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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잃을 것 없는 다윗의 돌팔매인가

김용철 변호사 복잡한 가정사 삼성에 빌미 제공 ‘떡값검사’ 명단 공개 조만간 결론날 듯

더 잃을 것 없는 다윗의 돌팔매인가

더 잃을 것 없는 다윗의 돌팔매인가
“나는 늙어서 아내 손잡고 산책하며 살려고 했다. 그런데 가정을 잃었다. 검사 때는 애들이 날 존경했지만, 이제는 안 한다. 그리고 그곳(삼성)을 거치면서 양심을 잃었다.”

삼성 비자금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49)는 끝내 눈물을 보였다. 11월5일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그는 “모든 것을 잃었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뒷골목에서 쓸쓸히 죽어갈 것을 감수한다”는 말에서는 비장함도 엿보였다.

가족을 잃었다는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2005년 8월 부인 양모 씨와 이혼한 그는 6개월 만인 지난해 2월 재결합했으나 올해 1월 다시 이혼하며 끝내 등을 돌렸다. 두 번째 이혼 직후인 2월에는 큰아들이 호적에서 사라졌다. 세칭 ‘호적을 파낸’ 것으로 호적상 그는 아들과도 남남이 됐다.

“가정 잃고 양심 잃고” 끝내 눈물 보여

‘더는 잃을 게 없는’ 김 변호사의 복잡한 가족관계는 삼성 측에 빌미를 제공했다. 삼성은 문제가 터진 10월29일 이후 시종일관 “김 변호사가 가정파탄의 책임을 삼성에 떠넘기고 있다”며 이번 사건을 ‘개인의 한풀이 또는 앙심, 원한’ 정도로 치부하려 애쓰고 있다. 삼성 측은 그 증거로 김 변호사의 전처 양모 씨가 삼성 측에 보낸 협박성 편지 세 통을 거론하기도 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2차 기자회견이 있었던 11월5일 삼성이 배포한 ‘김용철 변호사 주장에 대한 삼성의 입장’에는 다음 내용도 들어 있다.



“(김 변호사의 전부인이 삼성 측에 보낸) 이 편지를 보면 그 자체로 김 변호사 부부가 어떤 인물이며 어떤 심리상태에서 무엇을 주장하는지 쉽게 알 수 있겠지만, 내용이 워낙 근거가 없고 많은 사람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해 (편지) 공개 여부에 대해서는 신중히 검토 중임.”

광주일고와 고려대 법학과를 나온 김 변호사는 대학 졸업 전인 1980년, 미팅에서 만난 동갑내기 양모 씨와 결혼해 첫아들을 얻었다. 1983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그는 이후 촉망받는 검사로 성장했다. 부산-서울지검 등을 거치며 특수수사통으로 이름을 날렸다. 평검사 신분으로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 수사에 차출돼 김석원 쌍용 회장 집에서 61억원이 든 사과상자를 찾아내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검사 시절 김 변호사를 기억하는 법조인들의 평가는 극과 극으로 갈린다. ‘학연 지연에 얽매이지 않고 일에만 매진한 검사’로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직 부적응자’라는 비판적 평가도 많았다. 전두환 비자금 수사팀에서 함께 일했던 한 검찰 간부는 그를 이렇게 평가한다.

“직선적인 성격에 고집도 센 편이어서 동료들과 마찰이 많았다. 컨트롤이 잘 안 됐다. 삼성 같은 큰 조직에서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튀는’ 성격은 선후배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몇 가지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사법연수생 시절 그가 택한 현장교육기관은 검찰도 법원도 아닌 신문사(한국일보)였다. 그는 두 달간의 현장교육을 경찰기자 생활을 하며 보냈다. “평소 언론에 관심이 많아 꼭 해보고 싶었다”는 게 이유였지만, 당시 사법연수생들 사이에서는 화제가 됐다. 연수원 동기인 한 변호사는 “당시 김 변호사는 ‘이제 죽도록 법전만 보며 살 텐데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것 해봐야지 않겠느냐’며 언론사로 가더라. 경찰기자 한다고 새벽부터 경찰서와 병원을 뒤지고 다니는 것을 즐겼던 기억이 난다. 아주 독특한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

더 잃을 것 없는 다윗의 돌팔매인가

11월5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2차 기자회견을 열고 삼성의 비자금 의혹을 제기했다.

유난히 학연 지연을 따지는 법조계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그는 각종 학연 지연 모임에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아니, 일부러 피했다는 말도 나온다. 한번은 고등학교 선후배를 만나는 자리에서 상대방이 5분 늦게 도착했다는 이유로 자리를 박차고 나온 적도 있었다. 그래서일까. 2003년 ‘딱 한 번’ 고려대 동문모임에 나가 학교발전기금 1억원을 전달한 일은 법조계, 고려대 동문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됐다. 그는 당시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내 큰아들이 고려대 의대에 다니고 있다. 부자(父子)가 모두 고려대 출신인데 나 몰라라 하기가 어려웠다.”

삼성 수사 공 넘겨받은 검찰 ‘곤혹’

현재 김 변호사가 제기한 삼성 관련 의혹은 다양하다. 두 번의 기자회견과 수차례에 걸친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밝힌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삼성이 임원 명의 차명계좌를 이용해 천문학적 금액의 비자금을 조성 △ 2002년 대선자금에 이 비자금을 이용 △ 삼성은 비자금을 이용해 조직적으로 검찰 국세청 재경부 등을 관리 △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직접 로비 지시 △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증여 사건을 총체적으로 조작.

제기된 의혹 중 김 변호사가 현재 ‘물증’을 제시한 것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50억원이 들어 있는 김 변호사 명의의 차명계좌. 삼성 측도 계좌의 존재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김 변호사와 친분이 있는 삼성의 한 임원이 중개해줘 만든 제삼자의 계좌”라는 해명. 그러나 삼성 2인자인 이학수 부회장까지 나서 이 문제의 폭로를 막으려 했다는 의문에 이르면 삼성의 주장과 반박은 다소 궁색해진다.

‘회장 지시사항’이라는 제목이 붙은 문건을 통해 알려진 이건희 회장의 로비 지시도 삼성을 곤혹스럽게 한다. 문건에 대해 삼성 측은 “회장의 사적인 얘기를 정리한 것일 뿐 로비 지시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이 또한 실체를 부인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문건 내용 중 문제가 된 부분은 다음과 같다.

“호텔 할인권을 발행해서 돈 안 받는 사람(추미애 등)에게 주면 부담 없지 않을까? 금융관계 변호사 검사 판사 국회의원 등 현금을 주기는 곤란하지만, 주면 효과가 있는 사람들에게 적용하면 좋을 것임.… 아무리 엄한 검사, 판사라도 와인 몇 병 주었다고 나중에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임.”

현재 김 변호사는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증여와 관련된 각종 자료를 조만간 공개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떡값검사’ 명단도 적절한 방법을 통해 공개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두 가지가 현실화된다면 수년째 검찰을 맴돌다 겨우 대법원까지 올라간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증여 수사는 원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특히 증인 증거가 모두 조작됐고, 여기에 이건희 이학수 등 삼성 최고위층이 관여했다는 주장까지 사실로 확인된다면 그 후폭풍은 예상조차 쉽지 않다.

11월6일 참여연대와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삼성을 검찰에 고발하며 공은 검찰로 넘어갔다. ‘떡값검사’라는 멍에와 고발장을 동시에 받아든 검찰은 곤혹스러워하면서도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떡값검사 명단을 공개해야 수사가 진행될 수 있다”는 것.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검찰의 고민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한 관계자는 “김 변호사가 가지고 있는 ‘떡값검사’ 명단의 진위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공개로 야기될 파장을 생각해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공개 또는 비공개를 전제로 검찰에 제출하는 방안 등이 현재 논의되고 있다. 조만간 결론이 날 것으로 본다”고 말해 명단 공개가 임박했음을 시사했다.

지난해 만난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 해악 밝힐 날 올 것… 도둑의 부하가 될 수 없어 그만뒀다”


더 잃을 것 없는 다윗의 돌팔매인가

삼성 본관.

기자는 지난해 6월29일 김용철 변호사와 장시간 인터뷰를 한 바 있다. 그러나 내용은 보도되지 않았다. “적당한 시기가 되면…”이라며 김 변호사가 공개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그는 부인과의 재결합, 한겨레 기획위원 활동 등으로 ‘좋은 일’이 많던 때였다. 얼굴도 밝았다.

1년이 훨씬 지난 지금, 그의 예언은 현실이 됐다. 그가 던진 폭로로 나라 전체가 출렁거리고 있다. 물론 그가 순수한 동기만으로 이번 폭로를 계획했다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처벌을 각오했다’는 그의 주장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게 일각의 여론이다.

‘주간동아’는 당시 그와 나눈 대화의 일부를 공개한다. ‘평화롭던 시절’ 그가 기자에게 털어놓은 속마음이 어쩌면 이번 사건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하는 단서가 될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다.

- 1997년 검찰을 떠났던 이유는?

“최근 (한겨레) 칼럼에 쓴 것처럼 기생은 기생다워야 하고 검사는 검사다워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전두환 씨 비자금을 수사하면서 김석원 쌍용그룹 회장을 조사하는데 청와대에서 압력이 내려왔다. 아예 대놓고 조사를 중단하라는 것이었다. 김석원 씨 집에서 사과상자를 찾아냈더니 이번에는 청와대에서 수사 결과를 공개하지 말라고 검찰총장을 압박했다. 총장도 청와대에 말 한마디 못하더라. 나를 승진시켜 줬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당시는 내가 밤새 조사해서 피의자 조서를 꾸며놓으면 아침에 청와대에서 조서를 통째로 가져가버리던 때다.”

- 검찰 내에서 말이 많았겠다.

“내가 검찰을 그만둔 뒤 검찰에서 날 감찰한다는 말도 들었다. 검찰에서 얼마나 불안했으면 그랬겠나. 자기들이 한 짓들이 있으니까 나를 감시한 것이지.”이번 사건의 본류는 아니지만 그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도 청와대 압력을 제기한 바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관련 당사자들과 검찰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당시 수사를 담당하던 이들 중 상당수는 현재 검찰 고위직에 포진해 있다.

- 삼성을 그만둔 이유는?

“도둑을 친구나 부하로 둘 수는 있어도 도둑의 부하가 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래서 그만뒀다. 돈 한푼 안 들이고 그 큰 회사를 자식한테 넘기려고 하는데 그게 도둑이지 뭔가. 에버랜드 전환사채 문제, 대선자금 수사와 관련돼 문제제기를 하고 개선을 요구했지만 이뤄지지 않았고, 오히려 내가 배제됐다.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 삼성 경영진과의 갈등이 결정적인 이유인가.

“삼성차 문제를 계기로 이학수 부회장과 결정적으로 사이가 나빠졌다. 검찰에서 분식회계 등을 조사하는데 이 부회장이 계속 수사에 응하지 않아 문제가 됐다. 나는 이 부회장에게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져라. 쥐새끼처럼 도망다니지 말고 당당하게 검찰 조사에 응하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이 부회장이 다음 날 나를 찾아와 “가족을 데리고 2년만 조용히 미국에 가 있어라”고 하더라. 그때 나는 “아, 이게 회사를 떠나라는 소리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부회장에게 “해고통보로 알겠다”고 말했고, 곧 삼성을 그만뒀다.”

- 삼성을 나온 뒤 생활은? “삼성은 지금도 나에게 할 만큼 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나에게 엄청나게 많은 돈을 줬지만 대신 다른 것을 빼앗아갔다. 지금도 삼성 쪽에서 수시로 찾아온다. 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




주간동아 2007.11.20 611호 (p12~14)

  •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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