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11

2007.11.20

앞당겨진 초스피드 시대 … ‘코리안 타임’은 여전

  • 입력2007-11-14 14: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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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114 안내원이 실제로 겪은 일이다. “안녕하십니까. 어떤 번호를 알려드릴까요?” 고객이 말했다. “조금 더 빠르게요.” 안내원은 자기 말이 느려 고객이 불만인 줄 알고 좀더 빠르게 말했다. 그래도 고객은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조금 더 빠르게요.” 안내원은 화를 꾹 참고 더 빨리 말했다. 그랬더니 고객이 하는 말. “아니요. 가게 이름이 ‘조금 더 빠르게’라니까요!” 필경 이 가게는 음식점 아니면 배달전문업체였을 것이다.

    속도가 곧 경쟁력인 시대다. 도로를 종횡무진 질주하는 배송 오토바이들은 점점 숨가빠지는 일상을 대변한다. 모든 업무처리 속도도 가파르게 상승하고, “많이 바쁘시죠?”는 자연스러운 인사가 됐다. ‘조금 더 빠르게’라는 요구는 급기야 바둑세계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10~20분에 한 게임을 끝내는 이른바 ‘속기(速棋)’가 일반화되면서 2~3시간의 제한시간을 유지하며 장고(長考)를 요하는 국제 바둑계에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인간의 시간 감각은 미디어 발달과 함께 가속화돼왔다. 모든 기별을 편지로 주고받던 시절, 답장이 오기까지 일주일 이상 걸리는 것은 예사였다. 라디오 방송에 애인의 생일을 축하하는 음악신청을 하려면 최소 열흘 전 엽서를 띄워야 했다. 사진을 찍으면 현상돼 나오기까지 며칠이 걸렸다. 그런데 지금 e메일은 하루에도 수십 차례 교환되며 라디오 방송 음악신청도 인터넷을 통해 하루 이틀 전, 심지어 방송 진행 중에 해도 된다. 디지털카메라는 셔터를 누르자마자 그 결과를 보여준다.

    휴대전화는 ‘빨리빨리’ 증후군을 한결 재촉한다. 휴대전화가 없을 때는 누군가와 통화가 이뤄지는 데 며칠이나 걸리는 일이 흔했다. 그 사람이 사무실이나 집에 없으면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휴대전화가 보편화되면서 통화 연결이 안 된 지 한나절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왜 이렇게 통화하기 힘드냐?’는 질책을 받기 일쑤다.

    휴대전화 확산으로 시간 감각 큰 변화



    문자메시지는 e메일보다 훨씬 즉각적인 소통을 유발한다. 몇 초 안에 짧은 문장을 작성해 발신하며, 그에 대한 회신도 곧장 오기를 기대한다. 10분이 지나도 답문이 오지 않으면 ‘씹혔다’고 판단한다. 폰카로 사진을 찍어 곧바로 친구에게 보내거나 자기 블로그에도 올릴 수 있다. 문자메시지로 라디오 방송에 음악신청을 하고 몇 분 후 들을 수도 있다. 우리는 인스턴트 식품, 패스트푸드뿐 아니라 인스턴트 메시지, 패스트 컴(커뮤니케이션의 준말)에 익숙해져가고 있다.

    휴대전화가 보편화되면서 약속 문화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예나 지금이나 ‘코리안 타임’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기다리는 답답함은 많이 줄었다. 늦는 사람이 그 사유와 도착 예정시간을 즉시 알려주거나, 기다리는 쪽에서 먼저 전화를 걸어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그대 오기를 기다려봐도 웬일인지 오지를 않네. 내 속을 태우는구려’. 1960년대 노래 ‘커피 한 잔’이 그리는 풍경은 이제 흘러간 추억이 됐다.

    그리하여 시계가 고장났다거나 하는 군색한 핑계도 통하지 않게 됐다. 휴대전화에 내장된 시계는 기지국과 100만분의 1초가 달라도 불통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은 거의 정확한 시계를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1초의 오차도 없이 약속시간을 준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언제든 통화가 가능하기에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수시로 약속시간을 조정할 수 있다. 그렇듯 실시간 미세한 조정(real-time-micro coordination)을 하는 것을 가리켜 영어권에서는 ‘approximeeting’(‘근접한’이라는 뜻의 ‘approximate’와 ‘meeting’의 합성어)이라는 말이 등장하기도 했다.

    융통성이 발휘되는 대상은 시간만이 아니다. 휴대전화를 쓰게 되면서 사람들은 약속장소를 정확히 기억하거나 메모하지 않는 경향이 생겼다. 잘 찾지 못하면 전화해서 물어보면 되겠지 하는 마음인 것이다.

    그러한 유연성은 다른 면에서 불안정성을 내포한다. 예전에는 약속시간에 최대한 늦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제는 옛날만큼 초조해하지 않는다. 또 예전에는 약속을 취소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언제 어디서든 통화가 가능하기에 심지어 약속시간 직전 취소하는 경우도 있다. 불확실성은 거대한 세상뿐 아니라 우리의 소소한 일상에서도 진실이 돼간다. 많은 것이 유동적이고 예측 불가능해졌다.

    커뮤니케이션 속도가 빨라지면서 그 내용의 밀도도 떨어졌다. 편지보다 e메일이, e메일보다 문자메시지가 더욱 인스턴트한 메시지를 담는다. 즉흥적으로 주고받는 소통에서 뜸 들여 빚어내는 언어의 자리는 비좁아졌다. 현란하게 깜빡이는 전자신호에 휘말리기 쉬운 두뇌의 고삐를 잡지 않으면, 우리는 짤막하고 얄팍한 생각들만 속절없이 쏟아내는 단세포 동물이 돼버릴지도 모른다. 모바일 디지털 시대는 인간의 마음에 중대한 도전이 되고 있다.

    앞당겨진 초스피드 시대 … ‘코리안 타임’은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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