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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 맛이야!|닭백숙

입맛 당기는 구수한 감칠맛 못 말려

입맛 당기는 구수한 감칠맛 못 말려

입맛 당기는 구수한 감칠맛 못 말려
장마 지나면 피서철이다. 바다도 좋고 산도 좋지만, 중늙은이가 다 돼가니 계곡에 발 담그고 앉아 수박 참외 옥수수 등 여름 과실 먹는 재미가 최고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장흥, 송추 계곡도 좋다. 이런 계곡 근처의 음식점에 가면 늘 있는 메뉴가 바로 백숙이다. 나도 열에 아홉은 백숙을 먹는다(나머지 하나는 다들 짐작하는 바와 같이 개고기다).

백숙은 한자로 흰 백(白)에 익힐 숙(熟)이다. 그러니까 ‘고기나 생선 따위를 양념을 하지 않고 맹물에 푹 삶아 익힘. 또는 그렇게 만든 음식’이라는 뜻이다. 소 돼지 말 잉어 도미 같은 고기가 모두 백숙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소 돼지 말 잉어 도미 백숙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맑게 끓이는 육류로는 닭이 가장 맛있다. 흔히 닭으로 백숙을 만들다 보니 백숙 하면 닭백숙을 떠올리게 된 듯하다.

닭살 뜯고 난 뒤 닭죽도 일품 … 최근엔 닭한마리 유행

닭고기 맛은 쇠고기 돼지고기에 비해 그리 강하지 않다. 이게 매력이다. 은근하게 받는 구수한 맛과 감칠맛이 입맛을 당긴다. 이 맛은 고기 자체보다는 국물을 냈을 때 더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데, 그중 제일이 바로 백숙이다. 닭에서는 누린내가 좀 나는데, 어떤 이유에선지 자극적인 향신료로 냄새를 충분히 잡을 것 같은 닭개장에서 누린내가 더 심하게 느껴진다. 오히려 맑게 끓인 백숙에서는 잡내가 덜하다.

닭살을 다 뜯고 나면 죽이 남는다. 닭 맛을 아는 사람들은 닭살보다는 이 죽에 정신을 못 차린다. 쌀알에 은근히 밴 닭고기의 구수한 감칠맛은 위장 저 아래에까지 스며든다. 닭과 함께 쪄낸 죽은 별로다. 쌀을 불려 슬쩍 김을 올린 죽이 제대로다.

닭백숙에서 한 단계 나아간 음식이 ‘닭한마리’다. 1960년대 동대문에서 시작한 음식이라고 하는데, 이제는 전국으로 퍼졌다.

‘닭한마리’는 고기 맛에 국물 맛, 그 국물에 요리되는 칼국수 맛까지 볼 수 있는 음식이다. 하나의 음식 재료로 한자리에서 이렇듯 다양하게 맛볼 수 있도록 고안된 음식은 드물다. 또 여기에 가래떡이나 감자 따위를 익혀 먹을 수 있으니 ‘닭한마리’ 음식 개발자는 참 다양한 맛을 즐기던 사람인 듯싶다.

동대문 닭한마리 원조집들은 신발을 들고 들어가야 할 만큼 사람들로 붐비지만, 몇 번의 방문 경험에 따르면 제 맛을 내는 집은 드물다. 식당 대부분이 누린내 없애는 방법으로 후추를 지나치게 많이 쓰고 있기 때문이다. 후추를 많이 쓰다 보니 누린내만이 아니라 닭고기 특유의 맛까지 잡아먹는다.

또 하나 ‘닭한마리’를 먹을 때 처음부터 양념장을 푸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좋은 방법이 아니다. 시원하고 담백한 맛을 즐기고 난 후 강한 양념을 하는 것이 좋다. 물론 누린내 풀풀 나는 싸구려 닭일 때는 애초부터 양념장을 풀 수밖에 없겠지만.

닭백숙의 맛은 어떤 닭을 쓰느냐에 달려 있다. 야외에서 건강하게 기른 닭과 양계장에서 사료 먹여 기른 닭은 맛 차이가 크다. 그래서 다들 시골닭을 찾고, 식당들도 시골 토종닭임을 홍보한다. 황귀 당귀 엄나무 등의 부재료와 ‘가마솥에 삶았는가 찜통에 쪘는가’ 하는 조리방법에 따른 맛 차이는 그 다음 이야기다. 그러나 이놈의 시골닭에 대한 믿음은 부질없는 것이다. 요즘 시골에서 닭을 내놓고 기르는 집은 거의 없다. 설령 있다 해도 그게 식당으로 갈 확률은 극히 낮다. 도시에 살면서 가끔 고향에 찾아오는 제 집 식구 먹이기에도 빠듯하다. 식당에서 직접 기른다고는 하지만 휴일 하루에만 수십 마리씩 잡아낼 수 있는 농장을 가진 곳이 얼마나 될는지….

양계장에서는 사료에 비해 알 생산 능력이 떨어지는 산란계를 폐계라 해서 퇴출시킨다. 이 폐계를 받아다 마당에서 기르는 식당들이 있다. 폐계라 하면 좋지 않은 인상을 줄까 봐 이를 ‘시골닭’이라 해서 판다. 그러나 고기를 얻기 위해 양계장에서 내내 사료만 먹이고 키운 육계보다는 나아 보인다. 나 같으면 “폐계를 받아다 한 달 정도 놓아먹인 닭”이라고 하면 육계보다 더 믿고 먹을 텐데….

주간동아 2007.07.10 593호 (p87~87)

  •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foodi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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