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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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배받거나 배척당하거나, 루소의 두 얼굴

  • 노만수 서울디지털대 문창과 교수·도서출판 일빛 편집장

    입력2007-10-24 18: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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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숭배받거나 배척당하거나, 루소의 두 얼굴

    프랑스 7월혁명을 소재로 한 화가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가난하게 태어나 사회와 문화의 배척을 받고, 볼테르와 디드로와 백과전서와 이성의 시대에 반목하고, 위험한 반도(叛徒)로 여기저기 쫓겨나고, 범죄와 정신착란을 의심받았던 인물이 사후 볼테르를 이기고, 교육을 개혁하고, 프랑스의 도덕을 고결하게 만들고, 낭만주의 운동과 혁명을 고취하고, 칸트와 쇼펜하우어의 철학, 실러의 희곡과 괴테의 소설, 워즈워스와 바이런과 셸리의 시, 마르크스의 사회주의와 톨스토이의 윤리학에 영향을 끼쳤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는가?’

    1967년 출간된 ‘아무개와 혁명’이라는 책에 나오는 구절이다. 여기서 아무개는 누구일까. 바로 루소(1712~1778)다. ‘독일의 전기 작가’ 홀름스텐은 ‘루소와 혁명’(한길사)을 통해 위대한 루소가 반(反)루소주의자들에게서는 ‘불안한 정신병자, 비열한 성격, 정돈되지 않은 요설의 문장가, 계몽주의를 이해 못한 꼴통’ 등으로 비판받았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루소는 태어난 지 9일 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채 동판조각 수습공으로 일하면서 폭력적인 아버지에게 양육되었다. 16세에 제네바를 떠나 방랑하다 바랑 남작부인을 만나 ‘모자와 이성간의 사랑’이라는 미묘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그녀 집의 집사로 일하며 독학으로 여러 학문을 섭렵했다. ‘에밀’(1762)을 출간하자, 신을 모독한 죄로 파리대학 신학부가 고발하고 파리고등법원이 유죄판결을 내려 ‘에밀’은 ‘사회계약론’과 더불어 분서(焚書)가 되는 것은 물론 그는 스위스 영국 등으로 망명한 18세기 당시 파란의 주인공이었다.

    18세기 파란의 주인공 … ‘사회계약’ 주창 혁명 도화선 역할

    19세기에는 일찍이 독일 철학자 헤겔이 1789년 프랑스혁명은 한 권의 책에서 비롯되었다고 했다. 20세기에는 헝가리 문예이론가 부르크하르트가 ‘7년 전쟁(1756~1763,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의 전쟁)’보다 더 큰 사건이 있다고 했다. 바로 루소의 저서 ‘사회계약론’(1762)의 등장이다.



    루소가 살았던 18세기는 흔히 절대주의 국가 시대라고 한다. 권력은 절대왕정과 귀족의 것이었다. 하늘 아래 모든 것은 ‘천부적으로’ 그들의 것이다. 그런데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하늘 아래 모든 것을 ‘사회계약’으로 맺자고 한다. 왕이나 귀족이 아니라 시민을 역사의 주체(인민혁명론)이자 권력의 주체(주권재민)로 내세운 만큼 자유와 평등, 박애를 부르짖은 혁명의 도화선이 된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루소 사상의 핵심은 ‘일반의지’(혹은 보편의지)다. ‘사회계약론’에서 인간은 일반의지에 따라 사회계약을 맺는다고 했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국민투표는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지만, 다수결의 정당성은 투표 결과에 따르겠다는 국민의 일반의지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국가를 형성하는 법과 제도 모두 마찬가지다.

    만약 정부가 일반의지에 반하고 특수의지(사적 이익이나 파당적 이익)에 따라 움직일 경우, 정부는 주권자인 인민의 권리를 대행하는 것에 불과하므로 인민은 언제든 대표자를 ‘혁명으로’ 갈아치울 수 있다. 정당화될 수 있는 저항 수단으로서의 폭력을 인정한 셈이다. 그래서 루소에게 민중은 지식인이나 지배집단보다 우월하고 선한 집단이다. 마르크스를 비롯한 진보적 사상가는 ‘루소 이후 사람들’이란 평가를 받을 만한 대목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개인을 일반의지에 따라 전체 공동체에 ‘절대적으로’ 내맡겨야 모두가 평등해진다는 이른바 ‘자유의 패러독스’ 탓에 전체주의자라는 오명을 듣기도 한다. 루소에 따르면 사회계약에 의해 일반의지를 구현하는 국가가 세워질 경우, 국민이 국가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은 외적인 권력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복종하는 것이다. 사회계약은 국가에 모든 구성원을 마음대로 다룰 무제한의 권력을 줄 수 있다는 것인데, 루소의 이론이 국민의 절대복종을 강요하는 독재국가 이론으로 전도될 위험이 있다는 비판을 받는 지점이다.

    그러니 시민의 자유는 대체 어디에 있는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비록 루소는 단 한 명의 사람에게 다른 사람보다 더 큰 권력을 줄 수 없다는 단서조항을 달았지만 비판의 화살을 피할 수는 없다. 스위스 역사가 바르트부르크는 “루소는 자유에서 출발하지만 실제 절대군주라는 옛 독재자의 자리에 ‘일반의지’라는 새로운 독재자를 앉혔고, 그것 앞에서는 ‘개인’의 어떤 요구도 정당성을 갖지 못한다”면서 “사회계약론은 자코뱅주의자들의 성경이 되고, 결국 로베스피에르는 일반의지라는 명목으로 공포정치를 주도했다”고 꼬집었다.

    스위스 저널리스트 로버트 잉그림은 프랑스혁명 때 공포정치를 펼쳤던 이들이 루소를 자신들의 혁명의 아버지라고 불렀던 것처럼, 우리도 루소를 볼셰비즘과 국가사회주의의 할아버지라 부를 정당한 권리가 있다고 비꼰다. 국민에게서 무제한의 권위를 부여받았다는 국가기구를 변호하는 국가주의자들도 루소의 일반의지를 신주단지처럼 모시기 때문이다.

    정치학자 슈반은 더 나아가 “사회계약론 이후 국가 구성원들은 다양하거나 평등하지 않고 ‘일반의지로의 귀의’만이 중요하기 때문에 사회계약론의 평등은 개성을 상실한 일체성 혹은 획일성”이라면서 루소를 전체주의자로 바라본다.

    진정한 인간 모습 탐구 ‘자연으로 돌아가라’

    루소는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말로도 유명하다. 칸트는 이에 대해 문명을 버리고 원시의 밀림으로 들어가 살라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현재 처한 즉 ‘잃어버린 자연 상태’를 돌아볼 것을 촉구하는 것, 다시 말해 ‘진정한 인간의 모습과 인간다운 제도란 무엇인가’를 반추하라는 말이라고 해석했다. 루소는 ‘에밀’에서 우리가 자연 상태를 잃어버린 까닭은 ‘인위적인 교육’에 의해 아이들이 선한 본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인위적이지 않은 교육=자연주의적 교육’, 주입식이 아니라 어린이 스스로 알고 싶은 욕구가 생길 수 있게 자극하는 것이 참교육이라고 역설(力說)했다.

    하지만 루소는 막상 자기 자식들은 모두 고아원에 보냈다. 또 ‘에밀’에서 여성에 대한 심한 편견을 보여준다. 루소가 보기에 남성은 여성 없이도 살아갈 수 있지만 여성은 ‘태생적으로’ 남성 의존적이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하므로’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성 분담 역할이 중요하고, 남녀 구별 교육은 필수다.

    이렇게 루소는 진보주의자이며 보수주의자, 민주주의자이면서 사회주의자 또는 전체주의자로 보이기도 한다. 이런 두 얼굴 탓에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숭배받거나’ ‘배척당하거나’ 한다.

    예를 들면 ‘인간불평등기원론’(책세상)을 보자. 원래 자연 상태의 인간은 평화로웠으나 미약한 존재였기에 ‘사회계약’을 통해 공동체를 만들고 자연인에서 사회인이 되었다. 하지만 사유재산과 국가가 등장하면서 인위적인 불평등이 싹튼다. 이는 하늘의 섭리인 자연법에 어긋난다. 때문에 신분 차별과 정치적 불평등을 조장하는 절대왕정은 없어져야 한다. 나아가 사유재산제를 낳은 인류의 문명 그 자체도 ‘자연 상태’에 좀더 가깝게 ‘수정되어야’ 마땅하다. 전자는 절대왕정을 옹호하는 보수파 귀족에게 ‘불한당’으로 찍힌 이유고, 후자는 이성과 인류문명의 순항을 신뢰하는 디드로 같은 ‘진보파 계몽주의자’들과 결별한 사유다.

    과연 루소의 진짜 얼굴은 무엇일까. 고등학교 시절부터 루소의 ‘한쪽 얼굴-진보주의자’만 달달 외웠지만 루소의 두 얼굴은 아직 논쟁 중이다. ‘사회계약론’의 부제목은 ‘정치법의 원리’다. 루소는 스파르타의 리쿠르고스가 조국에 법을 만들어주며 가장 먼저 한 일은 왕권 포기였다면서, 정치가들이 ‘국민의 뜻(일반의지)’에 따르는 것이 권력의 화신이 되지 않는 길이라고 했다. 바로 권력과는 다소 먼 ‘영원한 재야의 인사’가 루소의 진짜 얼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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