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04

2007.09.25

태양빛으로 채색된 화가들의 고향

  • 글·사진=성남용 트래블위즈 운영자

    입력2007-10-01 10: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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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양빛으로 채색된 화가들의 고향

    교회 건물을 레스토랑으로 개조한 르 프티 샤펠 레스토랑.

    프랑스 남부 해안도시 니스(Nice)의 햇살은 유난히 눈부셨다. 이곳에서 화려한 도시 중심의 유럽여행에 쉼표가 될 만한 작은 마을을 물색했다. 목적지는 ‘생폴 드 방스(St. Paul de Vence)’. 이탈리아 국경에서 프랑스 툴롱까지의 지중해 연안을 ‘쪽빛 바닷물의 해안’이라는 뜻의 ‘코트다쥐르(Co^te d’Azur)’ 지역이라고 하는데, 생폴 드 방스는 이 지역의 숨겨진 보석과도 같은 존재다.

    니스 시외버스 터미널은 한산했고 승강장에는 코트다쥐르의 여러 도시로 향하는 버스와 운전기사들만 한가로이 서성이고 있었다. ‘생폴 드 방스’행 400번 버스가 승강장에 도착하자 건물 안의 열기를 피해 서둘러 버스에 올랐다. 운전석에서 승차권을 팔던 기사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생폴(St. Paul)?” 하고 외친다. 출발시간이 가까워오자 어디선가 관광객들이 몰려와 버스에 오르기 시작했다. 기사는 예외 없이 “생폴”인지 물었고, 승객들은 시원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생폴 드 방스는 니스와 칸의 중간쯤, 해변이 아닌 약간 내륙에 자리한 마을이다. 버스는 줄곧 해안도로를 달리다 어느 순간 완만한 내륙으로 방향을 돌렸다. 이내 버스가 농촌마을을 지나 언덕길에 오른 순간, 저 멀리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오래된 성벽이 눈에 들어온다. 목적지 생폴 드 방스에 이른 것이다.

    버스는 간이정류장에 여행자들을 내려놨다. 멀리 보이던 요새 같은 성벽을 마을 어귀에서는 찾을 수 없었고, 시골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념품 가게와 이정표만이 눈에 들어왔다. 마을 어귀로 이어진 내리막길을 따라가니 그제야 성벽과 그 위로 삐죽 솟은 옛 건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을 어귀에는 생폴 드 방스를 상징하는 콜롱브 도르(La Colombe d’Or) 호텔이 관광객을 맞았다.

    1920년대 르 로뱅송(Le Robinson)이란 카페로 시작한 이곳은 생폴의 화사한 햇살과 풍경을 쫓아 작품활동을 위해 마을을 찾았던 마티스, 샤갈 등 화가들이 묵어 유명해진 여관이다. 32년 콜롱브 도르, 즉 ‘황금 비둘기’로 이름을 바꾼 이곳은 당시 화가들이 숙박비 대신 제공한 그림들로 부와 명성을 얻었다고 한다. 현재도 이 황금 비둘기 호텔은 전 세계 유명인사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는다.



    호텔을 지나자 길 아래로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종탑이 있는 교회가 사이프러스나무와 함께 나타났다. 지금은 레스토랑 건물로 사용되는 탓에 향기로운 음식냄새가 진동했다. 이 건물 주위에서 작고 그림 같은 마을을 여유롭게 즐기려는 여행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마티스·샤갈 등 유명 화가들이 머물던 여관 관광객 발길 쇄도

    흙먼지 날리는 광장을 지나자 성안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입구 한쪽에는 이곳이 지중해를 항해해 쳐들어오는 적군을 방어하던 곳임을 알려주는 대포가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성안으로 들어가자 화사한 햇살과 함께 사진에서나 등장하던 남부 프랑스식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태양빛으로 채색된 화가들의 고향

    마을의 중심을 가르는 ‘그랑 거리’(왼쪽). 콜롱브 도르 호텔 앞에 세워진 자동차.

    성안에 자리한 인포메이션 센터는 여행안내소이자 도시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인포메이션에서 마을지도를 얻어 펼쳐들었다. 예상대로 지도에 그려진 마을은 작고 단순했다. 지도를 들고 마을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이어준다는 ‘그랑 거리(Rue Grand)’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약간 오르막인 ‘그랑 거리’는 돌로 만들어진 도심의 중심거리다. 이 길 양쪽으로 갤러리, 기념품 가게, 레스토랑 등이 밀집해 있어 방문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길을 걷다 보면 사각형의 작은 광장에 이르게 된다. 광장 중앙에는 17세기에 만들어졌다는 대분수가 자리한다. 그래서 이곳을 분수광장이라 부르기도 한다는데, 대분수라 하기엔 규모가 너무 작아 관광객들은 미소를 머금게 된다. 이곳 갤러리와 가게들에서는 코트다쥐르와 프로방스 지방의 특성이 흠뻑 묻어난다. 갤러리에 내걸린 작품들은 고흐, 마티스 등 이곳을 사랑했던 대화가들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강렬한 색채가 인상적이다. 기념품 가게 역시 프로방스풍의 화사한 색으로 염색된 옷들과 올리브유, 비누 등으로 채워져 있다.

    한참을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마을 끝에 다다른다. 유럽에서는 자연스러운 마을 공동묘지가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영면한 샤갈의 묘지를 찾기 위해 그곳으로 내려섰다. 꽃과 대리석 장식의 묘들 사이에서 샤갈의 묘를 찾으려 했지만, 도통 눈에 띄지 않았다. 결국 포기하고 돌아나오는데, 입구에서 한 외국인 여행자가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며 미소를 보낸다. 평범한 사각형 돌 위에 ‘MARC CHAGALL 1887~1985’란 글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샤갈의 묘지는 그 흔한 꽃다발 하나 찾을 수 없을 만큼 초라했다.

    마을 어귀로 발걸음을 돌렸다. 건물 사이사이의 좁은 돌계단이 마을 어귀로 돌아가는 길이다. 여유 있게 둘러보기로 마음먹었지만 겨우 1시간이 지났다. 도시여행에 길들여진 탓에 절로 발걸음이 빨라져 있었던 것이다. 갤러리의 그림과 와인 가게, 기념품 가게의 색색가지 물건들을 자세히 보지 못하고 지나친 것이 아쉬웠다. 이를 뒤로하고 사이프러스나무의 전송을 받으며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성안의 거주 인구는 겨우 300명 남짓. 인근 지역 거주자를 포함해도 3000명을 넘지 않는 소도시지만 연간 방문객은 25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1년에 300일 넘게 햇살이 비친다는 생폴 드 방스의 날씨는 과거에는 화가들을 불러모았고, 지금은 그 화가들의 흔적이 더해져 여행자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눈부신 햇살은 물론 시원한 돌 그늘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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