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04

2007.09.25

“남 위해 돈 쓰면 행복 대박 터집니다”

떳떳이 벌어 사회 환원 진짜 부자 점점 늘어…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 그래서 존경

  •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입력2007-10-01 13:54: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행복합니다.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으니까요.”

    서울 신촌의 문화복합공간 아트레온 최호준(61) 회장은 ‘행복한’ 부자다. 그는 10여 년 전 장애아동 후원단체 ‘장아람(장애아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든 뒤 지금까지 이끌고 있다. 그는 아트레온의 한 층을 ‘장아람’ 사무실로 쓰고 있으며, 별장을 짓기 위해 마련해둔 북한강가의 6600여㎡(2000평) 땅을 장애인 가족의 쉼터로 기부했다.

    “혜택을 받았으니 가진 자의 의무를 다해야죠. 물려받은 부에 의미를 더해, 더 큰 가치로 꽃피우고 싶습니다.”

    최 회장의 본업은 경기대 행정학과 교수. 결혼과 유학자금은 물론 생활비까지 부모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살아오다, 선친이 세상을 떠나기 3년 전인 1997년부터 조금씩 재산을 물려받았다. 그는 이 재산으로 과거 선친이 소유했던 극장을 헐고 2003년 아트레온을 세웠다. 이 14층짜리 공간에는 그의 이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건설 당시 이윤추구뿐 아니라 신촌 지역에 문화 에너지를 심는 공간이 되길 바랐습니다.”



    사회적 가치 담아내는 행복한 부자, 직원을 행복하게 만드는 부자

    “남 위해 돈 쓰면 행복 대박 터집니다”
    그는 광장문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건물의 지상 1층과 지하 1층을 시민을 위한 광장으로 만들었다. 아트레온의 성공으로 그는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 측으로부터 여러 차례 러브콜도 받았다. 그러나 지금도 사업을 확장할 계획은 없다. 많을수록 소홀해지고 지나치게 상업화되는 경향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멈출 줄 몰라요. 가진 것이 넘치지 않을 때 내 그릇을 어떤 크기로 하느냐는 선택의 문제입니다. 제 그릇은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최 회장이 스스로 행복한 부자라면, 보끄레 창업주 이만중(65) 회장은 직원을 행복하게 만드는 부자다. 여성의류 온앤온, 올리브 데 올리브, 더블유닷 등을 생산하는 보끄레는 중소기업임에도 직원교육에 투자를 아끼지 않으며, 장학사업과 사회기부사업 등을 폭넓게 펼치고 있다.

    “효용체감의 법칙처럼 돈이 주는 만족감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돈은 삶의 윤활유가 될 수 있지만, 그것이 목적이 되면 불행해집니다. 돈을 벌기 위해 사람을 수단으로 생각하게 되니까요.”

    그는 돈 대신 사람을 남기려 한다. 식구를 키운다는 생각으로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복지에도 힘쓰지만, ‘회사가 투자했으니 회사를 위해 일해야 한다’는 식의 조건을 붙이진 않는다. 회사를 떠난다고 자신과의 관계가 끝나는 것은 아니며, 사회라는 큰 틀에서 보면 좋은 인재를 양성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진심이 통했는지 직원들은 그를 ‘아버지’라 부른다. 지난 회갑에 직원들이 직접 ‘회갑상’을 차려주기도 했다.

    21세기형 부자는 풍요롭고 존경받는 인물

    “이윤창출은 기업 처지에서는 기본적으로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윤창출이 곧 최고 가치는 아닙니다. 사회적 이익을 먼저 생각하고 건강한 정신세계를 공유할 수 있는 회사가 되면, 그것이 지속적인 성장동력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남 위해 돈 쓰면 행복 대박 터집니다”
    사실 부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부정적인 쪽에 가깝다. 성경에도 ‘부자가 천국에 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다’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부와 그 외의 사회적 가치 사이에는 애당초 상극적 요소가 존재하는 듯하다. 그런데 최근 워런 버핏이나 빌 게이츠 등 세계적 거부들의 기부가 알려지면서 존경받는 부자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앞의 사례들처럼 정당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고, 그렇게 축적한 부를 바탕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하는 부자가 늘고 있다.

    부자학을 강의하는 한동철 교수(서울여대 경영학과)는 “21세기형 부자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우면서도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인물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부자가 쌓은 재산은 사회에서 생산된 것으로, 한마디로 부자가 아닌 사람들이 유·무형으로 도와준 결과”라는 설명이다.

    따라서 그는 “‘내가 부자가 된 것이 다른 사람들의 헌신적인 도움 덕분’이었음을 깨닫는다면 ‘소득세 탈루’ ‘세금 축소를 통한 편법 상속’ 같은 부끄러운 짓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떳떳하게 벌어 깨끗하게 나눠주고, 남은 돈으로 절약하며 살아가는 부자는 사회적으로 존경받을 수밖에 없다.

    7대째 한의원을 하고 있는 서울 종로의 춘원당 한의원 윤영석(51) 원장 역시 부자의 사회적 책임과 의무에 관심이 많다.

    “개인의 실력이나 원래 있던 재산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는 부자가 되기 어렵습니다. 재운이 따라야 하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덕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두 아들 역시 한의대를 다니며 대를 이을 것이라는 그의 집안은 50여 년째 같은 자리에서 한의원을 하고 있다. 현재 종로의 한의원은 1952년 개성에서 건너온 할아버지 때부터 계속해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종로세무서로부터 오랫동안 세금을 잘 내 고맙다는 감사장을 받기도 했다. ‘강북 부자’의 꼿꼿하고 고집스러운 면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강남으로 옮기지 않는 이유를 묻자 그는 “할아버지의 유언 중 하나였다”면서 “강북 문화를 지키는 사람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경제관념이 철저했던 그의 할아버지는 “돈거래를 삼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윤 원장은 그 유언에 따라 남에게 돈을 빌리거나 빌려주지 않는 대신 한 재단에 기부하고 있다.

    “재산은 사랑하는 사람과 같아서 함부로 하면 달아납니다. 내가 관리하고 예뻐해야 나를 따르게 되는 법이죠. 따라서 다른 사람에게 보낼 때도 좋은 자리에 잘 보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기부는 딸을 좋은 자리에 시집보내는 것과 같습니다.(웃음) ”

    “남 위해 돈 쓰면 행복 대박 터집니다”
    젊은 층에서 기부문화 큰 관심

    윤 원장처럼 최근 기부에 관심을 갖는 상류층이 증가하고 있다. ‘아름다운 재단’의 윤정숙 상임이사는 “최근 부쩍 사회 주도층의 기부 관련 문의가 늘고 있다”면서 “기부가 존경받는 부자의 대표 덕목이라는 인식이 확산된 증거”라고 해석했다. 윤 이사에 따르면 기부에 관심을 갖는 부유층은 30대~50대 초반에 집중돼 있다. 그는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나 창업에 성공한 30, 40대 가운데 ‘존경받는 기업인이 되고 싶다’면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 젊은 층이 많은 관심을 갖는 것으로 봐서 조만간 기부문화가 확실하게 자리매김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 이수형(35) 사장은 대표적인 ‘기부하는 젊은 부자’다. 나무커뮤니케이션과 투어익스프레스 대표를 거쳐, 현재 민간항공업체 창업을 준비 중인 그는 3년 전 ‘나무커뮤니케이션’ 사장 시절부터 기부를 해왔다.

    “2002년 말 처음 회사를 만들 때 직원, 주주, 사회를 함께 만족시키는 회사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어요. 직원에게는 인센티브가 있고 주주에게는 배당을 하면 되지만, 사회에는 어떤 일을 해야 할까 고민하다 기부를 생각하게 됐죠.”

    그는 개인적인 기부뿐 아니라 자신이 몸담은 조직의 기부도 독려한다. “다들 생각은 있지만 시작을 못하고 있어요. 하지만 처음 기부의 맛을 느끼면 계속하게 돼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 사장으로 일했던 투어익스프레스에 기부금 제도를 조성하기 위해 그는 자신의 퇴직금을 모두 기부금으로 내놓고 나왔다고 한다. 대학 시절부터 쿠폰북 사업을 하고 휴대전화 통신업체 총판, 보험 및 제약회사에서 일한 경험을 가진 그는 30대 초반에 이미 성공적인 CEO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일에 대한 재미로 도전했을 뿐 “돈을 좇진 않았다”고 단언한다.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배가 되는 것이 목표예요. 몇십 년 지나 제가 몸담았던 회사나 산업에 피해를 준 인물로 평가받고 싶진 않거든요. 그리고 돈을 많이 번 사람보다 ‘기여했던 사람’ ‘기여했던 기업’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대부분의 존경받는 부자들은 자식에게 부를 물려주는 대신 정신을 물려줘야 한다고 말한다. 인터뷰에 응한 한 기업인은 “기업은 개인 소유가 아니라 직원들의 것, 나아가 사회의 것”이라면서 “부 역시 사회에서 얻은 것인 만큼 필요 이상의 것은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 2위의 갑부 워런 버핏은 재산의 85%를 자선단체에 기부하겠다고 하면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으며, 사회 환원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워런 버핏이 1000명, 1만명, 그보다 더 많이 나오는 세상을 기대해본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