이때 비서관들의 브리핑을 받거나 주요 인사를 앞두고 후보자 면접을 하며, 때로 조찬 회동을 열기도 한다. 조찬 회동이 없을 때는 8시 반경 본관 집무실로 가 업무를 시작한다. 이어 각 비서실장에게서 보고를 받고 10시쯤 국무회의와 수석·보좌관 회의, 정무관계 회의 등 매일 1~2건의 회의를 주재한다. 회의는 보통 1~2시간 이어지며, 때에 따라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열리기도 한다.

    숨소리도 통치 행위 대통령이 사는 법

    대통령은 매일 1~2건의 회의를 주재한다(왼쪽). 서울 내 근거리를 이동할 때는 전용 세단을 탄다.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 BMW와 벤츠를 주로 이용했다.

    외부 공식행사는 일주일 평균 1~2건, 해외 순방의 경우 2~3개월에 한 번씩 간다. 대통령은 서울 내 가까운 거리를 이동할 때 전용 방탄세단을 이용하지만 강원도와 충청도까지는 보통 청와대에서 바로 뜨는 전용 헬기를 이용하고(날씨나 지역 사정에 따라 전용열차 ‘경복호’를 타기도 한다), 그보다 먼 지역에 갈 때는 ‘공군 1호기’를 탄다. 해외 순방의 경우 노 대통령은 11일 중 하루는 외국에 나가 있었던 셈이 된다. 임기 동안 50여 개국을 방문했으며, 이동거리는 지구 세 바퀴에 이른다.

    대통령 업무는 ‘깨어 있는 시간이 모두 근무시간’이라고 할 만큼 공사(公私) 구분이 없다. 대통령은 식사 때마다 장관과 청와대 핵심참모 또는 외부인사와 만남을 갖는데, 만찬의 경우 ‘2시간을 넘기기 일쑤’다. 만찬 후 관저에 돌아가지만 그 뒤에도 업무는 계속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전자결재 시스템에 시간 기록이 남는 탓에 밤 12시나 새벽 1~2시경 대통령이 다녀간 흔적도 종종 볼 수 있다”며 “관저에 있는 컴퓨터를 통해 보고서와 결재서류를 읽는 것 같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도 전자정보 시스템을 통해 보고서와 서류를 살피는데, 대통령마다 차이가 있지만 “하루 100쪽 이상, 많게는 300쪽 분량의 정보보고서와 언론동향 보고서, 결재서류 등을 읽는 것”으로 알려졌다.(송국건)

    ‘참여정부, 절반의 비망록’의 저자 이진 씨는 대통령직을 “세상에서 가장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이라고 말한다. 참여정부 출범 후 2년간 대통령비서실에서 행정관으로 일한 그는 “취임 초 6개월은 보통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살인적인 스케줄의 연속”이었다며 “젊은 수행원들도 피로를 이겨내지 못하고 링거를 꽂는 경우가 많았지만 신기하게도 대통령만은 에너지가 넘쳤다”고 회고했다. 노 대통령뿐 아니라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는 능력은 대통령의 특징인 듯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당시 80을 바라보는 고령이 무색할 만큼 왕성한 활동을 보여 기자들 사이에서 “프레지던트 엔도르핀 때문”이란 농담이 돌았다.

    “결국 에너지의 원천은 긴장감인 것 같다. 자신이 해야 할 결정의 무게가 엄청난 만큼 초인적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대통령으로 당선되기까지 험난한 과정을 겪으며 단련됐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이진)

    가장 스트레스 많은 일 … 사생활 보호 절대 필요

    대통령을 가까이서 지켜본 이들은 대통령이 겪는 스트레스로 과중한 업무와 ‘극도의 고독감’을 꼽는다. 국민의 정부 시절 청와대 참모를 지냈으며 현재 대통령리더십연구소 소장으로 있는 최진 교수(경희대 행정대학원)는 “대통령이 된 뒤부터는 사적 관계가 소멸되고 모든 관계가 공적으로 변한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진정한 인간관계를 맺기는 어려운 풍요 속 빈곤 상태가 된다”고 말했다.

    “의전이나 경호상 청와대 밖에 나가는 것도 쉽지 않다. 특정인과 가까이 지내는 것 또한 언론에서 의미 부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대통령) 스스로 오해를 부를 만한 행동은 삼가는 것 같다.”(최진)

    한때 ‘궁정동 안가’라는 대통령 전용 유흥시설(?)은 이렇듯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대통령을 위한 ‘방편’이었다. 그러나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이를 헐어버린 이후 대통령의 ‘밤 생활’이 사라졌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어떻게 스트레스를 풀까? 대통령들은 아침 조깅(김영삼)을 하거나 분재와 독서(김대중), 숙면(노무현) 등을 통해 스트레스 조절에 도움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때로 한 달 가까운 휴가를 해외에서 즐기는 다른 나라 대통령에 비해, 휴가 일수나 장소 선정에서 한국의 대통령은 제약이 많은 편이다. 정해진 휴가 일수는 없지만 보통 여름휴가로 일주일을 떠나는데 이 역시 일정을 앞당겨 돌아오거나 취소되는 게 비일비재다. 노 대통령의 경우 2007년 여름휴가를 아프간 피랍사태 때문에 취소해야 했다. 휴가지는 대통령 별장인 청남대가 대부분이었지만, 노 대통령은 청남대를 반납하고 군 휴양시설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호 문제로 자주 허락되진 않지만 간혹 있는 비공식 외출은 대통령들이 고대하는 시간이라고 한다. 최진 교수는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임기 중 단골 음식점이나 술집에 찾아가는 것, 김대중 전 대통령은 영부인과 함께 한강변 주변을 드라이브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휴양차 떠난 제주도 호텔 주변에서 경호원들이 밤새워 경호하는 모습을 본 뒤에는 되도록 청와대 바깥 외출을 삼갔다고 전해진다. 노 대통령의 경우 손녀와의 만남이 유일한 낙이었지만, 자녀들이 유학 가는 바람에 요즘은 전화통화로 대신하고 있다. 노 대통령을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한 윤태영 비서관은 경향신문에 기고한 ‘청와대 일기’를 통해 ‘할아버지’로서의 대통령에 대해 “손녀 재롱에는 아무리 급해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는 인정 많은 할아버지”이지만 “언젠가 퇴청하는 할아버지를 기다리며 손녀가 문 앞까지 나와 있자, 아는 체하면 다음 일정이 늦어질까봐 가만히 차 문을 열고 내린 뒤 현관으로 숨어버린 비정한(?) 할아버지의 모습도 있었다”고 전했다.

    이종수 교수는 “미국 대통령의 경우 이라크 전쟁 시기나 대도시에 정전사고가 나도 휴가를 즐기는 반면, 우리나라 대통령은 사생활에 대한 제약이 지나치게 많다”고 평했다. 그는 또 “영국은 총리가 일주일에 한 번은 반드시 사저를 방문하도록 한다. ‘일주일에 한 번 청소부 아저씨도 만나고 크리켓 구경도 해야지, 이 나라를 어떻게 꾸릴지 전략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는 관계자의 말은 우리에게도 의미 있다”고 덧붙였다.

    전직 대통령 예우는

    월 연금 1300만~1500만원 … 비서관 고용·경호 등 글로벌 수준의 혜택


    숨소리도 통치 행위 대통령이 사는 법

    노무현 대통령(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2006년 10월10일 청와대에서 전두환 김대중 김영삼 등 전직 대통령들(왼쪽부터)과 북한 핵실험 사태에 대한 대응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현직 대통령의 ‘빡센(!)’ 업무 강도에 비해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삶은 여유로운 편이다. 특히 전직 대통령에 대한 복지 혜택은 ‘글로벌 스탠더드’에도 뒤지지 않는다.

    민주노동당의 자료에 따르면, 전직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재직 시 월급의 95%를 연금으로 받는다(1969년 제정된 이 법률은 처음에 70%였다가 81년 개정 때 95%로 상향 조정됐다). 이로써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월 1300만~1400만원의 연금을 받고 있으며,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후 1500여 만원을 받게 된다. 재직 시 월급의 42% 정도를 받는 미국이나 퇴임 총리에게 특수 연금을 지급하지 않는 일본에 비하면 큰 혜택이다.

    이 밖에 전직 대통령은 소득세가 면제되며 일반 직장가입자의 5분의 1 수준에 불과한 건강보험료 수급액 0.8%만을 납부하고, 교통통신 및 사무실 제공, 비서관 3인 고용, 경호 경비, 기념사업 지원, 국공립병원 및 민간의료기관 비용 등의 혜택을 누린다. 민노당 권영길 후보 측은 “이러한 전직 대통령 특권을 없애야 서민의 빈 지갑을 채울 수 있다”며 ‘전직특권 폐지’를 제안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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