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15

2007.12.18

평범해서 별난 墺 영부인 한국도 배웠으면 좋겠네!

마그리트 여사 검소하고 솔직, 서민생활 유지 … 오스트리아 국민의 존경과 사랑 한 몸에

  • 빈=임수영 통신원 hofgartel@hanmail.net

    입력2007-12-12 13: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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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범해서 별난 墺 영부인 한국도 배웠으면 좋겠네!

    하인츠 피셔(오른쪽) 대통령과 그의 부인 마그리트 여사는 공식석상에서도 손을 꼭 잡고 다닌다.

    각국 영부인들이 대거 화제에 오른 적이 예전에도 있었을까? ‘현직 대통령의 이혼’이라는 프랑스 역사상 최초의 기록을 남긴 사르코지 대통령의 전부인 세실리아 여사를 비롯해, 이달 남편의 뒤를 이어 대통령으로 공식 취임하는 아르헨티나의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차기 대권후보로 유력시되는 미국의 힐러리 클린턴 등이 연일 세간에 회자되는 요즘이다.

    대통령 당선된 뒤에도 지하철 타고 장 보기

    한국도 대선이 코앞에 놓이면서 ‘영부인 후보’들의 대외 노출이 빈번해지고 있다. 공식적으로 공무원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누구 못지않게 책임감 있는 공직을 수행해야 하는 영부인은 일거수일투족이 언론에 노출되는 조심스러운 자리다. 한편으론 때때로 터무니없는 인신공격에 시달리기도 하는 불편한 자리다.

    그런데 하루하루가 지뢰밭 같은 살벌한 정치판에서 오스트리아 하인츠 피셔 대통령의 부인 마그리트 피셔(64) 여사는 여느 영부인들과는 다른 자연스러움으로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어 주목된다.

    유대인인 마그리트 여사의 부모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정치적 박해를 피해 스웨덴으로 망명했다. 스톡홀름에서 태어난 마그리트 여사는 여섯 살에 오스트리아 빈으로 돌아올 때까지 그곳에서 성장했다. 이때 스웨덴어를 익힌 그는 최근 스웨덴 국왕 내외가 오스트리아를 예방했을 때 유창한 스웨덴어로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대학에서 섬유예술을 전공했으며, 빈국립대학에서 잠시 문화사를 공부했을 정도로 예술에도 조예가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그리트 여사는 섬유 디자이너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직조공 전문가 자격증도 땄지만, 결혼과 동시에 전업주부의 길로 들어섰다. 예전에 그는 “여성의 전업주부 선택은 과연 옳은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이에 그는 “다른 여성의 결정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없지만 내 경우에는 옳은 선택이었다. 아이들은 나를 필요로 했다”며 전업주부 옹호론을 펼치는 당당함을 보였다.

    현재 피셔 대통령 부부에게는 의사 딸과 기업 컨설턴트로 장성한 아들이 있다. 하지만 이들 부부는 자녀들의 사생활이 언론에 공개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마그리트 여사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2004년 당시 국회의장이던 남편 하인츠 피셔가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이전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마그리트 여사는 시종일관 온화한 미소를 지을 뿐 “우리 남편을 대통령으로 뽑아주세요”라는 민망한 유세는 절대 하지 않았다.

    평소 검소하기로 소문난 피셔 부부는 대통령에 당선된다 해도 관저에 들어가지 않고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계속 지내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그러자 이들 부부의 아파트가 초호화판이라는 흑색선전이 난무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평소 사생활을 중시하던 마그리트 여사는 아파트를 언론에 공개하는 중대 결정을 내렸다. 언론 카메라가 훑은 피셔 부부의 보금자리는 그저 평범한 아파트일 뿐이었다. 책과 그림이 유독 많다는 것이 다르다면 다른 점. 결국 하인츠 피셔는 대통령에 당선됐다.

    80% 넘는 지지율 피셔 대통령 인기 상한가

    평범해서 별난 墺 영부인 한국도 배웠으면 좋겠네!
    그러나 이는 시작일 뿐이었다. 마그리트 여사는 남편이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도 지하철을 타고 시장 보러 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또 일주일에 두 번 가사도우미가 와서 도와주긴 하지만, 대부분의 집안일을 직접 한다는 ‘충격적인’ 발언까지 했다. 더구나 대통령 남편의 이발을 매번 해준다는 사실까지 언론에 공개되자 오스트리아 국민은 이 별난 영부인에게 열광하기 시작했다. 마그리트 여사의 이야기가 인기를 얻으려는 선거용 멘트가 아닌, 일상생활에서 우러나온 솔직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피셔 대통령은 국회의장 시절에도 자택에서 국회까지 매일 20분 거리를 도보로 출퇴근했다고 한다. 물론 현재는 경호 문제 때문에 도보 출퇴근은 불가능하다고 전해진다. 현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자전거로 출퇴근한다고 하니 ‘유유상종’이란 말이 절로 나올 만하다.

    국민 대다수가 가톨릭 신자인 오스트리아에는 표를 얻기 위해 겉으로 독실한 척하며 뒤로는 온갖 죄를 저지르는 ‘검은 양’ 정치인들이 있다. 또 선거에서 후보가 누군지는 상관하지 않은 채 무조건 가톨릭 정당인 국민당을 찍는 ‘묻지마 노인층’도 존재한다.

    그러나 피셔 부부는 선거 당시 “우리는 신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불가지론자다”라고 솔직하게 밝혔다. 하지만 이들 부부의 삶은 확고한 신앙심을 가진 교인보다 더 모범적이다. 올 9월 오스트리아를 예방한 교황 베네딕토 16세도 피셔 대통령의 인간성에 깊은 감동을 받은 바 있다.

    피셔 대통령 부부는 오페라와 미술을 좋아하는 예술광이면서도 등산이 취미인 자연인이다. 공식석상에서도 손을 꼭 잡고 다니며, 서로를 바라보는 따뜻한 눈빛은 옆에서 지켜보는 이들마저 감동시키는 잔잔한 멋이 깃들어 있다.

    2004년 득표율 52%로 당선된 피셔 대통령은 현재 80%가 넘는 절대적인 지지도를 유지하고 있다. 모든 여론조사에서 피셔 대통령은 오스트리아 최고 인기 정치인의 자리를 요지부동 지키고 있다. 오스트리아 국민은 이러한 현직 대통령의 상종가에 마그리트 여사가 큰 몫을 했다는 데 의견 일치를 보인다. 대통령 부부에게 깊은 애정을 느끼는 오스트리아 국민이 부럽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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