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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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간 1504km 완주한 50대 마라토너 박용각

“마라톤 풀코스? 잠깐 뛰다 마는 거지유”

  • 김성규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kimsk@donga.com

    입력2007-10-24 15: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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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일간 1504km 완주한 50대 마라토너 박용각
    2004년 9월 ‘찐한’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 사내 한 명이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를 찾았다. 그의 손에는 99장의 마라톤 풀코스 완주증서가 들려 있었다. 며칠 뒤 있을 제4회 국제관광서울마라톤에서 풀코스 100회 완주에 도전한다는 것이었다. 풀코스 100회 완주는 국내에선 첫 기록이었다.

    그로부터 3년여 뒤인 2007년 10월6일 오후. 그는 한반도의 해안선을 자신의 두 다리로 뛰어 서울시청 앞에 마련된 골인 지점을 통과하고 있었다. 달리기에 미친 것으로 따지면 대한민국 대표선수감인 박용각(52·사진) 씨다. 이날 박씨가 완주한 마라톤은 1504km를 뛰는 ‘공명선거 기원 제1회 대한민국 일주 울트라 마라톤’.

    건강 때문에 시작 … 풀코스 189회 완주

    하루 100km씩 뛰어 14일 23시간 남짓 걸렸다고 했다. 출전 선수들은 하루 100km를 채우지 못하면 실격하기 때문에 잠도 줄여야 한다. 이 부문에선 국내에서 따라올 사람이 없는 박씨는 “다른 사람들보다는 내가 잠을 좀더 많이 잤다”고 자랑하듯 말했다.

    100회를 완주한 뒤 지난 3년간 박씨의 달리기 이력은 이렇다. 풀코스는 그동안 89회를 더 뛰어 총 189회를 완주했다. 100km 이상을 뛰는 울트라 마라톤 완주 기록은 40회가 넘었다고 했다. 3년 전 울트라 마라톤 완주가 9회라고 했으니 최근 3년 동안은 풀코스보다 울트라 마라톤에 더 비중을 둔 셈이다.



    박씨가 마라톤을 시작한 계기는 평범하다. 1997년 큰형이 뇌중풍(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다. 상당수 마라토너들이 건강이 급격히 나빠진 주위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달리기를 시작한다.

    운동과 담 쌓고 매일 소주 2~3병에 담배 2갑을 피우던 박씨도 형의 모습에서 위험 신호를 받았다. 건강을 되찾기 위한 방법으로 그냥 뛰기만 하면 되는 마라톤이 쉬워 보였다. 그는 1998년 3월 별다른 준비도 없이 서울국제마라톤대회 풀코스에 참가해 4시간36분28초의 기록으로 완주했다.

    초보자로 준비 없이 출전한 것치고는 굉장한 성과다. 박씨는 “뛰고 나서 3일 동안 잘 걷지도 못했다”고 회상했다. 마라톤이 보기만큼 쉽지 않다는 것이 박씨의 도전의식을 자극했다. 그때부터 하루 30km씩 뛰기 시작한 것이 1504km를 뛰는 데까지 이른 것이다. 그동안 담배도 끊고 술도 줄였다.

    3년 전 풀코스 100회 완주를 앞두고 있을 때 그는 “80세까지 1000회 완주를 하겠다”며 기록 달성에 욕심을 보였다. 하지만 요즘 그를 달리게 하는 건 목표가 아니라 달리기의 순수한 즐거움이다.

    “아유, 좋으니까 뛰지유. 한 시간쯤 달리고 나면 몸이 붕 뜨는 것 같은 게 날아갈 듯한 기분이 들지유. 다른 생각은 하나도 안 나유. 무아지경에 빠진다고나 할까유?”

    그 느낌을 계속 느끼고 싶어 자꾸 거리도 늘리게 되는 것이란다. 남들은 ‘저렇게 먼 거리를?’ 하는 42.195km의 풀코스도 그에겐 “잠깐 뛰다 마는 것”이다. 그는 뛰면 뛸수록 좋다고 다시 강조했다.

    충남 공주 출생인 그는 젊은 시절부터 자동차 부속가게를 하며 거의 평생을 보냈다. 최근까지 서울 영등포구에서 중장비업체 ‘용문중기’라는 작은 회사를 운영했지만 벌이가 시원치 않아 그만뒀다고 했다. 국내에서 열리는 대회마다 쫓아다니며 출전하려면 사업을 하기도 쉽지 않을 터였다.

    “가족들이 힘들어하지 않느냐”고 떠보았더니 그는 “안 그래도 그동안 가족에게 소홀해 이번 대회를 끝으로 달리기를 그만두려 한다”고 답했다. “정말 그럴 거냐”고 재차 물었더니 그는 당황해하면서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유”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누가 후원만 해준다면 6000km 거리의 미국 대륙 횡단을 해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1504km를 달리고 온 다음 날 그는 출전 신청도 하지 않은 ‘하이서울마라톤’ 대회장을 기웃거렸다. 혹시나 뛸 수 있을까 해서다. 며칠 뒤엔 설악산에 가서 산악도로를 14시간 정도 뛰고 왔다. 힘들지 않으냐고 물으니 “그냥 재미로 뛴 거예유”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하여간 가만있지를 못한다. 달리기가 그렇게 좋다면 다른 사람들한테 적극적으로 권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렇지 않아도 이제부터 달리기 홍보를 하려고 해유. 좋은 거 나 혼자만 하면 안 되잖아유.”

    가족을 마라톤에 입문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박씨는 아내와의 사이에 대학원에 다니는 26세 딸과 대학 입시에서 재수하고 있는 아들 한 명이 있다. “아유, 뛰라고 말해봤지유. 근데 말을 안 들어유.”

    맞다. 달리기를 해보지 않은 사람은 달리기의 참맛을 알 수 없다. 좋아하는 달리기가 있어 그는 행복해 보였다. 몇 번을 만났지만 찡그리는 모습을 볼 수 없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주인공처럼 그는 늘 순진한 표정으로 미소를 짓는다. ‘봉달이’ 이봉주를 포함해 마라톤을 하는 사람치고 독해 보이고, 나쁘게 보이는 사람이 없다. 건강하고 순박하다. 달리기가 세속에 찌든 때를 벗기는 데 특효약인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나는 이들을 응원한다. 오래오래 달리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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