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10

2007.11.13

18년 유랑 끝 드디어 방폐장 만든다

11월9일 경주 양북면에서 기공식 재처리 여부 결정 임박, 내년 공론화

  • 이정훈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입력2007-11-07 13: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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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년 유랑 끝 드디어 방폐장 만든다
    18년 만의 안착. 안면도 사태(1990년), 굴업도 사태(1994년), 부안 사태(2003년) 등을 겪으며 1989년부터 유랑해온 방사성폐기물처분장(이하 방폐장)이 드디어 건설된다. 2005년 주민투표로 중저준위 방폐장을 유치한 경주시와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이 11월9일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에 ‘월성원자력환경관리센터’라고 이름 지은 방폐장 기공식을 하는 것이다.

    2009년 말 1단계 공사가 완료되면 이 센터는 10만 드럼을 저장한다. 그러나 현재 4대 원자력본부에 보관된 중저준위 폐기물은 16만 드럼 정도이고 가동 중인 원전은 20기, 건설 중인 원전은 4기, 계획 중인 원전은 4기여서 한수원은 곧바로 2단계 공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한수원은 최종적으로 80만 드럼을 저장할 수 있는 시설을 이곳에 지을 계획이다.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폐기물은 고준위와 중저준위 두 종류로 나뉜다. 고준위 폐기물에는 원자로에서 타고 나온 사용후핵연료와 이를 재처리한 뒤 생기는 고준위 찌꺼기가 있다. 사용후핵연료를 고준위 폐기물로 보고 그냥 버릴 것이냐, 아니면 플루토늄을 얻는 재처리 후의 찌꺼기만을 고준위 폐기물로 볼 것이냐는 각 나라가 결정할 사안이다.

    스웨덴과 핀란드 등은 재처리 금지 법령을 제정해 사용후핵연료를 고준위 폐기물로 보고 이를 영구 처분하고 있다. 프랑스와 영국 등은 플루토늄을 얻는 재처리를 하므로 재처리 후의 찌꺼기를 고준위 폐기물로 본다. 사용후핵연료는 일반적으로 깊은 물속에 담아놓거나, 캐스크(cask)라고 하는 특별한 통에 넣어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격리 보관한다. 재처리 찌꺼기는 액체화된 유리 물질과 섞어 냉각시킴으로써 고체화(유리화)한 뒤 역시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영구 격리 보관한다.

    동굴처분 방식으로 80만 드럼 저장



    18년 유랑 끝 드디어 방폐장 만든다

    공학적 천층 처분을 채택한 일본 로카쇼무라의 중저준위 처분장.

    이 둘을 제외한 것이 중저준위 폐기물이다. 가장 많은 것은 원전 근무자들이 입었던 방호복과 방호모, 방호장갑 등이다. 원자로 안을 들락거리며 열을 받아 나오던 냉각수나 원자로 주변에 있는 기체에서 방사능물질을 걸러내는 필터 등도 중저준위 폐기물에 해당한다.

    오래 사용한 원자력발전소는 구조적 강도가 떨어지므로 해체한다. 해체한 원전 장비는 방사선을 오래 쬐긴 했지만, 그 자체는 방사성물질이 아니다. 따라서 짧은 시간 격리 보관하면 방사선의 세기가 크게 떨어지므로 이들도 중저준위 폐기물로 분류한다. 중저준위 폐기물을 처분하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단순 천층(淺層) 처분’이다. 원자력발전소에서는 보통 중저준위 폐기물을 특수 시설에 보관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나오는 방사선이 세지 않기 때문이다. 허가를 받으면 얼굴을 드러낸 방호복을 입고 모자 장갑 덧신을 착용한 채 드럼통을 보관한 곳에 들어가볼 수도 있다.

    이처럼 사람과의 직접 접촉만 차단하는 것이 ‘단순 천층 처분’이다.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사람이 살지 않는 황무지에 ‘트렌치(trench)’라고 하는 고랑을 파고 그 속에 드럼을 집어넣은 뒤 흙으로 덮어버리는 것이다. 미국은 네바다 사막 등 황무지에 오랫동안 이런 식으로 중저준위 폐기물을 처분해왔다.

    일본은 재처리 결정, 고준위 폐기장 물색 중

    18년 유랑 끝 드디어 방폐장 만든다

    가장 안전한 동굴처분 방식으로 건설되는 한국의 중저준위 처분장.

    둘째는 황무지가 없는 나라에서 많이 선택하는 ‘공학적 천층 처분’이다. 땅을 약간 파들어간 후 지붕 없는 사각형 콘크리트 구조물을 놓고, 그 안에 드럼을 채운 뒤 콘크리트를 부어 지붕을 만들면서 굳히는 방식이다. 콘크리트가 굳으면 그 위에 흙을 덮고 나무를 심어 녹지를 만든다.

    프랑스의 라망슈 처분장이 대표적인 경우다. 라망슈 처분장 주변에서 채집되는 방사선은 자연방사선 세기이므로, 인근 목초지에서는 낙농업이 펼쳐지고 있다. 영국의 드릭 처분장과 92년부터 운영된 일본의 로카쇼무라 처분장도 같은 방식이다. 프랑스와 영국 일본은 황무지가 없으므로 확실한 격리를 위해 공학적 천층 처분을 선택했다.

    셋째는 ‘동굴처분’이다. 이 방식은 80~100m 깊이의 인공터널을 만들고 그 안에 폐기물을 넣는 거대한 원통형 ‘사일로(silo)’를 만드는 것으로 시작된다. 사일로 안에는 드럼을 가득 채운 콘크리트 구조물을 차곡차곡 쌓아간다. 폐기물은 드럼과 콘크리트 구조물, 사일로 그리고 80~100m 두께의 흙으로 차폐되므로 지상으로는 거의 방사선이 나올 수 없다.

    이 방식을 택한 처분장으로는 스웨덴의 포스마크 처분장과 핀란드의 올키루오토 처분장이 있다. 포스마크 처분장은 바다 밑을 뚫고 들어가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도 가장 안전한 이 방법을 채택한다. 월성원자력환경관리센터는 해발 30~50m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터널을 뚫고 들어가 100여 m 깊이에 사일로를 만든다. 바다 밑은 아니지만 해수면보다 80여 m 낮은 곳에 드럼을 저장하게 되는 것이다.

    중저준위 폐기물 처분장 공사가 시작됐으니 이제 한국은 고준위 폐기물 처리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한국은 사용후핵연료를 고준위 폐기물로 보고 영구 처분할 것인지, 아니면 플루토늄을 얻는 재처리를 하고 고준위의 찌꺼기만 영구 처분할 것인지 결정하지 못했다.

    반면 세계 유일의 피폭국가인 일본은 1973년 재처리 결정을 내렸다. 재처리 후 나오는 고준위 폐기물은 고체화(유리화)한 뒤 500~600m 깊이의 인공터널을 만들어 그 안에 영구 보관한다. 일본은 2000년부터 각종 지원을 내걸고 이런 방식으로 고준위 폐기물을 처분하는 대지를 제공할 지자체를 공모하고 있다.

    소식통에 따르면 정부는 내년부터 전문가를 상대로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에 대한 의견을 묻고, 재처리하자는 의견이 많으면 고준위 방폐장을 제공할 지자체를 공모하는 문제를 공론화할 예정이라고 한다. 한국은 일본을 뒤따라갈 것인가, 재처리를 포기한 스웨덴과 핀란드 모델을 추종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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