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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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터 퍼포먼스, 일상 허구 벗기기

  • 입력2007-11-14 15: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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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류한승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모니터 퍼포먼스, 일상 허구 벗기기

    이재이 작품 ‘음표’.

    날로 발전하는 첨단기술에 힘입어 국제미술계에서도 미디어 아트 혹은 디지털 아트가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다. 그런데 정보기술(IT) 강국인 한국에서는 아이러니하게 미디어 아트가 그다지 활발하지 못하다. 아마도 최근 한국 미술시장이 전례 없이 뜨겁고 그로 인해 서양화, 한국화, 사진 등 이른바 팔릴 수 있는 작업의 인기가 높기 때문인 듯싶다.

    이런 와중에 젊은 작가의 영상작업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회가 서울에서 열리고 있어 반갑다. 10월27일부터 종로구 갤러리 팩토리에서 시작한 이재이 씨의 개인전이다. 전시회 제목도 독특하다. ‘지상의 모든 애인들이 한꺼번에 전화할 때’다.

    이씨의 작업은 비디오 아트의 형태를 띠지만 인간의 행위적 측면을 강조하는 퍼포먼스 아트에서 출발한다. 그는 순간적이고 일회적인 행위를 기록하기 위해 비디오 아트를 선택했다.

    이씨는 비디오를 단지 부수적인 도구로만 사용한 것은 아니다. 비디오라는 매체가 가진 특성을 최대한 활용해 작가가 추구하는 주제를 더욱 돋보이게 한 것. 특히 저속, 고속, 반복재생 등 인위적인 시간의 통제를 시도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영상작업물은 모두 4점. 그중 총 8개 화면으로 구성된 ‘음표’라는 작품이 눈에 띈다.



    작품을 보면 하얀 바탕의 모니터 화면을 배경 삼아 5개의 고무줄이 수평으로 놓여 있다. 그리고 검은 옷을 입은 5명의 여성이 등장해 고무줄 앞에서 다리를 위아래로 움직인다. 한편으로는 고무줄놀이를 재현한 것 같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론 고무줄은 오선지가 되고 사람은 음표가 돼 마치 악보처럼 보이기도 한다. 작가는 이 영상을 8개의 화면에 돌림노래 형식으로 차례로 재생한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이 영상은 고무줄놀이도 아니며 악보도 아니다. 단지 교차되는 어떤 행위들일 뿐이다.

    우리나라 대중목욕탕의 벽면에 그려진 ‘백조’와 ‘북극곰’도 특이하다. 작가는 백조의 호수와 북극을 묘사한 벽화 앞에서 마치 한 마리의 백조 또는 북극곰처럼 행동한다. 한 번도 제대로 본 적 없는 이 조야하고 이국적인 풍경들이 왜 목욕탕 안에 버젓이 있는 것일까?

    이씨는 ‘가짜’인 것을 확연히 알 수 있는 사물들을 이용한다. 그는 가짜를 숨김없이 드러냄으로써 진짜 위조(real fake)를 꾸며내는 동시에 이미지 없는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즉 우리가 학습받아온 것들 또는 상투적으로 아는 통념들을 횡단해 그 허구를 벗겨내고 있는 것이다. 전시는 11월18일까지 열린다.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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