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03

2007.09.18

돈 몇 푼에 청탁 방화 ‘이럴 수가’

그리스에 이어 이탈리아도 산불로 큰 피해 … ‘산림보호원’이 방화범으로 둔갑도

  • 로마 = 김경해 통신원 kyunghaekim@tiscali.it

    입력2007-09-12 11: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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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 몇 푼에 청탁 방화 ‘이럴 수가’

    방화로 인한 대규모 화재가 발생한 이탈리아 가르가노 반도의 해안가.<br> 이 화재로 모두 4명이 사망했다.

    ‘그리스 국토의 절반이 잿더미가 됐다’는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그리스는 최근 잇따른 화재로 최소 30억 유로(약 3조8000억원)의 손실을 입었다. 하지만 불길에 휩싸인 것은 비단 그리스만이 아니었다.

    이웃나라 이탈리아도 그리스만큼은 아니지만 산불로 큰 피해를 입었다. 이탈리아에서는 40℃를 치솟는 폭염에 아프리카에서 뜨거운 시로코 바람이 불어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산불 속보가 전해진다. 올해 최악의 날은 7월25일. 이날 하루 동안 이탈리아 전국 304개 지역에서 산불이 발생했고, 4만 건의 구조요청이 접수됐다.

    역시 7월25일, 절경으로 유명한 가르가노 반도에서도 불이 났다. 해수욕을 즐기던 피서객들이 불길을 피하지 못해 바닷물 속으로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모든 길이 화염으로 차단되자 한 아기 엄마는 1시간 이상이나 아기를 두 팔로 쳐들고 바닷물에 몸을 담근 채 해상구조대를 기다렸다고 한다.

    매년 여름이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지중해 국가의 화재 원인은 과연 무엇일까. 가뭄으로 인한 건조한 기후, 40℃를 웃도는 폭염, 시로코 열풍만이 원인은 아니다. 그리스 정부는 숲을 태워버린 뒤 다른 용도로 개발하려는 개발업자들의 소행으로 추정한다. 또한 그리스에서는 방화범을 처벌한 전례가 없고 정부 대책이 안일하다는 점 등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그리스 총선에 산불 ‘불똥’



    이탈리아의 경우 숲을 지켜야 할 산림보호원들이 방화범으로 둔갑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가르가노 화재도 결국 산림보호원의 소행으로 밝혀졌는데, 방화 사건을 수사 중인 이탈리아의 한 검사는 그 배후를 이렇게 설명한다. 즉, 임시직으로 채용된 산림보호원들은 취업기간을 연장하려는 목적으로 방화를 저지른다. 산림청이 불탄 자리에 다시 식목하는 일을 시키기 위해 산림보호원들과 재계약을 맺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정부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06년까지 2200명이 방화 용의자로 체포됐고, 그중 97명이 구체적 혐의가 입증돼 구속됐다. 이탈리아 방화범 3명 중 1명은 남성, 60~70세, 저학력자, 은퇴한 노인이다. 전과가 없어 경찰의 의심을 사지 않는 이들은 푼돈을 벌기 위해 물불을 안 가린다. 200유로에서 최고 5000유로에 이르는 수고비를 벌기 위해 ‘청탁 방화’를 서슴없이 자행하는 것이다.

    그리스의 불길은 서서히 잡혔지만 정부에 대한 그리스 국민들의 분노는 화염만큼 뜨겁다. 8월29일 아테네 시내에서 1만5000여 명의 시민이 비상사태에 대한 정부의 무능력과 안일한 대처를 성토하는 침묵시위를 벌였다. 그리스 정부는 긴급 재난 구호금으로 2억 유로 이상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재민들은 “3000유로의 구호금으로 어떻게 잿더미가 된 집을 되찾느냐”며 아우성이다. 이번 산불 사태가 남긴 불똥은 9월16일로 예정된 그리스 총선으로 번져나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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