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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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

  • 김경훈 한국트렌드연구소장

    입력2007-07-09 10: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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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

    6월1일 문을 연 국내 첫 명품 아웃렛인 신세계첼시 앞에 길게 줄선 사람들.

    6개월 후의 경기나 생활형편에 대한 기대심리를 지표로 나타낸 것이 소비자기대지수다. 100을 기준으로 그 이상이면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는 것이고, 이하면 부정적으로 본다는 뜻이다. 소비자기대지수는 소비자 심리를 곧바로 반영한다는 점에서 체감경기를 보여주는 지표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현실적 지표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지만, 흥미로운 소비심리에 관한 주장이 있다. 바로 과시소비라 불리는 ‘베블런 효과’다. 미국의 사회학자 소스타인 베블런(Thorstein Bunde Veblen)은 1899년 출간한 책 ‘유한계급론’에서 소득 상위층의 소비를 분석하며, 물건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성공을 자랑하고 허영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 사치가 만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가격이 오를수록 오히려 수요가 증가하는 현상을 베블런 효과라고 부른다.

    자기의 삶 수준 과시 비싼 상품 전략적 선택

    그런데 지난 몇 년간 한국의 모습을 분석해보면 과시소비의 성격이 변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계층, 명예, 지위 등을 과시하고 허영심을 만족시키려는 소비도 여전하지만, 소비를 통해 자기 존재감을 확인받고 내 삶의 수준을 표현하려는 과시소비가 눈에 띄게 높아지는 것이다. 여기서 자기 존재감은 계층이나 지위가 아니라 개성, 스타일, 교양 등의 항목을 통해 완성된다. 소비행위에 대한 자기 주관이 뚜렷해지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동안 입에 오르내리던 ‘된장녀’를 보자. 많은 사람들이 비난하는 된장녀의 실체는, 몸은 한국인이면서 마음은 도회적 세련됨의 상징인 뉴요커나 개성과 매력 만점의 파리지앵에 눈높이가 맞춰진 여성들이다. 실제로 된장녀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지만 미국에서 건너온 프리미엄 커피전문점 스타벅스에 많은 여성이 몰렸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스타벅스 커피 값이 제아무리 비싸도 그것 한 잔으로 뉴요커의 라이프스타일을 즐길 수 있다면 결코 비싼 게 아니다. 실제 제일기획의 소비자보고서에 따르면 19~24세 여성 소비자들은 훨씬 더 알뜰해지고 있다. 쇼핑하기 전에 목록을 작성하는 비율도 늘었고(2000년 36.7%, 2005년 40.75%), 할인기간을 이용해 쇼핑하는 여성도 크게 늘었다(2000년 41.32%, 2005년 51.32%). 이렇게 보면 커피 값 몇천원으로 자기 삶의 수준을 업그레이드하는 소비는 알뜰한 여성들의 영리한 선택인 셈이다.

    요즘 미국에서는 할인점 월마트에 입점하고 캔커피도 파는 스타벅스가 더는 ‘고급스런 분위기를 파는 커피점’이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도전을 받고 있다. 스타벅스보다 30%나 비싸지만 프리미엄 커피전문점의 위치를 확고히 한 피츠(peets)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 스타벅스가 새로운 입지를 구축하지 못한다면 조만간 한국에서도 커피를 통해 자신의 스타일을 입증하려는 소비자들의 이동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소비자들은 비싼 상품을 전략적으로 선택한다. 그들은 소득한계 안에서 알뜰한 방식으로 자기 삶의 수준을 과시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베블런이 통찰한 과시소비는 이처럼 성격을 변화시켜가면서 끊임없이 살아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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