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93

2007.07.10

정당 간판이 일회용 반창고인가

  •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

    입력2007-07-09 11: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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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당 간판이 일회용 반창고인가
    한국 현대정치사를 공부하는 학생들은 피곤하다. 외워야 하는 정당 이름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과거 20년만 돌아보자. 그동안 우리는 네 명의 대통령을 가졌는데 정당 이름은 제각각이다. 민정당 노태우, 민자당 김영삼,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물론 이는 당선 시의 정당이었고 임기 중에도 자주 이름을 바꿨다. 노태우는 3당 합당으로 민자당을 만들었고, 김영삼은 신한국당을 창당했다 말기에 한나라당으로 바꿨다. 김대중은 새천년민주당을, 노무현은 열린우리당을 만들었다.

    어지럽다. 이 정도면 학생뿐 아니라 교수도 헷갈릴 지경이다. 답답한 심정에 “아름다운 단어와 개념들을 오염시키지 말고 대통령이나 후보 이름을 당명으로 내걸라”고 말하고 싶다. 그것이 적어도 국민들의 정치 이해를 돕고 언어 오염 방지에 기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정치는 바로 정당정치라는 사실을 굳이 상기해야 할까. 영국의 보수당과 노동당,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 독일의 사민당과 기민당. 이들은 길게는 18세기부터 활동해왔고, 짧게는 20세기 중반에 창립된 유서 깊은 정당들이다.

    그나마 프랑스가 헌법 개정도 잦고 정당 명칭의 변화도 빈번해 한국과 유사한 정치사를 갖고 있다. 이미 다섯 번째 공화국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번 2007년 대선에서 결선에 오른 두 후보를 배출한 사회당은 1969년, 인민운동연합(UMP)은 2002년에 창당했다. 그럼에도 프랑스를 살펴보면 여전히 정당 정치의 전통과 힘을 발견할 수 있다.

    프랑스 좌익을 대표하는 사회당은 전통적으로 당원 투표를 통해 대통령 후보를 선출한다. 루아얄은 여론조사에서 높은 지지율을 보였지만 당내에서는 54명으로 구성된 전국위원회에도 속하지 않을 정도로 기반이 약했다. 하지만 그는 탈당해서 출마하거나 당내 경선 규칙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반대로 인터넷 캠페인을 통해 지지층을 당원으로 끌어들이는 데 주력했다. 그 결과 7만여 명이 20유로(약 2만5000원)를 기꺼이 지불하며 사회당의 당원으로 등록했다. 그리고 2006년 11월 전당대회 투표에서 루아얄은 60%의 지지율로 당 후보로 선출됐다.



    당원과 유권자에 대한 최소한 예의도 없어

    프랑스 우익에서는 전통적으로 당선 가능성이 높은 리더를 추대해왔다. 하지만 사르코지는 높은 지지율에도 UMP에서 후보 선출을 장담할 수 없는 처지였다. UMP란 2002년 시라크가 대선을 앞두고 만든 당이고, 그는 시라크의 미움과 견제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사르코지 역시 탈당 유혹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당내 민주화의 기치를 내걸고 당원 투표로 후보에 선출되는 것을 선택했다. 동시에 그는 2005년 16만명에 불과하던 당원 수를 2007년 33만명까지 늘려 확실한 당내 지지 기반을 만들었다. 참고로 UMP 당원 가입비는 25유로다. 그의 조직장악력 앞에 시라크 대통령을 포함해 아무도 도전장을 내밀지 않았고 그는 당원 98%의 지지로 UMP 후보로 선출됐다.

    정당 정치가 매우 불안정하다는 프랑스도 이 정도는 된다. 여의도처럼 자신이 몸담았던 정당에 욕을 퍼붓고 떠난다거나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경선 규칙을 바꾸자고 싸우지는 않는다. 반대로 시민들이 자신에게 보내는 지지를 당내 세력으로 반영하기 위해 수년간 설득하고 정책과 비전을 개발하면서 노력한다.

    물론 정당제도와 명칭이 바뀌지 않는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모든 제도와 마찬가지로 정당제도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 정치를 바라보고 있으면 권력욕에 눈이 멀어 이합집산을 일삼는 오합지졸, 기회주의자의 무리만 보인다. 정당의 규칙과 당원, 유권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찾아볼 수 없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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